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
단문
새벽 쯤엔가, 그럴 것이다. 버키를 탈출시키는 데에 성공한 스티브는 그와 함께 이탈리아까지 걸리는 삼십 여 마일을 걷고 있었다. 아주 잠깐 숨 돌릴 시간이 들었을 때에 버키가 스티브를 소리없이 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뒤를 돌아 윗도리를 벗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언제 적이 뒤따라 올지 모르는 노릇이었고 숲은 울창했으며 새벽의 축축한 공기에 이슬이 맺힐 시간이었는데 그 중에서 다 헤어져 너덜거리는 셔츠를 벗는 버키의 등이 지극히도 비현실적이라 숨이 막혔다. 목구멍까지 치솟는 의아함은 잠깐이었다. 그 등 위에 역력한 고문의 흔적을 보았고, 스티브는 말 없이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그 천을 길게 찢었다. 그가 붕대처럼 만들어진 천조각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상체를 감는 동안 버키는 단 한 번의 신음도 내지 않았다. 어쩌면 신음을 내기에조차 너무 지쳐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버키는 야위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으며 등 뒤의 상처는 차마 제대로 보기에조차 끔찍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곪아 있었다. 버키가 말했다.
"벌 받는 건가봐."
다 닳아버린 목소리에 스티브가 미간을 좁혔다. 버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전에는 버키 반즈로부터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종류의 웃음이다.
"널 코니 아일랜드의 토네이도를 타게 만들었던 거 기억나? 싫다던 너를 잡아 끌고 억지로 태웠다가, 다음날 넌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앓았지."
"버키. 그만 말해."
"그거 때문이겠지? 아마 그것 때문일거야."
버키의 어둔 밤색 머리칼이 출렁 흔들리며 숙여졌다.
"그 외엔, 내가 이런 것을 겪어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을 떠올릴 수가 없어."
스티브는 불가항력으로 그때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작았으며, 버키는 조금 더 웃었다. 여름의 코니 아일랜드는 꽃내음으로 가득했으며 소녀들의 치맛자락을 너풀거리도록 만드는 바람에 마치 심장병이라도 올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는 했다. 회전목마의 음악소리와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섞여 흘렀고 버키는 스티브의 옆에 있었다. 그 순간이 아플 정도로 눈에 박혀든다. 롤러코스터에 오른 것처럼 명치가 조이고 기분이 고조된다. 손끝이 저린다. 미소가 서렸다. 그가 조금 더 작고, 버키가 조금 더 웃을 때의 이야기다.
스티브는 손을 뻗어 버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돌아가자. 버키."
우리의 집으로, 브루클린으로, 아니면 코니 아일랜드로 돌아가도 좋아. 그땐 내가 널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에 타게 만들어줄게. 살아 돌아가자. 모든 것이 끝나면, 이 전선이 끝나면 돌아가는거야. 내가 네게 잘못할 수 있는 그 모든 곳으로. 버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눈을 내려감으며, 그의 젖은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조금씩, 동이 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