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케이블 추모 합작글
사실, 죽음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의 연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다름 아닌 죽음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언제든지 부활이라는 패가 그의 손 안에 쥐여져 있었으니, 웨이드 윌슨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에게 단 한 가지의 방향밖에 제시하지 않았다. 살고 또 살고, 그리고 다시 살고. 그건 마치 양면에 같은 그림을 지니고 있는 동전과 같았으며 끝없이 같은 페이지만 반복되는 멍청한 책과도 같았다. 단순하다. 지루하다. 뻔하다. 죽음이란 그에게 그랬다. 가볍게 생각하는 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비록 그가 정신이 멀쩡했던 당시엔 과연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웨이드 윌슨은 오클라호마의 어느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네에서 불안하게 다리를 흔들어댔다.
-그러니까, 죽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냐. 난 셀 수 없을 만큼 죽었어. 아마 윈체스터 형제도 나보다 많이 죽지는 못했을 거야. 별 거 아니라고? 그렇지. 내가 지금 턱밑에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기면 난 죽게 될 거거든. 하지만 죽지 못하지. 그러니까 말이야, 죽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야. 그 녀석에게도 상황은 별 다를 게 없었어. 놈은 정말로 죽이기 힘든 녀석이었고 또 죽일 수도 없었지. 그만큼 강했으니까. 그래! 녀석은 강했어. 강한 놈들은 악당보다도 목숨이 질긴 법이지. 그렇지. 그러니까, 녀석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단 말이다.
조금이라도 지껄여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은 기분은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웨이드 윌슨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가 계속해서 그를 비판하고 놀려먹는 걸 방치했다. 그는 케이블을 알았으나 동시에 몰랐다. 그런 사람이었다. 친하다고 생각하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하면 ~일 것이다 혹은 ~하지 않을까 하고 짐작밖에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문득 웨이드 윌슨은 자신이 케이블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어쩌면, 그가 알던 모든 것을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웨이드 윌슨이 늘 그러했듯 말이다.
지평선 너머로 꺼지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넓게 펼쳐진 들판과 시골의 전경을 보며 웨이드 윌슨은 때 없는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건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였고 동시에 아주 잠깐 동안 있을 평화다. 그건 그의 드문드문 끊어지는 기억 속에서 그와 케이블이 함께 했던 얼마 안 되는 순간들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운치 있었다. 그 기억이란 것들은 떠오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웨이드 윌슨은 자신의 병든 몸이 이때처럼 한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프다 아프다 하면 정말로 아픈 것처럼 그는 답지 않게 이 죽음에 대해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만약 이걸 신중하다 부를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렇다는 소리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감정을 느껴본 것이 언제인지 혼란스러워졌다. 그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혹은 인간다운 감정은 과한 사치였다.
-아, 당신이네요.
소녀의 머리카락은 석양의 빛을 받아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색이었다. 햇빛에 물이 들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의 머리가 불에 타는 것인지 웨이드 윌슨은 잘 구분할 수 없었다. 그가 걸터 앉아있던 담장으로 다가와 가볍게 옆에 올라앉은 소녀의 등 뒤로 긴 망토가 바람에 흩날렸다. 소녀는 금방이라도 환상처럼 꺼질 것 같은 잔상처럼 보였고 웨이드 윌슨은 그것이 퍽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죠. 아니, 좋아했다고 하기 보다는 그것에 더 익숙한 것처럼 보였어요. 그가 비밀스러운 사람이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내게 지구에 대해 우주에 대해 만물에 대해, 세상의 모든 이치와 모든 악한 힘과 그들을 맞서는 무리와 그 무리들 안에서의 슬픈 전쟁에 대해 말해 주었죠. 그리고, 그 틈에 끼게 된 아주 불행한 자들에 대해서도 말이에요.
-네가 불행하다고 생각해?
-아뇨. 전혀요.
소녀는 웃으며 눈을 내려감았다.
-우리는 모든 불행한 자들을 위해 태어난 희망이니까요.
웨이드 윌슨은 소녀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석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온 땅을 붉고 노랗게 물들여가고 있었다. 그는 소녀가 어째서 우리라는 단어를 썼는지 알 수 없었으나,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의 일원이 되고 하나의 포함될 수 있는 개체가 된다는 기분 말이다. 그도 그렇게 느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혹은 그녀 역시도.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한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단 하나. 그것은. 웨이드 윌슨은 지는 석양을 향해 걸어가는 소녀의 등을 보았다. 작고 마른 등은 그가 보았던 수많은 노장들과 영웅들의 뒷모습 못지않았다. 웨이드 윌슨은 그녀에게서 그가 알던 누군가를 떠올린다. 이젠 희미한 기억조차 흐려지고 마는 어떤 남자를.
죽음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그건, 또 다른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