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처음 만난 곳은 허름한 골목길이었다. 그다지 첫 만남을 갖고 싶을만한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리는 땅거미가 져서 어둑했고 골목길의 바닥은 눅눅했으며, 고담이라는 도시의 이름에 걸맞게 금방이라도 질 나쁜 무리들이 고개를 들이밀 것 같은 음산한 범죄의 냄새가 풍기는 장소였다. 남자의 존재는 그 곳에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아서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을 그 곳에 억지로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동시에 남자는 마치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그는 골목길에 서서 제 고급 수트가 더럽혀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으며 담벼락에 등을 기대었다. 그제서야 할은 남자의 얼굴에 얼룩진 생채기와 멍 따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장소에 존속된다는 느낌은 쉽게 받기 힘든 종류였다. 그건 마치 지미 헨드릭스가 무대 위에 있어야 했고 마돈나가 남자들 틈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필연적이고 거부권이 주어지지 않는 그런 종류를 얘기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남자와 고담이라는 도시는 정말이지, 뭐라 해야할까, 연인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살을 뜯어먹지 못해 안달난 앙숙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곳에 있는다면 분명 파멸을 맞게 될 것을 알면서도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듯이 남자는 항상 뭔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 그는 할에게 일이 너무 많다고 싫지 않게 투덜거렸다. 인기가 많은 탓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남자의 얼굴엔 쓰디 쓴 피로함이 채 지워지지 않은 채라 할은 그가 한 말들을 곧이 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그 거짓스런 모습까지 남자는 도시를 닮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도시에선 매일 다른 모습을 보게 되지.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하, 그리고 그 이상을 마주하게 돼. 어느 쪽이던 끔찍한 건 마찬가지고." 남자가 손 끝으로 술잔을 빙글 돌리며 입으로만 웃었다. "이곳에 물들지 않기 위해선 항상 난, 이방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그게 온전한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 할은 그러냐 고 대답했다. 남자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거짓된, 가면과, 이중성과, 치열함, 또 절박함... 그가 이미 이 도시와 완연하게 닮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할은 남자를 탓하지 않았다. 원래 연인끼리는 닮는다고들 하지 않던가?
fi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