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할
모처 리퀘
첫 대면은 그다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저스티스 리그와 어벤저스의 임무가 겹치게 된 것은 굉장한 우연이었다. 물론 이 전에도 간혹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했으나 양 쪽의 팀원들 전부가 한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처음이다시피 했고 그들은 약간의 어색함과 신기함 같은 소소한 감정들을 느끼며 함께 빌런을 때려 잡았다. 그 와중에 굉장히 운이 없었던 빌런에게 묵념을 보내며, 사태는 금새 진정되었고 몇 히어로들이 뒷처리를 돕고 있는 와중 아이언 맨과 그린 랜턴이 서로 말을 섞게 된 것은 또한, 역시나, 굉장한 우연 중 하나였다. 이유는 빌런의 처리에 관련된 것이었다. 아캄에 가느냐 빅 하우스에 가느냐. 사실 어느 쪽이던 빌런에게 있어선 별 다를 바가 없겠지만 할 조던과 토니 스타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그 손에 든 빌런 좀 이리 내놓으시죠 하는 고운 말로 시작한 대화가 점차 거칠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도 그럴것이 두 히어로에게는 가장 큰 문제이자 또한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존심 세우는 데에선 양쪽 모두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할 조던은 "내가 잡은 빌런이거든? 어딜 중간에 끼어들어?" 라고 말했고 토니 스타크는 "오. 그렇게 믿고 싶으시겠지. 녹색 개똥벌레 씨." 라고 대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좋은 시작은 아니었다.
할은 자신이 개똥벌레라는 말을 듣는 걸 정말로 싫어했다. 이미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근처에 있던 배트맨의 등이 움찔거리는 게 마치 웃는 것 같았다- 할 조던은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고 토니 스타크는 연신 이죽거렸다. 그들 옆에 서 있던 몇 리그원들과 어벤져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초조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주변에서 저러다가 주먹질로 번진 경우를 한 두번 본 게 아니어서였다. 대체적으로 할 조던은 앞 뒤 구분없이 따지고 보는 성미였고 토니 스타크는 조목조목 짚어가며 상대의 신경을 긁는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에 대화로만 봐서는 토니의 쪽이 우세를 보이는 듯 했다. 싸움 구경 좋아하는 몇 히어로들은 그들을 지켜보며 팝콘이라도 먹고 싶어했다.
빌런을 주제로 하던 그 신경전은 어느 새 빌런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결국 참다 못한 캡틴 아메리카와 슈퍼맨이 내가 나서야 하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에 토니가 헬멧을 벗었다. 그을린 피부의 단단하고 남자다운 인상의 남자는 반 쯤은 불쾌한 그리고 반 쯤은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말로 싸워서 이길 확률이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을텐데."
슈퍼맨이나 플래시 등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앤소니 스타크였다. 한편 할 조던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당신이 오프라 윈프리라도 돼?"
토니의 눈썹이 휘었다.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허 참. 화 내는 것도 잊은 토니가 피식 웃었다. 한 쪽에서 배트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그 사건 이후 아이언 맨과 그린 랜턴이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찌 됬건 그린 랜턴은 우주와 지구를 오가야 했었고 토니 스타크는, 물론 간혹 우주를 가는 경우도 있긴 했으나 평상시엔 지구 위에서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활동하는 히어로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둘이 가끔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엔 어벤저스들이나 리그원들 모두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되묻고는 했다. 몇 명은 약간 회의적인 반응도 보였다. 피터 파커는 토니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보며 무슨 꿍꿍이냐고 물었다가 한 대 맞을 뻔 했다(그렇다고 해서 토니가 정말로 오아를 탐색하거나 랜턴의 반지를 분해해볼 생각을 아예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한편 할 조던은... 보통 그가 그러하듯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토니는 어벤저스 타워에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다가 기계 음성이 방문자를 알리자 전면 유리 밖을 내다 보았다. 긴 녹색의 섬광이 유성우처럼 꼬리를 만들며 허공으로부터 날아와 곧 그의 창문을 두드려댔다. 토니는 피식 웃었다. 정문을 이용하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할 조던은 귀찮다는 이유로 열의 아홉은 창문을 이용하곤 했다. 전면 유리를 열어주자 할은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몸에서 녹색의 수트가 바스라지듯이 사라졌다. 꽤 훤칠하고 잘 생긴 남자는 토니를 향해 씩 웃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오븐 확인해 봐."
할은 토니의 어깨를 툭 두드리며 스쳐 지나가서 오븐을 열었다. 곧이어 와우 하는 탄성 소리가 들리고 할이 냉장고에서 거의 한 살 아이만한 크기의 칠면조 요리를 꺼냈다. 오늘 무슨 날이라도 돼? 할이 싱글벙글 하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칠면조를 통째로 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토니는 조금 즐거운 기분이 된다. 할 조던은 간혹 이렇게 예고도 없이 방문해 주방을 뒤져 음식을 찾아 먹거나 맥주를 마시고 비싼 티비로 영화를 즐긴하던가 한 후에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토니는 그것을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토니는 열심히 먹는 할의 모습을 보다가 책상에 팔꿈치를 세워 손에 턱을 괴었다.
"자네가 그렇게 가난한 줄을 몰랐는데."
"가난한 게 아니라 음식 챙겨주는 사람이 없을 뿐이야. 내가 해 먹기엔 귀찮고."
"저런."
"매일 이런 음식이 배달되는 사람은 내 기분을 모르겠지."
"별로 알고 싶진 않군. 그나저나 자네가 밤에 찾아올 때마다 내가 숙녀분들을 돌려 보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할은 문득 칼질을 멈추고 토니를 보았다.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싱글거리는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잠시 묵묵히 보던 할은 곧 씩 웃었다.
"그거 잘 됐네."
그는 다시 고기를 썰기 시작했고 토니는 조금 웃으며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