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프랭크
lost
제임스 커크가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5년 항해 중의 2년 째가 되었을 때었다. 마침 저번 미션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소동 때문에 엔터프라이즈가 많이 손상 되었기도 했고, 슬슬 지구에 한 번 들러 정비와 점검을 해야 하는 시기도 다가오고 있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약 한 달여 동안 지구로 돌아가기로 한다. 아이오와의 정박장에 엔터프라이즈가 착륙하자 우선은 쏟아지는 미디어의 관심이 있었다. 젊은 영웅이 지휘하는 함선, 스타플리트의 아름다운 백마, 단 한 번의 실패도 보이지 않는 미션 성공률. 그들은 연예인이나 다름 없을 만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선원들마다 그 반응을 향한 호불호는 갈리기 바련이었으나 적어도 지구를 방문한다는 것에 대해선 대부분의 선원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딱히 계획에 있던 지구 방문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선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을리는 만무하다. 긴 항해 도중 간만의 휴식. 가족과의 재회. 목숨을 위협하는 외계 생물들로부터의 자유. 누가 좋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물론 그 와중에도 예외는 있었다. 함장과 부함장이 그랬다. 서로 다른 이유였긴 했으나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될 만큼은 되었다. 스팍은 자신이 반은 지구인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지구에서 머물게 된다는 것을 어째서 기뻐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스팍의 가족이라곤 단 한 명도 지구에 없었으며, 그는 어머니 쪽의 인간 친척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는 지구에서 자라오지도 않았고 그 곳에 어떤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면 그건 지구가 제 죽은 어머니의 행성이기 때문이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팍을 감정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부함장은 시큰둥하다싶은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커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분명 지구에서 평생을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구에서 그를 기다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오와에 있어봤자 그의 없느니만 못한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있을 터였고, 그 외에 만날 사람 역시 없다시피 했다. 커크는 리버사이드 쉽야드에서 2년 만에 지구 땅을 밟으며, 어쩌면 그의 부함장보다도 더욱 시큰둥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몇 건물이 더 들어서고 신식으로 바뀌었을 뿐 그다지 달라진 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의료 절차 등을 거치고 나서 쏟아지는 인터뷰와 취재 요청을 적당히 받아 넘겼다. 예의상 아이오와의 집을 들릴까 하다 통신을 넣어봤지만 답장 따위는 돌아오지 않는다. 커크는 어깨를 으쓱 하고 스팍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스타플리트 건물에서 지내기로 결정한다. 스팍은 이미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 말고도 선원 중에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가족과 만나기 위해, 스타플리트에서 볼 일을 보기 위해, 보수 공사에 참여하기 위해 등등과 같은 이유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복구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벤전스가 샌프란시스코의 거의 절반을 덮치며 일으킨 후폭풍은 그야말로 엄청났기 때문에, 거진 삼 년이 된 지금에서야 복구 작업은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벤전스의 잔해들을 모조리 치우고 건물들을 새로 세우고 지형을 갈아엎고 하는 대규모의 작업에 도시는 커크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꽤 달라져 있었다. 그는 숙소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본부에서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보고와 미팅 등을 해야했고 결국 풀려나게 된 건 늦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함장에게 주어지는 숙소에 들어가 이미 도착해있는 몇 가지 안되는 짐을 풀고 나서 커크는 밖으로 나왔다. 아카데미 시절에 알던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술집으로 향하는 어둑한 골목길을 지나던 커크가 갑자기 가게의 유리창을 깨고 길거리로 튕겨져 나온 사람을 눈 앞에서 스치게 되자 굳어버린 건 굉장한 우연이었다. 한 걸음만 더 멀리 나갔어도 그 사람과 부딪혔을게 뻔하다. 유리 조각들과 함께 바닥을 뒹구는 사람이 고통스럽게 신음할 때 깨진 유리를 넘어 또 다른 남자가 가게에서부터 걸어 나왔다. 검은 색의 옷을 입은, 어쩐지 군인처럼 보이는 거친 외향의 남자였다. 스타플리트라기 보다는 육군이나 용병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커크는 남자가 기계 인간처럼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걸어 나오더니 쓰러진 남자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먹으로 연신 구타하는 걸 보자 설마 벌칸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 둬!"
물론 커크가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현장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었다. 순식간에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굳어있던 것도 잠깐이고, 커크는 인상을 쓰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차별한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는 근육이 뚜렷하고 덩치가 좋았다. 그는 본인이 남자답지 못한 외향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은 없으나 상대의 몸집은 저보다 컸다. 커크가 그를 말리려 할 때 휙 돌아보는 얼굴에서 푸른 눈이 똑바로 마주하자 순간 멈칫하는 저를 발견했다. 아마 40은 되어 보이는 듯한 나이. 그다지 다듬어지지 않은 외모에 한 쪽 눈에는 붕대가 덧대어져 있고 짧은 수염이 턱을 덮고있는 거친 외모에서 그 눈만큼은 직설적으로 곧았다. 그는 커크가 말릴 것처럼 다가오자 위협적으로 노려보았다.
"끼어들지 마라."
낮고 걸걸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피 묻은 주먹을 쥔 채로 너덜거리는 사람 위에 올라 타 있으면서도 눈만은 올곶았고 목소리에 떨림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폭행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뒤로 물러서. 그러다 죽겠다고."
"그 편이 낫겠군."
뭐? 커크가 되물을 새도 없이 남자가 품 안에서 총을 꺼내더니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상대의 이마를 향해 쏘았다. 구식 총이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걸 만들기는 할까 싶은, 탄환이 장전 되어있고 공이를 내려 쏘는, 탕 하는 소리가 울리는 그런 총이었다. 커크는 그것을 영화에서밖에 보지 못했다. 근거리에서 쏜 총알은 바닥에서 꿈틀대던 남자의 이마에 명중했고 퍽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뇌수가 사방으로 터졌다. 커크의 입이 충격으로 벌어졌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주변에는 아주 멀리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일 뿐 가게들이 폐점한 어둑한 골목길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의 총소리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커크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태연하게 총을 품 안에 도로 넣더니 시체를 뒤집어 뇌수 속에 흘러나온 총탄까지 회수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로테스크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커크는 속에서 절로 욕지기가 올라왔다. 공식적으로 업무 외 시간이라 페이저 건조차 들고 나오지 않았다. 체격만으로 봐선 덤벼도 커크가 불리해보였지만, 그런 걸 커크가 따진 적은 없었다. 방금 남자가 행한 건 엄밀한 살인이었다. 그는 남자에게 달려 들었다.
솔직히 커크는 육탄전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맨손격투술을 가르친 적도 있었고, 적어도 상대가 여러명일 경우나 근본적인 힘으로 상대할 수 없는 외계인일 경우 따위를 제외하곤 거의 이기지 못하는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정말로 체술에 능했다. 그는 커크에 비해 덩치도 컸지만, 커크는 처음 주먹을 날리는 순간 그것을 피하고 반격하는 남자를 보며 아 그냥 평범한 부랑배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군인처럼 싸웠다. 서로 몇 대씩 얻어맞기도 하면서 구르던 와중 남자는 들고 있던 총을 놓쳤고 커크는 그의 움직임을 포박하려 했으나 상대는 쉽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를 연막탄 같은 것을 던져 사방을 온통 뿌옇게 만들었다. 골목길에 연기가 가득 들어차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커크가 요란하게 기침을 하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남자의 모습은 벌써 사라진 후였다.
"그 때 내가 당신때문에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커크가 목덜미에 입을 맞추다 말고 말했다. 프랭크는 자신에게 엉겨 붙는 젊은 함장을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으며 어정쩡한 자세로 벽에 기대선 채 그 무차별적인 성적 공격에 감흥없는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커크는 프랭크의 어깨를 물더니 입술을 미끄러트려 그의 목덜미와 턱선 그리고 귓가와 뺨까지 입술을 부볐다. 거슬한 수염에 긁혔지만 커크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프랭크 캐슬은 조금 귀찮은 듯 고개를 틀지만 그 움직임에 달라 붙듯이 따라가는 커크의 손이 그의 턱을 잡고 입을 부딪히게 한다. 프랭크는 그저 인상을 찌푸린 채 그 행위를 받아 주었다. 푸른색의 유니폼이 커크의 손 밑에서 가차없이 늘어났다.
프랭크 캐슬이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제임스 커크 함장의 대원이 된 지도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커크가 골목길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프랭크 캐슬을 처음으로 봤을 때부터는 거진 세 달째, 그 당시만 해도 제임스 커크가 이 남자에게 이토록 집착하고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살인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커크는 그것 하나만은 굳게 믿었다. 칸 역시 그러지 않았던가? 복수라는 이름 아래 그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었다. 프랭크 캐슬 역시 그의 동류였다. 가족의 죽음. 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 움직이던 남자. 커크는 그 날 살해 장면을 목격한 이후 남자에 대해 수소문했다. 그는 연합에서 가장 유명한 함장이었고 그로서 가지게 된 권리는 생각보다도 쉽게 프랭크 캐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도록 했다. 커크는 남자가 그의 가족을 죽인 자들을 찾아가 하나 하나 제 손으로 명줄을 끊어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를 동정하거나 하진 않았다. 죄로서 죄를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다. 커크는 그 사건을 경찰에게 맡길 수도 있었으나 차마 그러진 못했다. 그의 쓸데없는 영웅 심리가 발동한 거라고 프랭크는 생각했지만 커크에게 말 하지는 않았다.
그는 저에게 들러붙는 커크의 턱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밀었다. 커크는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밀려났다. 프랭크는 커크가 유능한 함장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브릿지에서의 그는 누구보다도 판단력이 뛰어났고 필요한 위험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젊은 편인 나이를 따져 보았을 때 커크는 성숙했고, 또 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공간에 따로 남겨지면 커크는 영락 없는 그 나이또래의, 혹은 그보다도 간혹은 어려보이는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이렇게 애정결핍 걸린 강아지마냥 달라붙는 것도 그것 중 하나였다.
"왜 밀어내는거야?"
"업무 시간이다. 엔진실로 가봐야 해."
"괜찮아. 함장하고 같이 있는데요 뭐."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 명백한 권력남용이다. 평소엔 절대 이러는 일이 없으면서 꼭 저랑 있을때만 이렇게 애같은 모습을 보였다. 프랭크 캐슬은 혀를 차고 싶단 표정을 지으며 시간을 확인했고 커크는 다시 그를 껴안으며 몸을 기대어왔다.
"매몰차네. 함선에까지 태워준 사람에게 너무한 거 아니에요?"
너무하긴 커녕 프랭크는 그가 커크에게 굉장히 많이 봐주고 있다 생각했다. 이렇게 달라붙는것도, 심지어 관계를 맺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커크를 받아주는 것이 단순히 그가 자신을 엔터프라이즈에 타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 댓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프랭크는 시선을 들어 커크의 눈을 마주 보았다. 젊고 생동감있는 열기를 담은 푸른 눈동자는 항상 괴이할정도로 지나치게 빛나 위화감을 줄 정도였다. 그는 자신에게 엉기는 커크를 보며 우습게도 이미 세상에 없는 그의 아이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커크는 그렇게 상대방에게서 동정이나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끌어내는 법을 알았다. 동정받을 만큼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어서다.
그가 잠시나마 망설일 때에 커크는 그의 손목을 잡고 부드럽게 이끌어 자신의 쿼터에 있는 침대에 눕히는 것과 동시에 그 위로 쓰러지듯이 올라탔다. 커크는 조금 저항하는 두 개의 단단하고 긴 다리 사이를 파고들며 하반신을 느긋하게 문대어왔다. 손바닥으로 남자의 가슴을 넓게 쓸자 두툼한 근육의 모양이 그대로 덧그려졌다. 프랭크는 그 끈적한 접촉에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해 몸을 뒤틀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맞붙은 두 몸이 가깝게 문대어진다. 커크는 자신이 접촉할 때마다 프랭크가 처음인것처럼 구는게 좋았다. 아무도 넘보지 못할 만한 남자를 자신의 몸 밑에 두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프랭크 캐슬은 그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커크를 영웅으로 보지 않았다. 저에게 뭔가를 바라지도 혹은 돌려받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커크를 그저 한 사람으로 개인으로 봐줬고 항상 같은 자리에 고고하게, 그 무엇에도 관심 없는 듯이 그렇게 서있을 뿐이었다. 커크는 그 복수밖에 담겨있지 않던 무심한 시선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는 게 좋았다.
프랭크는 그만 이라고 중얼거리며 몸을 비틀다가 청년의 가차없는 손짓에 막혔다. 젊은 몸이 그의 위에서부터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로 짓누르며 입술에 입술을 맞대어왔다. 그는 누군가가 그것도 동성이 자신에게 밀어붙이고 발정나는 것을 보며 흥분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커크는 항상 그로 하여금 밀어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입맞춤 사이로 프랭크의 윗도리를 벗겨낸 손가락 끝이 성급하게 바지춤으로 파고들며 순식간에 버클을 푸르고 지퍼를 내린다. 어느 새 정신없는 입맞춤에 휩쓸려버리고 나면 프랭크는 시선을 들었다가 커크가 팔을 교차해 자신의 노란 윗도리를 벗어내는 걸 본다. 제 몸만큼 근육이 두드러지거나 크다 싶은 몸집은 아니지만 적당한 관리에 미끈한 근육이 붙고 혈기넘치는 몸이다. 꽉 조인 골반이 다리새로 다시한번 파고들고 제임스 커크는 애정을 갈구하는 상냥한 짐승처럼 덮쳐온다.
프랭크 캐슬이 누군가를 봐주는 걸로 인해 함부로 자신의 뒤를 내주거나 하는 사람이란 건 절대 아니었다. 그만큼 저가 커크에게 약하게 구는 것도, 커크가 싫지는 않았기 때문이란 뜻이다. 그렇다고해서 좋아한다는 달착지근한 말로 설명하기엔 애매한 기분이다. 연신 섹시하다 끝내준다 좋아한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커크에 비하면 프랭크는 늘상, 그리고 특히 행위 도중에는 지나치게 조용했지만 커크는 적어도 그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고 간간히 달뜬 얼굴로 미약하게나마 움직임에 동조한다는 것으로부터 만족감을 느꼈다. 커크는 침대 위에서 끝내주게 능숙했다. 맨 처음 그들이 관계를 가졌을 때도 동성간의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별 심각한 거북함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만약 프랭크가 맘먹고 커크를 밀어내려 했더라면 이런 행위는 커녕 근방 1미터 안으로 다가가지도 못했을게 분명하다. 커크는 부드럽지만 약간은 집착적으로 애무했고 느긋한듯이 굴었지만 성급한 티를 감추지 못하며 프랭크의 안으로 삽입했다. 양 쪽으로부터 억눌린 신음이 터졌다. 프랭크는 자신의 눈 앞에서 흥들리는 금발 사이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움켜쥐었고 커크는 자신의 것과 대조되는 프랭크의 짙은 흑발에 손을 찔러넣었다. 머리칼을 조금 세게 잡으니 남자의 턱이 바뜩 치켜 올라갔다. 그에 드러나는 굵은 목선에 이를 박으며 커크는 그의 허벅지를 추스르고 깊게 파고들었다.
행위가 끝난 후에 프랭크 캐슬은 자신의 옆에서 잠든 청년을 보았다. 반듯하게 잘 생긴 얼굴이 색색 숨을 내쉬며 세상모르고 잠에 푹 빠져 있었다. 프랭크는 자신의 몸에 둘러진 팔을 떼어내고 땅바닥에 흩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시간을 확인한 그는 옷을 다 입은 후에 마지막으로 커크를 다시 한번 더 돌아보았다. 그는 죄책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상대의 신의건 믿음이건 동정이건 뭐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지금 자신의 심장 한쪽에서 자꾸만 비집고 올라오려는 따끔한 감각이 죄책감이 아닐 것이라 치부했다. 프랭크 캐슬은 함장의 쿼터를 나서기 전에 오토락을 오버라이드하는 코드를 집어넣어 그 공간을 완전히 봉쇄해버린 후 복도로 나왔다. 그의 등 뒤에서 닫히는 문이 아예 그들을 갈라놓는 전조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프랭크는 자신의 뒷춤에 있는 페이저를 확인하며 브릿지로 향했다. 사람은 잊을 수 있어도 복수는 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