토니에릭
모처 리퀘
토니는 그가 늘(종종) 그러하듯 첫 만남에서 친절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녕하신가? 강철 헬멧이 정말 잘 어울리는군. 물론 내 쪽이 외관상 더 좋지만 말이야."
그리고 에릭 렌셔는 그가 마지막 음절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앞에 있던 호수 한 가운데로 집어 던져버렸다.
단순히 그의 헬멧에 대한 상대방의 건방진 평가 때문 만은 아니었다. 에릭은 살아오면서 수 많은 종류의 돌연변이들을 만나왔다. 큐바에서의 사건 후 일 년 동안 에릭은 그를 찾아오는 온갖 종류의 뮤턴트의 능력을 살폈고 그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몰두했다. 그랬기에 그는 딱히 뮤턴트를 알아채는 능력이 없더라도 상대방이 '비인간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면 뮤턴트인지 혹은 그저 흉내를 내는 가짜인지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외딴 곳에서 그는 자신의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상한 상대에, 아주 오랜만에 당황했다. 그는 이런 모습을 한 자에 대해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계로 만들어진 듯한 외관에 무심코 반사적으로 팔을 휘저었지만 바로 물 속에 처박히는 것을 보니 철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은 듯 했다.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정말 말 그대로 '철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철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하고 싶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에게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토니는 바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속에서 솟구치듯이 튀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순간 정신이 없었으나 그는 에릭 랜셔가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르려 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워, 워워워워. 잠깐만. 잠깐. 내가 우선 설명 좀 하게..."
이번에 토니는 굵직한 나무 일곱 그루를 부러트리며 숲 속으로 처박히게 되었다. 토니는 신음했다.
과거로 온다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뮤턴트와 관련된 모종의 이유로(설명하자면 매우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과거의 찰스 자비에를 만나기 위해 토니는 타임 머신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초기작이었고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해 그와 함께 온 다른 몇 명의 엑스멘과 어벤져스 멤버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간대에 도착한 것은 확실한 듯 했다. 우선,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의 앞에 서 있는 젊은 버젼의 매그니토만 봐도 확신할 수 있었다. 1963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비틀즈가 앨범을 냈고, 메러디스가 미시시피의 대학에 들어갔으며, 아이언 맨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가 처음 나오기도...
그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다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머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곤란하다. 위협적인 기운을 뿜으며 그에게 걸어오고 있는 에릭 랜셔를 향해 양 손을 들어 보이며 토니가 헬멧을 열었다. 하여간 과거나 현재나 성격 하나는 일관적인 듯 했다.
"기다려! 야구공처럼 집어던져지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말이야. 난 당신처럼 특출난 힘을 가진 게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고."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방금의 공격으로부터 멀쩡할 수 있지? 그 아머 때문인가?"
"그래. 그리고 이건 아마 네가 가진 능력으로 쉽게 손 안에서 갖고 놀 수 있을거야. 매그니토."
물론 그건 전혀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토니가 능청스러운 표정과 함께 덧붙이는 말에 에릭의 눈썹이 휘었다. 그는 명백히 자신이 철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앞에서 철로 된 갑옷을 입은 채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는 상대의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어졌고, 그랬기에 이 자를 눈 앞에서 죽여야 하는지 혹은 살려둬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편 토니는 그가 매그니토를 만날 것을 예상하지 못해 그의 능력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수트를 입고 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토니에겐 언제나 두 번째의 무기가 있었다. 그의 화려한 화법이었다.
"에릭. 살면서 한 번이라도 내가 입은 것과 같은 뛰어난 하이테크의 기술을 본 적이 있어? 없겠지. 그도 그럴 것이 난 현재의 사람이 아니니까. 아까 전 섬광의 폭발을 봤을 거야. 난 고속 입자분할 질량보존 및 순회... 짧게 타임 머신이라는 것을 타고 미래에서부터 왔지."
"미래...?"
"금방이라도 나를 다시 집어던질 기세군. 뭣하면 네가 원하는 것 한 두개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 가령 네가 세우고 있는 계획이 성공한다던지 하는."
토니의 말에 에릭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불신의 시선보다는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토니는 에릭 랜셔의 성미에 대해, 그가 다른 히어로들 모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물론 알고 있었다. 이 시간대의 에릭 랜셔는 이런 제안을 그냥 넘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동료를 구해 크고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그것에 대한 자세한 미래를 알고 싶어할 것이 분명했다. 토니는 그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고 에릭 랜셔는 그를 살려둔다 해서 손해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에릭은 토니를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정말 미래에서 온 건가? 내 미래에 대해 예측할 수 있다고?"
토니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씩 웃었다. 장난기가 생긴 그는 에릭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손가락 끝으로 젊은 청년의 가슴팍을 노골적일 정도로 느리게 쓸어 내렸다.
"그래. 원하면 네가 누구와 어떤 관계가 되는 지도 말해줄 수 있는데."
그 말에 에릭 랜셔의 얼굴이 붉어진 건 토니 스타크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그것에 동하는 기분이 든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