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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marvel

스팁럼로우 단문


스팁럼로우

스팁이랑 어려진 럼로우 단문






뭔가 터졌는데 대체 뭐가 터진지는 모르겠고 여튼 그게 자신의 발치 근처라서 스티브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품 안에 들린 것을 필사적으로 끌어 안으며 등부터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그는 아마 몇 바퀴정도 굴러간 것 같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뛰기 시작하는 사이에 그가 몸을 부대꼈던 아스팔트 위마다 총알이 박혀 내렸다. 잠시라도 멈출 새는 없었다. 헬리콥터 돌아가는 소리. 총탄 소리. 확성기에서 들리는 뭔가의 경고음. 매캐한 연기와 고함소리와 귓전에서 앵앵거리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목이 찢어져라 우는 아기의 울음 소리가 있었다. 전력으로 뛰던 스티브는 안고 있던 아이를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다잡으며 헐떡였다.


"쉬, 쉬. 착하지. 괜찮아. 응."


스티브는 흔들리는 숨 사이사이로 속삭였다. 얼굴에 온갖 검댕이 묻은 아이는 그걸 알아 듣는지 못 듣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지만 어찌됐든 울음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인다. 으애애앵. 으애앵. 아기는 서럽게도 울었다. 내려박히는 총탄과 폭발물의 굉음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있어 너무 거친 곳이다. 비록 그것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잔혹했던 하이드라의 요원일지라도.


"울지마. 브록. 울지마."


조금 더 아이를 바짝 끌어 안는 스티브가 말했다. 여전히 아기는 보채듯 울고 있었다.






전신 화상을 입은 럼로우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약물과 산소호흡기에 간신히 의존해 숨이 넘어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반 시체에 불과했다. 그 몰골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견딜 수 없다거나 차마 오래 지켜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전부 의료진들이었다는 것과, 직업상 충분히 끔찍한 모습들을 평생 보아왔던 그들이 그 정도로 설명할만한 광경이라는 걸 따진다면 그게 어떤 꼴일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럼로우는 음압유지 격리병실에 감금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냥 풀어놔도 도망갈 수도 없겠지만. 온 몸에선 하루 종일 진물이 흘렀고 전신을 덮은 포자가 계속해서 터지길 반복해 옷을 입혀놓는 의미가 없었다. 양쪽 망막도 타버렸고 손발톱과 이는 모조리 빠졌다. 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상태를 전해 들은 스티브는 제 손으로 그를 죽이고 싶어질 정도였다.


스티브는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만큼 럼로우가 더 이상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인 남자를 간신히 살려둬서 뭘 하겠다는 건지. 하지만 쉴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느 상황에서나 또 다른 악질적인 방법을 연구해 내는 것도 재능이라 생각했다. 쉴드는 럼로우의 상태를 이전처럼 -혹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돌려내서 그에게 정보를 캐어낼 심산이었다. 아직까지 뿔뿔이 흩어진 하이드라의 잔당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그들의 연구소와 실험실은 어디에 있는지. 고위간부 중 누가 하이드라에 몸담고 있는지. 그런 아직까지 남아있는 의문들을.


안타깝게도 스티브가 쉴드의 계획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브록 럼로우에게 이미 절차가 가해진 다음이었다. 스티브는 쉴드의 요원이 안고 있는 한 아기를 발견한다. 손가락을 빨던 아이는 검은 눈으로 스티브를 보더니 까르르 웃었다. 


정말이지 살면서 그렇게 화날 수가 없었다.


충동적으로 럼로우를 안고 도망친 건 그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다지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기껏 말좀 하게 하려고 실험을 해놨더니 아예 말을 배우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버린 사람은 데리고 쉴드가 무슨 짓을 할지 스티브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쉴드는 이제 분해된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무너졌고 간신히 살아남은 그들은 너무나도 집착적이었으며 절박했다. 그랬기에 쉴드는 무슨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스티브는 이미 한 번 제 등에 칼을 꽂아넣은 단체를 두 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놈들에게 생후 몇 달도 채 안되어보이는 아기를 맞기는 건 더더욱.


스티브는 분유를 고르면서 한숨쉬었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변명 해도 자폭했단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자. 옳지. 다 먹어야 해. 브록."


한참을 달래고 달래도 쉽게 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더니 젖병을 쥐여주자 거짓말처럼 아이는 조용해졌다. 얼굴을 후드로 푹 가리고 목이 터져라 우는 아기를 품에 든 채 마트에서 분유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빼도박도 못하게 영아 납치범같은 꼴 아닌가. 어쨌든 모텔에 들어와서 주인 여자한테 물어물어 성공적으로 분유를 탔다. 주인여자는 그를 의심스럽게 봤지만 귀찮은 일에 말려들긴 싫은 모양인지 고맙게도 신경을 꺼주었다.


"잘 먹네."


스티브는 제 팔 안에서 열심히 젖병을 빠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짜 잘 먹네. 난 오늘 하루 종일 암것도 못 먹었는데. 아기가 분유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스티브는 분유를 살 때 같이 샀던 연고를 짜서 몇 군데 생채기가 난 조그만 얼굴에 발라주었다. 도망가다가 생긴 상처였다.


그제서야 스티브는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 볼 틈이 생겼다. 보드라운 머리통에는 실날처럼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이 조금 돋아 있었다. 크고 깊은 눈은 머리칼만큼 까맸다. 그 외엔 아기들 얼굴 구분해내는 데에 별다른 소질이 없는 스티브로썬 딱히 럼로우를 닮았다 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럼로우가 아닌 건 아닐까? 괜스레 의심이 들어 여기저기 아기를 뜯어보고 있을 때 스티브를 올려다보던 아기가 한손을 들어 얼굴을 짝 내리쳤다. 갑작스런 공격은 아프진 않았지만 스티브로 하여금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아기는 두어 번 더 그의 뺨을 짝 짝 두들기더니 젖병을 문 채로 까르르 웃었다.


"나 참. 성질머리 하곤."


스티브는 픽 웃었다. 그는 브록의 고사리같은 손을 간질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살아남아야 하네 브록. 자넨 언제나 끈질겼잖아. 그의 생각을 모르는 아기는 대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