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타크 x 닥터 스트레인지 1
에단님 리퀘
나이가 들면 비가 내릴 때마다 몸이 쑤신다고들 하던데. 스테판 스트레인지는 창밖을 내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비가 우울하게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시꺼먼게 아무래도 금방 멈출 기색은 없어 보인다. 사실 소서러 수프림이 되서 비가 오는 날에 관절이 쑤시다는 둥의 소리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가모토가 웃을 일이겠지만,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는지 어딘가 조금 늘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선 온 먹구름을 다른 지역으로 날려 보내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역시, 마법 남용은 금물이었다. 그래서 스테판은 손 끝으로 수정구슬을 굴리며 무감동한 시선으로 창 밖을 지켜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무료한 날이었다.
사실 그에게는 할 일이 많으면 많았지 없지는 않았다. 바로 얼마 전 타노스의 아들이라는 작자를 둘러싸고 한바탕 거대한 소동이 일어난 이후 그 뒷수습을 하느라 모든 히어로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스테판 역시 얼마 전까지는, 마찬가지였다. 일루미나티를 돕던 와중 스테판은 약간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로 하고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홀로 빠져나와 생텀 생토룸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무료한 것과 사서 일을 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특히 온 몸이 쑤시는데 일을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뭔 한숨을 그렇게 쉬고 있나."
스테판은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토니. 오랜만이군."
"오랜만은 무슨. 마지막으로 본지 이틀도 안 됐구만."
토니 스타크는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한 손에는 묵직한 서류 가방을 들고 양복 정장 차림으로 걸어들어 왔다. 그의 옆에서 안내하듯이 따라 들어왔던 웡이 고개를 가볍게 숙인 후 방에서 나갔다. 앤소니 스타크는 주변을 흥미로운 눈으로 둘러보며 걸어 들어왔다. 딱히 기다리고 있던 방문자는 아니었지만 보기 싫은 사람도 아니었다. 토니 스타크는 똑똑한 사람이었고, 비록 아주 전부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지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엔 많은 경우에서 대화가 잘 통했기 때문이다. 스테판은 치렁치렁한 망토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시간이 그렇게밖에 안 되었나? 세상은 혼란스럽고 매일같이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니 어쩔 땐 하루가 일 년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말이네."
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우리가 시간을 넘나드는 자들이긴 하지 않나. 그건 그렇고 지금 자네는 너무 일이 없어서 좀이 쑤시는 듯한 얼굴인데."
"그렇게 티가 나나?"
"내 눈은 못 속여."
스테판은 비뚜름하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래서, 날 즐겁게 해줄 일거리라도 가져왔나보지. 아마 그 가방 안에 있는 무엇인 것 같은데."
케이스에서는 강한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테판은 자신이 어딘가에서 그 힘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아주 강력한 마법적인 힘이나 초우주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무언가. 스테판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주시했다. 어째선지 토니 스타크가 그런 물건을 저렇게 쉽게 한 손 안에 들고 다닌다는 게 이질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토니는 테이블 위에 그 가방을 퍽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올렸다.
"맞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네가 즐거워 할지는 모르겠군."
그리고 토니는 가방을 열었다. 눈부신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다.
아. 비샨티여.
"코스믹 큐브?"
정육면체의 푸른 물질. 코스믹 큐브였다. 스테판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막지 못했다. 코스믹 큐브를 보는 건 아주 오래 지나지 않은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인-비트위너로부터 조종당해지는 수모를 그리 쉽게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비록 인-비트위너가 상상 이상으로 강한 존재였으며, 당한 것이 단지 그 혼자만이 아니라 할지라도 너무나도 쉽게 그의 손 안에서 놀아나게 되었던 일을 기억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토니 스타크 역시 그다지 사건 해결에 도움은 되지 않았었으니, 토니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고보니 그 이후에 코스믹 큐브의 행방에 대해 숙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러했듯, 토니 스타크는 빈틈을 남겨두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가 혼란 사이에서도 큐브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놀랍지 않았다. 여전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테판에게 몸을 기울이며 토니가 말했다.
"내가 이걸 갖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리드 뿐이야. 그리고 이제 자네도 추가 되었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지금 큐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네. 내가 몇 가지 장치를 붙여놓긴 했지만 이걸로는 어림도 없는 것 같아. 거의 반 시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할 정도로 회로가 빠르게 부식되어 버리거든. 애초에 에너지의 원천이 비교될 수가 없으니 그런 거겠지." 토니는 손가락으로 큐브 주변에 설치 되어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저번 롱샷과 관련된 일에서 이 큐브가 괴물의 모습을 띄었던 걸 기억하겠지? 아직까지도 그 괴상한 양면성인지 뭔지 하는 걸 지니고 있는 모양이야. 난 전혀 마법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게 바로 몇 시간 전 내 수트 중 하나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켰다는 것에서 그저 간과할 사실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알 수 있더군."
"무장해제?"
"시스템을 다운시키고 순식간에 내 수트를 껍데기 벗겨진 오렌지처럼 만들어 버렸지."
스테판은 토니의 비유가 대체 정확히 어떤 걸 뜻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결코 평범하게 일어날 만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토니가 마법과 거리가 먼 것 처럼 그 역시 기계 공학과는 별로 가깝지 않은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그의 수트들이 쉽게 무장 해제될 수준의 물건들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럼 확인을 해봐야 겠군."
생텀 생토룸의 공기가 뒤바뀌고 스테판 스트레인지는 손을 뻗은 채 눈을 내려 감았다. 토니는 한 발 물러선 채 그런 스테판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마법사의 망토가 크게 펄럭이고, 푸르고 노란 빛이 눈부시게 주변을 휘감았다.
토니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친우가 마법을 쓰는 걸 보는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또한 온갖 비논리적이고 마법적인 일들을 제 눈으로 목격해 왔으나 이런 장면을 볼 때 매번 약간의 이질적인 놀라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경험해 본 토니 스타크를 여전히 놀라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했다.
"자네 말이 맞네. 큐브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야. 아마 이전보다도 더."
눈을 가늘게 뜬 스테판은 요동치는 에너지를 느꼈다. 엄청나다.
"그 때 뒤틀린 시간축과 차원간 경계가 큐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 듯 하네. 당시에 끌어들인 타차원의 존재들만 해도 거의 열 몇 가지에 달하지 않았던가? 큐브의 힘이 대체 어디까지인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 상태로 방치한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장담할 수 없네."
"예를 들면?"
"물질의 속성을 바꿔 놓는다던가 에너지를 흡수한다던가, 혹은 시공간을 일그러트린 다던가."
"친숙한 말이구먼."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들의 다반사가 그런 종류니 토니의 말은 우울한 농담처럼 다가왔다. 스테판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신을 집중하며 손을 저었다. 그의 손 밑에서 움직이는 큐브의 에너지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건 뭔가로부터 벗어나려 드는 것처럼 보였고, 어떤 면에서는 안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큐브에게서 이런 기운이 느껴지는 것 자체가 정상인가? 그건 마치 이걸 의인화 시키기라도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신기하군. 스테판이 눈썹을 휘며 생각했다. 단순히 에너지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그리고 만약, 소서러 수프림인 그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좋은 징조만은 아닐 테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손을 내려 큐브를 만졌다. 따듯하고 기분 좋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눈을 멀 듯한 빛이 터져나왔다.
"스테판!"
신음하며 눈을 문지르던 토니는 주춤거렸던 몸을 제대로 세우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생텀 생토룸이 기이하게 뒤틀렸다가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큐브 역시 잔잔한 빛을 내며 그대로였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스테판을 발견하곤 가까이 다가갔다. 마법사는 어깨를 움츠린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스테판?"
"사라졌어."
중년의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사라지다니? 토니의 물음에 그가 다시 한 번 멍청히 말했다.
"비샨티의 힘이 느껴지지 않아."
"그 말은..."
"난 더 이상 마법을 쓸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