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웨인
모처 리퀘
"브루스. 손님이 오셨는데요."
막 카울을 착용하려던 브루스 웨인은 그 말에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사건 조사로 인해 케이브에 와 있던 나이트윙, 딕 그레이슨은 팔짱을 끼며 불만스럽게 모니터를 쳐다 보았고 곧 브루스 웨인 역시 미간을 찌푸리게 되었다. 도시에 설치해놓은 카메라와 그 외에도 티비 뉴스 등에 한 가득 메워진 갑작스러운 등장 인물은 그들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들 뿐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유명인이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아머를 입고 고담에 당당히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밖에 더 있을까. 브루스는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고 딕은 그에게 약간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보냈다.
"둘이 선약이라도 있었어요?"
"실없는 소리 마라."
딕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딕이 뼈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브루스 웨인과 아이언 맨, 토니 스타크가 사적인 교제를 시작한지도 몇 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려 케이브에서 나가는 브루스의 뒤를 따랐다.
토니는 브루스 웨인이 자신의 예고없는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간혹 충동적으로 고담을 찾아오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방식에 익숙했고 브루스는 토니 스타크의 그런 점을 정말 진절머리나도록 싫어했으나 금방 고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토니는 문득 브루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고담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가 아머를 입고 날아가는 것이었다. 토니는 생각한 대로 바로 행동했다. 물론 밤이 내려앉는 고담의 하늘에 한 줄기 빛을 뿌리면서 날아오는 유명 히어로에 고담의 눈과 귀가 집중했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 대었고 토니는 사진을 찍히는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얼굴은 충분히 알려져있는 터, 브루스의 정체만 들키지 않도록 하면 되었다.
토니가 브루스의 위치를 발견했을 때에 브루스는 고담의 골목에서 그 날의 임무가 있는 폐건물로 향하고 있던 차였다. 토니는 혀를 찼다. 분명 저가 그를 만나러 온다는 걸 알고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브루스는 단 한 번도 그를 편하게 만나주는 법이 없었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배트맨을 간신히 따라잡은 토니 스타크는 갑작스럽게 그의 앞으로 착지했고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단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기분이 나빠 보일 뿐이었다.
세상에 무드가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토니는 속으로 탄식한다. 처음 브루스 웨인과 토니 스타크로서, 사업상 대면했을 때엔 이렇게 딱딱한 남자는 아니지 싶었는데 말이다. 그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공적으로 드러나는 유연하고 성격 좋은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성격보단 차갑고 무뚝뚝한 배트맨으로서의 성격이 본래의 그와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토니는 그것에 별로 불만은 없었다. 어느 쪽이던 그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남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Hey darling. Miss'd me much?"
아머의 헤드파트를 열며 다가오는 토니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싱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배트맨 복장을 한 브루스 웨인은 굉장히 위엄있어서(무섭다 라던가 음침하다 라는 표현은 자제하기로 한다) 처음에 토니는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었다. 카울 너머로도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이는 듯 했다. 토니가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올 때 브루스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을..."
그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카울 너머 브루스의 이마 위로 입맞춤을 한 토니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카울 벗어봐. 저번에 내가 이거 벗기려고 하다가 죽을 뻔 한거 알지?"
"여긴 밖이야."
"잠깐이면 돼. 아무도 안 보잖아."
결국 잠깐의 실랑이 끝에 브루스는 카울을 벗었고 토니의 입맞춤이 이번엔 그의 살갗 위에 떨어졌으며, 건물 위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이트윙만 나이 먹을대로 먹은 남자들의 연애 행각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