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럼로우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기르던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테리였던가 그랬을 것이다. 사실 그 때 당시 럼로우는 고작 대여섯 살 즈음밖에 되지 않아 기억나는 개에 대한 거라곤 그저 골든 리트리버와 비슷하게 생긴 잡종이라는 것과 거진 제 키만하던 몸집과 (지금으로 따지자면 아마 허벅다리에 못미치는 덩치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도 씻겨주지 않아 매일 꿉꿉한 냄새를 풍긴다는 점 뿐이었다. 럼로우는 개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다. 고아원에 들어가기 전 그보다 더한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도 지내 보았고, 빗물에 젖은 개냄새나 그런 건 그에게 있어 양호한 축에 속했다. 고작 그가 대여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럼로우는 고아원에서 보낸 반 년도 안 되는 기간동안 친구를 만들기 힘들어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전혀 친구를 만들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놈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그럴 수가 없었다던가. 자잘한 싸움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도둑질은 그보다 더했다. 럼로우는 그때 약했다. 어린 나이니까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아마 열 두살 쯤 될 때까지도 그는 쭉 길죽한 팔다리에 왠만한 바지는 줄줄 내려올 정도의 허리춤을 가졌었다. 그렇다해서 럼로우에게 생존 본능이 없는 건 아니었고, 그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맞부닥트리는 것 대신 테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택했다. 테리였던가, 이름은 여전히 가물가물하다. 어찌됐든 테리는 그가 고아원을 떠나기 며칠 전에 어떤 나이 깨나 있던 고아원생에게 얻어맞아 죽어버렸다. 어린 럼로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중얼거리곤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와 냄새나고 더러운 개를 밟아 죽인 고아원생의 배에 쑤셔넣었고 그로 인해 며칠 후 고아원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로는 뭐,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였다.
브록 럼로우가 모든 일에 있어서 사적인 감정을 고려할 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럴 일 자체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부모는 그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고 죽어버린 개새끼는 정을 쏟는 행위에 돌아오는 참혹함을 가르쳤다. 그 후 뒤따른 용병 생활과 하이드라의 요원짓도 그다지 감정적인 면과는 거리가 먼 일들만을 부여하고는 했다. 그래서 럼로우는 공과 사로 구분하는 법을 몰랐다. 뭐 그도 사람은 사람이니 아주 모른다 하긴 좀 그렇고 개인적 생각에 휘둘리는 일이 거진 없다고 말해야 겠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일은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세뇌당하거나(하이드라의 이념처럼) 혹은 도발당하는(간혹 로저스를 만날 때 느끼는 것처럼) 일이 없는 동안은 그저 '그'를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고보니 딱히 테리의 일을 들먹일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럼로우는 럼로우였고,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임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두 번 생각할 이유는 없다. 만약 명령이 아니었다면 그랬을거란 소리다.
하이드라의 연락망은 꽤나 정교하고 비밀스럽다. 수 년간 쉴드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럼로우가 그 날 비밀 장소로 향해 본부로부터 새로운 명령을 하달받고(럼로우는 이미 장기 임무 수행중에 있었지만 간혹 부가적인 임무가 들어오곤 한다. 게임에서 서브 미션 받는 걸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트라이스켈리온에 돌아올 때에 그는 이미 스티브 로저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여지껏 로저스에 대해서 보고한 바는 아주 냉철하게도 그의 겉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의 신진대사나 칼로리 소모량 따위를 포함해 몇 시에 운동을 하고 하루 몇 끼를 먹는다던지 하는 부분도. 임무에선 주로 어떤 동선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방패의 효율성은 몇 퍼센트인지, 그의 명령 전달방식에 어느 정도의 하자가 있는지 그의 격투 기술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취약한 점인지. 이 쯤 되면 그가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지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심지어 로저스의 애인조차(만약 애인이 있다면 -물론 로저스는 아직 싱글이다) 럼로우만큼 로저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럼로우는 그가 로저스란 사람을 충분히, 지나칠 정도로 알고 있다 여겼다. 그래서 그는 정작 로저스를 눈 앞에서 마주쳤을 때 아주 조금,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필요했는데."
로저스가 여상스럽게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로저스는 자신의 근처에서 럼로우를 발견하는 걸 아주 당연스레 여겼다. 그건 럼로우도 마찬가지다. 스트라이크 팀의 임무 대부분에 로저스가 함께 움직이는 건 어느새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고, 적어도 럼로우가 로저스의 근처에서 그를 지켜보아야 하는 임무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상 로저스는 그의 옆에서 럼로우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로저스가 그의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단 점이다. 예를 들어 로저스는 그가 샤워할 때 바로 옆 부스에 다가가 물을 틀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처음의 반응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뭔 일이십니까?"
"고양이를 주웠는데 말이야..."
로저스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더니 등 뒤에 돌리고 있던 팔을 앞으로 꺼냈다. 그의 큼지막한 양 손 안에는 금방이라도 짜부라질 것처럼 작고 보슬보슬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려 있다.
"어미가 차에 치여 죽어있더라고."
로저스가 말했다. 럼로우는 눈을 두어 번 꿈쩍였다.
럼로우는 이 빈틈 없는 남자가 간혹, 아주 간혹 이런 면모를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임무 때엔 가차없이 방패로 상대방 늑골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주제에 온통 약한 것들만 보면 이렇게 어쩔 줄을 몰라하곤 한다는 걸, 종종 본 적이 있다. 그 외에도 혼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를 보고 글썽인다는 거나 타코를 먹을 때 타바스코 소스를 잘못 뿌렸다가 얼굴이 전부 시뻘개지곤 하는 일도 있다는 거 역시 럼로우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점들에 대해 럼로우는 단 한 번도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없었다. 필요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브록 럼로우는 조금 고민하고 있다. '갈 곳 없는 새끼 동물을 주워오는 걸 좋아함' 이라고 보고서에 써야 하는 걸까? 그건 사실이긴 하겠지만 그만큼 정말로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다. 럼로우가 말했다.
"새끼 고양이는 쉽게 죽어요. 그냥 동물 병원에 맡기지 그래요."
로저스는 시선을 밑으로 내리며 고양이를 고쳐 들었다.
"그래야겠지."
"키울거죠?"
"아마도."
"정 붙이지 마요. 고양이는 잘 도망가니까."
럼로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로저스는 호출이 울리자 고양이를 냉큼 럼로우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들은 럼로우가 뭔 말을 하기도 전에 로저스는 이거 때문에 자네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임무 갔다올 때까지만 맡아줘. 찾으러 올테니까. 로저스가 그렇게 말하더니 조금은 제 나이 또래같은 (그러니까, 아마 이십대 초중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얼굴로 싱긋 웃어보였다.
"자네라면 잘 할 것 같아서."
뭘 잘 한다는 건지 로저스는 그렇게 말해버리곤 자리를 떴다. 럼로우는 내심 생각한다. 그런 웃음은 반칙이라고 말이다. 럼로우는 로저스처럼 약한 것들을 아끼는 취미도 없었고 새끼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더욱 그랬다. 그는 로저스가 어째서 이 일을 맡기기 위해 자신을 찾았는지 조금 의아하다. 남자를 잘 파악하고 있는 건 럼로우 그였지, 남자는 저에 대해 쥐뿔도 몰랐다. 럼로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들린 조그만 고양이를 품에 끌어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