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스팁
마블+디씨 해리포터 AU
토니 스타크는 시계를 확인했다. 괴상한 작은 바늘들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시계를 흘끗 본 그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조심스레 닦았다.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sir. 옆에서 문득 말하는 자비스의 목소리에 괜시리 토니가 펄쩍 뛰었다. 기척 없이 거기 서 있지 좀 마! 자비스는 자신의 주인이 실험 때면 굉장히 예민해 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건 자신을 탓했다. 토니는 발바닥에 압정이라도 박힌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조금 있으면 그가 최근 넉 달 동안 매진해 오던 연구의 결과가 탄생할 참이었으니 말이다. 토니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과연 성공할까.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자비스에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성공 해야겠지. 성공 할거야. 내가 여기에 쏟아 부은 시간과 돈이 얼만데. 물론 내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공 해야 내가 지난 오십 육시간 동안 못 잔 잠을 잘 수 있을 거 아니야. 자비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 이상하고 특출나며 비범한 미국인을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원래 그랬다. 토니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작은 보라색 병을 집어 들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같은 동작으로 신중하게 기울였다. 그 안에서 액체가 한 방울 떨어져 솥 안으로 떨어졌다. 내용물이 순식간에 부글거리며 끓어 오르더니 마치 솥 밑에 개수구라도 생긴 것처럼 물 빨리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토니는 침을 삼키고 솥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의 양 손 안에는 작은 용이 들려 있었다. 토니 스타크는 신났고 자비스는 눈을 조금 크게 떴을 뿐이었다.
만들었어. 용이야. 용은 알에서 부화한다고 누가 그랬지? 내가 용을 만들었다고! 자비스. 확인해 봐. 토니의 손 안에 들린 작은 생명체는 긴 목과 긴 꼬리 그리고 그 몸뚱아리만큼 큰 날개 한 쌍을 가진 도마뱀처럼 생긴 것이었고 그건 질척한 액체에 잔뜩 젖어서 미끌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두 번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자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용이 맞네요. 내부는 자세히 스캔을 해봐야겠지만 겉모습은 확실히 용인데요. 토니는 반 쯤은 자비스의 말을 흘려 들으며 제 손 안에 들린 용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용은 토니를 향해 깍깍거리는 소리를 냈다. 토니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용을 만들었어.
마법의 약 과목 담당 교수인 토니 스타크가 어느 화창한 날에 마법의 약과 연금술을 혼합한 차마 짐작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용을 만들어 내려다가 마침내 실패했다는 소문은 다음 날 바로 호그와트 전체에 퍼졌다. 그 소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망스런 표정과 함께 이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토니 스타크는 천재였다. 하지만 용은 전설의 생물이다. 그 누구도 용을 '창조'해 냈다는 역사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본인의 자비와 호그와트에서 보태준 쥐꼬리만한 지원을 가지고 용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시작했다는 말이 돌았을 때 반 쯤은 말도 안 돼는 소리라고 치부했고 반 쯤은 그 토니 스타크이니 가능할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다. 의심 반 기대 반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토니는 1교시 시작 전 교탁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개운해 보이는 얼굴로 용은 실패했어. 라고 담담히 밝혔다. 학생들은 어쩐지 밝아보이기까지 하는 스타크 교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했고 토니는 교과서를 넘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당연히 성공해야죠. 마법부와 호그와트에서 받아먹은 돈이 얼만데. 페퍼 포츠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토니는 부루퉁한 표정이 됬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거의 그의 자비를 사용해서 연구 및 실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페퍼의 말대로 그가 연구비로 지원받은 돈만 해도 호그와트만한 크기의 성을 한 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토니는 돈이 많았다. 정말 질리도록 많았다. 그린고트에서 그의 돈을 수용하기 위해 지하 한 층을 전부 다 써야 한다고 투덜거릴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부와 호그와트에선 그가 용을 만들 거라는 말을 꺼냈을 때 수 십번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기나긴 회의들을 거듭한 후에 그를 원조하기로 결정했다. 용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이나 약 제조법 혹은 연금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시도해 본 사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그것에 성공하면 그건 역사적이며 획기적이고 동시에 경이롭고 또한 끔찍한 일이기도 했다. 토니는 어깨를 으쓱 했다. 어차피 그 작자들은 용의 제조법만 탐내는 것들이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이 덮인 네모난 물건에 다가갔다. 천을 걷자 우리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고슴도치만한 붉은 용이 있었다. 그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용을 보았다.
이건 마법부는 물론이고 모든 마법사의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갖고 올거야. 용의 제조가 성공하다니.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 토니는 다시 천을 덮고 탁자로 돌아와 지친 듯 털썩 앉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용은 단 한 마리 뿐이고 그것마저 죽어가고 있지. 그렇게 비늘과 뿔과 발톱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빼앗겼는데 죽지 않는 게 용할 정도지. 그런데 용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어. 마법의 힘으로. 토니의 주절거림을 듣고 있던 페퍼는 입을 열었다. 장난이 아니네요.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장난이 아니지. 페퍼는 다시금 자신이 작성하던 서류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용의 제조법의 실패와 그에 따른 보고서 및 마법부의 절차들에 관한 서류들이었다. 결국 저지르는 건 토니 스타크의 몫이고 그 뒷처리를 해야하는 건 페퍼 포츠였지만 그녀는 이미 익숙한 듯 역정조차 내지 않았다. 페퍼는 재빠르게 깃펜을 놀렸다. 하지만 처음에 그들에게 알리고 원조까지 받아가며 실험을행한 건 토니 당신이었잖아요. 토니는 손안에 들린 약병을 빙글빙글 돌렸다. 사실 나 역시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성공할 줄은 몰랐어. 세상에, 용이라고 페퍼! 용을 만드는 거야. 사람의 손으로! -알고 있어요 토니. 안다구요.-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돈을 주며 내게 이 실험을 맡겼겠어? 내 실력을 믿은거야. 내가 성공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던 거라고. 토니 스타크는 백 년, 아니 이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하는 천재니 말이야. 페퍼는 노골적으로 눈을 굴렸지만 토니는 개념치 않았다. 그런 내가 실험을 시도했고 실패했어. 그 말은 그 어떤 누구도 이 실험에 성공할 수 없다는 소리고 용의 제조법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라고 치부되는 걸 말하는 거야.
페퍼는 토니의 말에 깃펜을 내려놓았다. 토니 스타크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은 머릿속에선 분명 1초 안에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의 수십 배는 빠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는 간혹 방탕하기도 했고 산만하기도 했으며 플레이보이스러운 면모도 있었으나 본질의 그는 언제나 그 누구보다도 한 발 앞서서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간혹 그의 동료이자 비서이며 친구인 페퍼에게도 말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그녀는 이해했다. 심지어 그녀조차 토니 스타크의 모든 계획들을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 토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페퍼를 진지한 경청자로 만들수 밖에 없었다. 아마 내일이면 신문에 기사가 나겠죠. 용의 제조법에 대한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 말예요. 빌어먹을 기자들이 당신을 취재하러 올테고 그것들을 상대해야 하는건 내 몫이겠죠. 토니는 어깨를 으쓱 했다. 미안 페퍼. 내가 취재나 기자 회견에 질색하는 거 알잖아. 알고 있어요. 그걸 피해서 이 산골짜기에 틀어박힌 호그와트로 온 거잖아요. 근데 당신은 마법부에서 이번 일을 가만히 넘길 거라고 생각해요? 아 실패하셨습니까 그것 참 안됬군요 하고 넘어갈 줄 알았냐는 말이에요. 토니는 한숨쉬었다. 물론 아니겠지. 빚쟁이들처럼 달라들걸. 하지만 난 이미 그들에게 실험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었어. 여러 부분에 거짓말을 조금씩 섞어 넣은 엉터리긴 하지만. 그들은 우선 그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을거야. 만약 조금이라도 나만큼 똑똑한 놈이 있다면 그 수식을 완성시켜 용의 제조법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단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잖아? 페퍼는 이 자신감 넘치는 남자에게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몰라 포기했다. 그녀는 손 끝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너무 무모해요. 당신 너무 마법사들을 얕보는 거 아니에요? 만약 그들이 수식을 완성시키면 어쩌려구요. 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장담하지.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어 낼 수 있는건 다리 세 개 달린 땅귀신이나 날개 달린 이구아나 같은 걸거야. 페퍼는 얼굴에 주름이 느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요. 어쨌든 이제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해보죠. 토니 당신이 의도적으로 용의 제조법이 불가능한 것이란 걸 알리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감행했다는 것에 대해.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높고 구름도 얼마 없었다. 퀴디치를 하기 딱 좋은 날이라고 모든 이가 생각할 즈음에 한 체격 좋은 금발의 남자가 필드로 걸어 나왔다. 스티브 로져스는 최신형의 파이어볼트를 든 채 곧은 걸음걸이로 걸었는데 마치 전투에 임하는 군인의 자세와 비슷했다. 퀴디치용 복장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어딘가 갑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간혹 교실로 이동하던 학생들이 스티브를 발견하고 시선을 주곤 했지만 평소처럼 인사를 걸거나 하진 않았다. 비행을 앞둔 스티브 로져스의 자세는 차마 말을 걸기 힘들 정도로 경건해 보였다. 그래서 스티브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빗자루 위에 올라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을 수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날아올라 호그와트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비행에서 오는 아찔한 쾌감에 숨이 거칠어졌다. 하나의 나무 막대기에 몸을 지탱한 채 온 몸으로 바람을 맞서야 하는 중력을 무시한 부유감은 매번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스티브는 고도 비행을 하며 날씨와 비행 환경을 체크했고 잠시 후 필드 위로 돌아왔다. 빗자루에서 내려오던 그는 턱의 땀을 훔치다가 자신을 뚫어져라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팔짱을 낀 채 나무에 삐딱하니 기대어 서 있던 토니 스타크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토니 스타크는 슬리데린의 담당 교수였으며 마법의 약 교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티브 로져스는 몇 년 전 호그와트를 졸업했고 현재 비행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퀴디치 감독관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학생이었던 당시 그리핀도르에 있었다. 비록 토니 스타크가 슬리데린의 사람 답지않게 활달하고 경쾌한 성격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긴 했으나 그와 스티브 로져스의 조합은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둘은 전혀 접점이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브는 고글을 벗으며 토니에게 다가와 웃었다. 좋은 아침, 토니. 그 식상할 수 있는 인사마저 스티브 로져스가 말하니 굉장히 중요한 단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토니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아 곧 수업인가보지? 빗자루 체크하고 있었나?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날씨도 확인할 겸. 비행하기 딱 좋은 날씨야. 토니는 얼굴 가득 웃었다. 어쩜 저렇게 바보같아보일 정도로 티끝없을 수 있지.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토니가 말이 없자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가? 내게 볼 일이라도 있나? 토니는 눈썹을 이상한 모양으로 휘었다. 자네 소식 못 들었어? 스티브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다. 소식이라니, 무슨? 무슨 소식이긴. 내가 용의 제조를 실패했다는 소식 말이야.
금발 남자는 정말 놀란듯이 눈을 크게 떴고 토니는 허참 하고 웃었다. 아무리 소식이 늦다지만 학교 전체가 다 아는데 왜 몰라? 하지만 토니가 뭐라 말을 하던 스티브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토니의 어깨를 짚고 진지하게 물었다. 자네 괜찮은가? 토니는 눈을 깜박였다. 뭐가? 자네 그 연구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있지 않았나. 그렇게 노력했는데 실패했다니 정말 유감이네. 토니는 머리를 긁적였다. 스티브는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하고 있었기에 일말의 죄책감이 올라오려 했다. 그는 과장된 행동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으로 죄책감을 지웠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라고 항상 성공만 하는 건 아니니까. 스티브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토니의 모습에 의아한 듯 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항상 너무 높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 용을 만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좀 무모하지 않았나 싶네. 자네라면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물론 했지만. 스티브는 계속 주절거렸고 토니는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스티브는 아직 수업 시작까진 시간이 있다며 산책이라도 하자고 권유했지만 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곧 가봐야 해. 페퍼가 일처리를 하느라 머리를 쥐어 뜯고 난리가 났거든. 스티브의 눈에 물음표가 떠오른 것을 본 토니가 추가 설명을 붙였다. 내가 실험에 실패한 것 때문에 그래. 소식을 들은 마법부에서 오늘 사람을 보낸다고 하더군. 오후 쯤엔 예언자 일보에서 기자들이 들이닥칠 모양이고. 내가 죽일 놈이지 뭐. 토니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스티브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에 곧 웃음을 지웠다. 마법부에서 사람이 온다니 그거 정말로 심각한 일 아닌가? 자네 혹시 무슨 문제라던가 생긴 건 아니겠지? 그의 표정과 말투에 토니는 웃었다. 물론 속으로만 웃었다. 그는 이 매사에 진지하고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곧은 남자가 좋았다. 페퍼나 자비스 다음으로 그가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몸 하나 처신할 수는 있으니 걱정하지 마. 단지 자네한테 아주 작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건가? 토니가 갑작스럽게 부탁에 대해 말하자 스티브는 어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의 눈에 비친 토니는 지금 실험에 실패한 슬픔을 억지 웃음으로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토니는 어쩐지 착잡한 마음으로 그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바닥만한 상자 하나를 꺼내곤 그 위를 지팡이로 가볍게 두들겼다. 상자는 점차 부피를 늘리더니 양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커졌다. 스티브는 얼떨결에 토니에게서 상자를 받아들었다. 이게 뭔가? 토니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얼핏 스쳤고 스티브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그의 무리한 부탁 중 하나일 것이란 걸 느꼈다.
사실 내가 다른 실험을 조금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토니는 상자의 위에 덮인 뚜껑을 슬쩍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팔뚝만한 크기의 새끼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스티브는 재빨리 그것을 살폈다. 이상한 뿔이 달리지도 불을 뿜지도 않는 평범한 강아지였다. 동물의 생체리듬을 변환시키는 약물을 만들어보려고 했거든. 근데 생각처럼 재밌는 실험이 아니더라고. 근데 실험용으로 쓴 이 강아지를 처치할 수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보낼 때까지 내가 데리고 있게 되었지 뭐야. 토니의 재빨리 이어지는 말에 스티브가 묘한 시선으로 끼어들었다. 정확히 말해 보게. 자네가 아니라 내가 데리고 있게 되는 거겠지. 토니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네, 스티브. 청년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남자가 아이같은 표정을 짓는 것에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토니 난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네. 하지만 토니는 강경했다. 자네처럼 적합한 사람이 없는걸. 비행 수업이나 퀴디치를 하지 않는 경우엔 시간이 비어서 늘 심심해했잖아? 강아지랑 좀 놀아주고 그래. 아주 순하더구만. 항상 자네를 볼 때마다 개를 키우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곤 했지. 스티브는 그를 슬쩍 째려보았고 토니는 헛기침을 했다. 음식은 다진 날고기를 주면 좋아하더군. 키우는 데에 필요한 게 있으면 내 앞으로 청구서 보내. 페퍼가 처리해 줄테니까. 어때, 괜찮지 않아? 스티브는 자신의 팔 안에 들린 묵직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상자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잠시 침묵하던 스티브는 결국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알았네. 보아하니 자네가 이 강아지를 돌볼 상황이 안 되는 것 같으니 내가 맡아주겠네. 토니는 그 와중에도 스티브의 말을 정정했다. 상황이 안 되는게 아니라 못 하는거야. 난 뭔가를 돌보는 데에 끔찍이도 소질이 없거든.
스티브가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에 그는 토니의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한 인영을 보았다. 정갈한 금발에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는 자비스는 스티브를 향해 눈인사 했고 스티브 역시 마주 인사했다. 마법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sir. 자비스의 말에 토니가 질린 표정으로 알았다고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아무튼 잘 부탁해. 곧 찾으러 올 테니까. 그리고 걸어가던 토니는 아참 하면서 고개를 틀었다. 실험 후유증이 조금 남아서 보통 강아지보다 성장이 빠를거야. 너무 놀라진 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토니는 자비스와 함께 필드에서 걸어나갔다. 스티브는 토니가 사라진 후에도 잠시 상자를 든 채 그러고 서 있었다.
이제 여름이 바싹 다가오고 있는 와중 토니 스타크의 실패한 용의 제조법에 대한 이슈는 곧 잠잠해졌고 다들 곧 있을 퀴디치 시합에 대해 벌써부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작년과 제작년엔 연이어 그리핀도르가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랬기에 다른 기숙사들, 특히 슬리데린이 제대로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학생들이 눈이 마주치면 서로 노려보고 비난하기 일쑤였고 아침 식사시간 연회장에서도 그 분위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비록 교수들의 앞이라 많이 노골적이지는 않았으나 신경전을 하고 있다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딕 그레이슨은 다른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그러던 말던 제 앞에 놓인 시리얼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얼마 있지 않아 부엉이와 올빼미들이 소포나 편지 등을 매단 채 들어왔고 딕은 매일 배달시켜 보는 신문이 자신의 앞에 툭 떨어지는 걸 집어 들었다. 첫 면은 이번에도 토니 스타크의 사진이 장식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토니 스타크가 사진 속에서 정장을 입은 채 플래쉬 세례를 받고 있었다. '천재 조만장자의 실패-용은 더 이상 없다'라는 제목이 박혀 있는 전면 기사였다. 기사를 대충 훑어본 딕은 교수들이 앉아있는 곳을 보았다. 그 곳에 며칠 째 토니 스타크는 보이지 않았다. 뭐 원래 스타크 교수가 아침을 먹으러 오는 경우는 드물긴 했지만 그는 지금 호그와트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아마 마법부 어딘가에서 시달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계적으로 시리얼을 씹으며 신문을 넘겨보던 딕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털썩 앉았다. 의자가 흔들거릴 정도로 큰 덩치의 토르 오딘슨은 헝클어진 금발을 해선 하품을 쩍쩍 했다. 주변에서 그가 연회장에 들어올 때부터 온갖 시선이 꽂혔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하다. 딕은 그를 흘끔 쳐다보곤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어젯밤 상대는 누구였어? 빵을 우물거리던 토르가 대답했다. 시프. 시프? 너 의외로 걔랑 자주 어울리네. 토르는 큰 어깨를 으쓱 하며 연신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나른하고 멍청한 사자같았다. 그러는 딕 너는 걔랑 좀 어때? 래번클로의 진저말이야. 이번에는 딕이 어깨를 으쓱 할 차례였다. 어찌됬든 둘 다 숱하게 여자 갈아치운다고 소문 난 사람들이긴 하다.
그거 스타크 교수님 아냐? 딕이 신문을 내려놓을 때 토르가 말했다. 맞아. 요새 계속 예언자 일보 1면을 장식하고 있지. 토르는 헤 입을 벌리며 신기하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구나. 맨날 봐서 못 느꼈는데 말야. 원래 뭐 하던 사람이더라. 딕이 대답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갖고 있었잖아. 빗자루부터 지팡이까지 거의 모든 마법 물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던 곳이었지. 지금은 영업 중지한지 오래지만. 그제서야 토르가 아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때 스타크 사가 문을 닫는다고해서 한동안 난리였지. 내 친구놈 아버지가 거기서 일했었는데 하루만에 실업자가 됬었거든. 딕은 그 당시를 떠올렸다. 스타크 사가 영업을 중지한 건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거대 기업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마법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 기업이었고 하워드 스타크부터 2대 째 물려오던 전통있는 마법사 기업이기도 했다. 특히 하워드 스타크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토니 스타크는 천재적인 두뇌로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인재였고 스타크 사를 마법 세계뿐만이 아니라 머글 세계에서도 이름을 알리도록 만든 거물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토니 스타크는 그의 회사를 영구적으로 닫아버리게 된다. 지팡이 유출사건이 바로 그 일이었다. 그건 그 누구로 하여금 갑자기 기업을 닫아버린 토니 스타크를 비난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한동안 잠적하던 토니 스타크는 몇 년 전 호그와트의 교수가 되었다. 그걸로도 한 때 정말 말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학생들은 셀레브리티나 다름 없는 토니 스타크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안달을 내곤 했다. 물론 지금은 며칠동안 실험하느라 밤 샌 후줄근한 차림새로 학교를 어슬렁거리고 학생들을 놀리거나 농담따먹기 하는 걸 좋아하는 괴짜 교수로 이미지가 박혔지만 말이다. 딕은 더 이상 토니 스타크에 대해 생각하기를 관두고 눅눅해진 씨리얼을 입 안에 쏟아 넣었다. 토르는 식탁 위의 모든 음식을 쓸어버릴 기세로 먹고 있었다. 퀴디치 연습은 잘 되어가? 딕의 질문에 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다들 열의에 불타는 것 같고. 토르는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주장이었다. 올해가 우리 마지막 학년이잖아. 피날레를 장식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딕은 토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고 토르는 그렇지 하고 웅얼거렸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반응이었지만 토르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딕은 다음에 물어보기로 생각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에 교수들의 식탁으로부터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스티브 로져스는 딕과 눈이 마주치자 아는 체를 했다. 토르도 스티브를 보곤 손을 들어보였다. 스티브는 그들의 선배일 때부터 알고 지냈기도 했고 예전에 딕과 토르 둘 다 스티브가 주장으로 이끌던 퀴디치 팀에 있었다. 딕은 인사를 하다가 스티브의 얼굴이 평상시와 다르게 조금 퀭해 보인다는 걸 눈치챘다. 게다가 뺨에는 뭔가에 긁힌 듯한 상처 역시 있었다. 빗자루에서 떨어지기라도 했어요 선생님? 딕의 질문에 스티브는 조금 웃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애완 동물을 한 마리 키우게 됬는데 아직 친해지지를 못했네. 음식으로 볼이 빵빵해진 토르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애완동물? 음. 강아지...아니,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어. 이런. 밥 줄 시간이 되었군. 스티브는 두 사람이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급하게 인사를 하곤 멀어져갔다. 딕과 토르는 의아한 얼굴로 스티브의 뒷모습을 보다가 서로를 향해 으쓱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로저스 선생이 스타크 교수와 친하지 않았어? 토르의 말에 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 좋아 보이던데 로저스 선생 걱정 많이 하겠네. 남 걱정 잘 해주는 사람이잖아. 토르는 턱을 긁적였다. 퀴디치 연습 상대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스티브 로저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궜다. 그의 방은 다른 교수들의 숙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건 그가 정식 교수가 아닌 선생으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은 꽤 넓었고 모든 필요한 것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이전에는 넉넉하게만 느껴졌던 방이 최근 굉장히 좁아진 느낌이 난다. 스티브는 방 한 쪽의 푹신한 러그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개에게 다가갔다. 그래 그건 더 이상 강아지로 부르기 힘들 정도로 커져 있었다. 처음엔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젠 두 손으로 안아야 한다. 성장이 빠르다고는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개는 스티브가 다가오자 마치 여태껏 자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눈을 떴다. 눈알이 노란빛이 났다. 그건 어딘가 파충류의 느낌이 나서 처음에는 소름이 돋곤 했는데 이젠 익숙하다. 개는 척 봤을 땐 온순해 보이지만 은근히 사나웠다. 스티브는 다진 고기를 준비해 조금 떨어진 곳에 엉거주춤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개는 한동안 눈을 굴리더니 느릿하게 일어나 고기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이 어쩐지 개 답지 않다. 하지만 스티브는 딱히 개를 키워본 적도 없었거니와 토니의 말 -실험 대상이라고 했으니 충분히 보통 개와 다를 수 있었다-을 조합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싶어도 그냥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개는 스티브가 만지거나 하면 이를 드러내고 가끔은 앞발을 휘두르기도 했다.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건 다반사였다. 스티브는 개가 온순하다고 했던 토니 스타크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나마 지금은 처음보단 많이 나아져 그르렁거리거나 날뛰는 경우는 없지만 여전히 경계심이 심한 편이었다. 스티브가 개를 기르게 된 지도 일주일째였다.
개는 무슨 육식동물마냥 다진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곧 뼈도 씹어먹을 기세였다. 스티브는 턱을 괸 채 개가 식사하는 걸 지켜 보았다. 그는 토니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모두가 토니에 대해 떠드느라 난리다. 마지막으로 필드에서 만났을 때 토니는 용의 제조법이 실패한 것이 별 것 아닌 일처럼 말했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닌 게 확실하다. 현재 토니는 그의 수업들을 전부 자비스에게 맡겨놓은 채 도심으로 가 있었다. 스티브에게 있어서 마법부나 기자회견이나 이런 단어들은 굉장히 먼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에 나오는 토니는 마치 이것이 제 일상인 것처럼 행동했고 달변가처럼 말했다. 정장을 입은 채 플래쉬 세례를 받는 토니의 모습은 스티브에게 왠지 모를 이질감을 주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그는 토니를 개인적으로 알게 된지 반 년밖에 되지 않았다. 남자는 그에 관한 수많은 기사들과 루머들처럼 주목받지 않기에 힘든 사람이었고 동시에 어느 면에선 평범하고 소탈하기 그지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티브 로저스로 하여금 토니 스타크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가 뼛속까지 슬리데린이며 유서 깊은 마법사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핀도르에다가 머글 태생인 스티브 로저스를 그 어떤 일말의 편견도 없이 대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스티브는 눈을 내려 깔았다. 식사를 다 마친 개가 나른한 듯 다시 엎드렸다. 네 주인도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그렇지? 스티브의 말에 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친애하는 스티브에게.
잘 지내나? 비행하다 떨어지진 않았고?
내가 맡긴 자그마한 강아지는 지금 쯤 아주 커졌을 거라고 생각하는군. 부디 그 강아지로 인해 자네의 일상에 큰 지장이 없길 바라고 무사하길 바라네. 음...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말야. 자네는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며. 애완 동물은 여러 면에서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혹시 문제가 있으면 페퍼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자비스에게 부탁하도록 해. 사실 자비스에게 말하는 것이 훨씬 나을거야. 페퍼는 지금 완전 시한폭탄이거든. 아니 지뢰라고 하는게 더 나을까. 나조차 그녀에게 말을 걸려면 보호마법을 걸어야 할 정도거든.
흐음.
그리고 아마도 자네 성격에 내 처지를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 뻔하니 말해줄게. 신문에서 봤겠지만 난 마법부에 붙들려있지. 내 연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어대는데 마치 성추행 피해자가 된 기분이야. 자꾸만 실패한 것에 대해 질문해대니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하고. 슬슬 이 지긋지긋한 곳을 빠져나가야겠어.
어쨌든 걱정이 되어서 편지 보내봤어. 바빠서 길게 쓰지는 못하겠군. 강아지가 꽤 커지면 뼈 채로 날고기를 줘도 괜찮을거야. 그리고 따듯한 곳을 좋아하더군. 사람을 꽤 잘 따르지? 귀여운 놈이야. 아 이름은 지어줬나? 강아지라던가 개라고 부르고 있는건 아니겠지?
토니가.
토니는 부엉이를 날려 보냈다. 멀어지는 부엉이를 보던 토니의 뒤에서 페퍼가 그를 불렀다. 갈 시간이에요 토니. 준비 됬어요? 페퍼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며 토니가 씩 웃었다. 난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
비밀스러운 만남이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은 모임이었고 소수의 마법사들만이 그 모임이 이뤄질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토니는 마법부 장관 사무실도 위즌가모트도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야 했다. 이 만남을 위해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법정을 연상시키는 방이 나왔고 토니는 진저리 난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벌써 거의 일주일 짼데 이 놈들은 질리지도 않는 듯 했다. 그 곳엔 이미 몇 명의 마법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토니가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하는 것과 동시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또 뭡니까. 서류도 제출했고 증언도 했고 심지어 역주문 마법까지 걸지 않았소? 아예 옷도 벗으라고 하지 왜? 토니의 비아냥에 몇 명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마법부 장관 라스 알 굴은 침착했다. 아직 방법은 많이 남아있지. 레질리먼시를 걸 수도 있고 베리타세룸을 먹일 수도 있네. 그 말에 토니는 순식간에 표정을 서늘하게 굳히며 상대를 노려 보았다. 그 방향을 택하겠다면 난 내 모든 권위와 능력을 동반해 나의 권리를 지킬거요. 당신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원하지는 않을텐데. 토니는 그가 부당하다 생각하는 처사를 받을 경우 마법을 사용해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거절할 것이라는 의견 표출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신네들과 나는 이 이상 서로를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소. 내 회사를 닫을 때에 이미 당신들은 날 충분히 모욕했고 당시 난 내 잘못이 있었으니 그 모욕에 관해 묵언했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부디 당신들 마법부가 날 어떻게 휘두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줬음 좋겠군. 토니는 강경했다. 머리를 멀끔하게 넘긴 채 고급 정장에 마법사 로브를 걸친 토니 스타크의 모습은 예전 그가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운영할 때의 빈틈없고 날카로운 사업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토니 스타크는 그의 동굴 안에서 웅크린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뿐 여전히 맹수였다. 라스 알 굴은 양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걱정 말게. 우리 역시 자네의 기분을 더 이상 안좋게 하고 싶진 않으니. 자넨 실험에 관한 정보를 모두 넘겨주었고 그걸로 충분하네. 애초에 계약은 자네가 실험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둔 채 진행되었던 거니 말이네. 토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라스 알 굴이 사람 좋은 척 할 때가 가장 꼴보기 싫었다. 라스 알 굴은 토니의 표정에 개의치 않고 대기하던 마법사에게 손짓을 했다. 하지만 엄청난 지원비를 들인 우리 입장도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나. 오늘은 손님을 한 분 불렀네. 자네도 잘 아는 분이지. 토니는 의아해하며 방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곧 괴상한 표정이 되었다. 자비에 교장 선생?
자비에는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휠체어에 평상시와 다름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호그와트의 교장인 자비에의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까지 감돌고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몇 명의 마법부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동요했다. 인물이 훤해졌군 토니. 자비에가 말했다. 토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분이 왜 여기 있는거지? 이건 절대적으로 마법부와 나 사이의 일이네. 라스 알 굴은 토니의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자비에 교수 역시 자네의 연구를 지원하지 않았나. 이 일과 깊은 연관이 있는 분이지. 우리 함께 그 실험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해 보자고. 라스 알 굴은 눈을 빛냈다. 자네가 용을 만들 수 없다면 누군가는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1학년들의 비행 수업이 끝난 후에 스티브는 빗자루들을 정리했다. 그 와중 문득 자신의 방 안에 있을 개가 떠올랐다. 개는 토니에게서 건네받은 후 단 한 번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지 주는 먹이를 먹고 잠을 자거나 간혹 스티브의 신발 혹은 베개같은 걸 갈갈이 뜯어놓곤 할 뿐이었다. 보통 개들은 밖에서 뛰놀고 산책하는 걸 좋아하지 않나? 하지만 개는 따듯한 곳이 더 좋은 듯 러그 위나 스티브의 침대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게다가 몸에 물이 닿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해 목욕을 시키려다 물어뜯길 뻔 한 스티브는 가까스로 개에게 마법을 걸 뻔 한 것을 자제할 수 있었다. 다행히 스티브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딱히 개가 그를 귀찮게 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둘의 동거는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스티브는 며칠 후에 자비스에게 다진 고기 대신 뼈가 있는 생고기를 보내달라고 부탁해야하나 생각했다. 개는 정말 식성이 좋았고 배가 고플 때면 위협적인 소리를 내곤 했다.
그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빗자루 창고의 문이 열리며 몇 명의 슬리데린 고학년 학생들이 들어왔다. 스티브는 불편한 내색을 숨겼고 학생들은 대놓고 이죽였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는 하지만 표정은 좋지 않다.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퀴디치 팀에 있는 학생들이 연습을 하러 온 모양이다. 스티브는 그들이 그의 근처를 지나칠 때 그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잡종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걸 들었지만 듣지 못한 척 했다. 슬리데린 학생들은 그들의 우상이다시피 한 토니 스타크와 친분이 있는 스티브 로저스에게 비교적 심하지 않게 대하는 편이긴 했으나 여전히 보수파의 아이들은 머글 태생인 스티브를 못마땅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런 대우에 익숙했다. 학생들의 낄낄거림과 수군거림이 거슬릴 정도가 되었을 때 다른 슬리데린 학생이 한 명 더 들어왔다. 데미안 웨인이 나타나자 학생들은 그를 반기며 너도나도 인사를 하고 스티브에 대해 수군거리던 이야기를 딱 멈췄다. 데미안은 스티브를 흘끗 보곤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 먼저 나가 있어. 학생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창고에서 나갔다. 스티브는 데미안과 친하진 않았지만 그를 알고 있었다. 토니 스타크와 데미안 웨인은 서로 꽤 가까운 사제사이였기 때문에 토니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했다. 하지만 데미안 웨인은 워낙 유명인이라 학교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마법부 장관인 라스 알 굴의 손자이자 고결한 피를 가진 마법사. 4학년이어야 하지만 명석한 두뇌로 인해 월반을 해 현재 5학년이고 실제론 7학년의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 답지않게 훤칠하기도 했고 슬리데린의 퀴디치 팀 주장이었다. 말 그대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학생이었다. 스티브는 데미안에게 얼핏 웃었다. 고맙다. 그 아이들을 내보내줘서. 데미안은 스티브의 쪽을 보지도 않으며 자신의 빗자루 -개조된 최신형의 파이어볼트-를 손질했다. 딱히 그 쪽 때문에 그런건 아냐. 딱딱한 목소리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데미안 웨인은 누군가를 위해 그런 선심을 쓸만한 녀석으론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데미안 웨인은 알아주는 보수파였다. 여전히 태도가 건방지긴 하나 이 정도까지 스티브와 말을 섞고 무례하지 않게 대하는 것도 아마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가 친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티브가 빗자루를 정리해놓고 창고에서 나올 때에 그의 뒤를 따라 데미안 역시 밖으로 나왔다. 스티브는 학교 쪽으로 돌며 데미안에게 말했다. 연습 열심히 하게. 끝나면 창고 정리 해놓고. 그리고 그가 걸음을 옮기려 할 때에 데미안이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옆에 서니 데미안은 스티브와 키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요즘 스타크 교수님과 연락해? 데미안의 질문에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호그와트를 떠난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었네.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데미안은 다른 질문을 했다. 용은 어딨지? 스티브는 눈썹을 휘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용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반응에 데미안은 쯧 혀를 차곤 역시 실패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 질문과 중얼거림이 어딘가 미심쩍었다. 스티브가 그에게 뭔가 질문을 하려고 했을 때 그를 향해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클린트 바튼이었다. 클린트는 스티브를 향해 로저스 선생님 하고 말하며 다가오다가 그의 옆에 선 데미안을 발견하곤 약간 주춤했다. 데미안은 잠시 클린트를 쳐다 보더니 스티브에게 인사도 없이 긴 다리를 움직여 필드를 향해 걸어가버렸다. 그가 멀어졌을 때가 되서야 클린트는 스티브에게 가까이 왔다. 클린트는 후플푸프의 6학년생으로 책을 읽는 걸 좋아해 간혹 스티브와 대화를 나누곤 하며 친해졌다. 그는 서둘러 왔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웨인이 시비라도 걸었나요? 클린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아니네. 근데 무슨 일이지? 날 찾아 온건가? 그의 말에 클린트가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스티브에게 건넸다. 잔뜩 구겨지고 핏자국까지 묻은 편지를 대충 훑어 본 스티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거 토니가 내게 보낸 편지군. 클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갖고 온 부엉이가 거의 너덜너덜해져 있더군요. 다행히 제가 마침 서쪽 탑에 있어서 그 녀석이 들어오는 걸 발견했구요. 스티브는 편지를 살폈다. 그 내용 자체에는 별 중요한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부엉이가 편지를 운반하는 도중에 피를 흘릴 정도로 공격당했단 건 누군가 토니 스타크가 보내는 편지를 노리고 있었다는 뜻일테다. 그는 편지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이것에 대해 누군가한테 말 했나? 클린트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제 몸 하나 간수는 해야죠. 큰 일에 말려들고 싶진 않거든요. 스티브는 조금 웃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 치고는 잘도 이걸 스티브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뛰어왔다 싶었다. 고맙네 바튼.
급하게 방으로 돌아온 스티브는 책상에 앉아 서둘러 양피지와 깃펜을 꺼냈다. 방 한 쪽에 웅크린 개가 그를 슬쩍 보았지만 곧 무시했다. 스티브는 양피지 위에 재빨리 글을 쓰다가 벅벅 줄을 긋고 또다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가 결국 줄을 긋는 것을 반복했다. 그는 깃펜을 내려놓고 이마를 짚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스티브가 상념에 빠져있을 때 가만히 엎드려 있던 개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창문 쪽을 쳐다보았다. 개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 스티브가 의아해하며 개의 시선을 따라 창문을 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한 물체가 창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빗자루에 탄 토니 스타크란걸 깨달은 스티브는 경악하며 창문을 열었다. 토니는 빗자루를 타고 나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었기 때문이다. 빨리 좀 열어! 새되게 말한 토니는 반 쯤 구르듯 방 안으로 들어와 내리더니 빗자루를 징그럽다는 듯 던져버렸다. 스티브는 토니가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와는 다르게 고가의 정장에 마법사 로브를 걸친 굉장히 격식차린 차림새를 하고 있는 걸 보았다. 토니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연신 투덜거렸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불안정한 걸 타고 날아다닐 생각을 할 수 있지? 차라리 히포그리프를 타겠어. 최대한 빨리 오기 위해 포트키를 쓰긴 했지만 호그와트 건물 안까지는 들어올 수가 없잖아. 그래서 빗자루를 하나 슬쩍 빌렸는데... 토니는 문득 주절거리던 입을 멈춰야했다. 스티브가 그를 끌어 안았기 때문이다. 한 번 단단히 그를 포옹한 스티브는 몸을 떼어내곤 걱정스런 시선으로 토니를 살폈다. 괜찮나? 다친덴 없고? 토니는 뻘쭘해졌다. 어, 뭐 내가 아무리 빗자루를 싫어하긴 해도 떨어질 정도로 못타는 건 아냐. 입을 열려던 스티브는 곧 다시 한 번 경악해야했다. 개가 토니의 발치에서 꼬리를 흔들며 다리에 몸을 부벼대고 있어서였다. 토니는 잘 지냈냐며 개를 쓰다듬어주었고 그에 기뻐보이는 개를 보며 스티브는 아주 조금 빈정이 상했다.
토니는 자신이 이틀 쯤 전에 보냈던 편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에야 이걸 받았다고?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가져다준 바튼에게서 부엉이가 공격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들었네. 토니는 편지를 살피다가 자신의 지팡이를 사용에 그것을 태워버렸다. 스티브 자네는 무슨 일 없었지? 이상한 사람이 접근한다던가 그런 거. 토니의 질문에 스티브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가 토니? 답장을 쓰려다 혹시 누군가 중간에 가로챌수도 있다는 생각에 관둔 참이네. 그는 토니가 약간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강경하게 덧붙였다. 자네의 편지가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고 있다는 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은 건 나까지 연루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난 알아야겠네. 토니는 자신을 올곧게 쳐다보는 스티브의 눈치를 살피다가 한숨을 쉬었다. 설명을 듣기 전까진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기색이었다. 토니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얹은 개를 쓰다듬다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난 마법부의 소환을 받았지. 나의 실험에 대한 실패이유를 기록해야한다는 이유로 말이야. 혹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 아무리 용의 제조법이라곤 하나 나의 개인적인 실험이라고 알려진 것이 마법부에서 날 일주일 동안 붙들어 놓을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게. 사실 난 마법부에서도 실험 지원을 받으며 연구하고 있었어. 그들은 용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 아주, 아주 많은 관심을 갖고 있거든. 스티브는 토니의 말에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법부가 관심을 보인 이유가 용을 만드는 것이 성공한다면 마법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 아닌가? 스티브가 질문했다. 토니는 인상을 썼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그들은 용의 소유권을 갖고싶어 하거든.
용에 대한... 소유권? 스티브가 되물었다. 그의 상상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단어들이었다. 용의 존재는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들은 길들여질 수 없었고 더군다나 인간에게 소유된다는 건 불가능했다. 현재 남아있는 마지막 용은 비록 그 상태가 허약하고 죽을 때가 다가오고 있어 마법 생물 통제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예외였을 뿐이고 한 때 용들이 살아있을 당시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토니는 머리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래. 용에 대한 소유권. 세계에서 어느 순간부터 용들은 발견되지 않았고 우린 아마 그들이 멸종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지. 마지막 용인 안티포딘 오팔아이가 죽어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환경 오염 때문이라느니 하는 건 전부 거짓말이야. 오팔아이를 비롯해 몇 마리의 용들은 수년 간 마법부의 통제 하에서 착취당하고 있었어. 다른 용들은 이미 죽었고 오팔아이만 살아있는거야. 겉으로는 용을 보호한다느니 듣기 좋게 말하지만 바로 마법사들의 등 뒤에서 라스 알 굴은 용을 죽이고 있었던 거지. 스티브는 충격으로 잠시동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는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법부는 모든 마법사와 마녀들을 상대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용은 전 세계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의 0순위였다. 그리고 마법부는 수 년 동안 용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네의 실험을 지원한 이유도..? 맞아. 용의 제조법을 사용해 말 그대로 용을 생산하려 하는 속셈이지. 용들의 비늘과 뿔을 포함해 모든 장기들이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진 자네도 알고 있겠지. 스티브는 주먹을 쥐었다. 단지 돈을 위해 그들이 이런 짓을 꾸미는 건가? 토니는 잠시 침묵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그건 두고봐야 알겠지. 그렇다면 자네는 애초에 어째서 용의 제조법을 연구한건가? 용을 자연으로 풀어 그 수를 늘리려고 하기라도 한건가? 스티브의 질문에 토니는 웃는 듯 찡그린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맞아. 그것도 계획의 일부였지.
스티브가 입을 열어 더 묻기 전에 토니가 개를 품에 들어올리며 말했다. 만약 용의 제조법이 성공했다면 마법부는 내게서 그 제조법을 사들이려 했겠지. 사람들 역시 한 개인이 용의 제조법을 소유한다는 건 달갑지 않아 할테고, 더 이상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아닌 내가 그 압력을 견뎌낼수는 없었을거야. 토니는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마법으로 인해 창문이 닫히며 커튼이 드리워지고 방문이 단단하게 잠겼다. 철저한 보안 마법을 거는 토니에 스티브가 말했다. 이 곳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아. 게다가 3층 높이고. 하지만 토니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놀라지 마. 아 소리 지르고 싶으면 질러도 돼. 방음 마법도 걸었으니까. 어쨌든. 대충 말을 끝맺은 토니는 스티브가 의아해할 때에 그의 지팡이로 자신의 품에 안긴 개를 두드리며 주문을 외웠다. 곧이어 스티브는 어째서 그동안 이 빌어먹을 개가 그렇게 자신을 물어뜯고 싶어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잠시간의 말다툼과 소란과 몇 번의 날개짓과 그르렁거림 이후에 두 남자와 용 한 마리는 비교적 침착해질 수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비일상적인 일에서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정부의 음모론이라던가 용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모든 일을 한 번에 겪어버린 그는 정신적으로 지치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여태껏 용과 동거를 하고 있었단 사실을 믿기 힘들어했다. 한편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상이나 다름없는 토니는 스티브에게 수없이 사과를 해야했다. 토니는 자신의 품안에 앉은 팔뚝만한 용을 쓰다듬으며 스티브를 향해 불쌍해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맡아줄 수 있겠어? 어차피 개의 모습이면 그다지 불편할 것도 없잖아. 스티브는 토니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건 나를 거의 뜯어먹으려고 했다네 토니. 자네는 무척 잘 따르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 말에 토니는 의외라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내겐 그런 적이 없는데. 그리고 토니는 스티브에게 용을 넘겨주는 걸 시도하려했고 용이 스티브를 뜯어먹으려 하는 걸 직접 보게 되었다. 스티브는 화가 났다. 난 용에 대해 -특히 제조된 용에 대해선 잘 모르긴 하나 아마 자네를 부모라 생각하는 것 아닐까. 스티브의 말에 토니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의 머릿속으로 수십가지의 가정이 지나갔다. 토니는 문득 자신이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스티브에게 건넸다. 한 번 입어봐. 재촉하는 토니에 스티브는 얼떨결에 토니의 로브를 입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토니가 용을 스티브에게 가까이 들이댔고 붉은 용은 스티브가 입은 토니의 옷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곤 그 팔뚝에 잠깐 앉았다가 곧 토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다시 거리를 두었다. 용이 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것이 처음이었던 스티브는 눈을 크게 떴고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짐작이 얼추 맞는가 보군. 체향으로 구별하는 것 같아.
토니는 계속 말했다. 자네도 눈치챘겠지만 난 분명 감시를 받을거야. 그렇기에 저 용을 내가 데리고 있을 순 없어. 그러니 자네가 좀 더 맡아주고 있지 않겠어? 스티브는 난감했다. 하지만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자네가 위험해지는건 나도 원치 않네. 게다가 날 경계하는 걸 제외하면 개의 모습은 그닥 나쁘지도 않더군. 토니는 안도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호그와트에 도착하자마자 스티브를 보러 온 것이라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용을 다시 개로 변신시키고 보안 마법을 푼 토니가 방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내 체향이 벤 옷가지나 물건을 좀 더 가져다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스티브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했다. 오래 갈지는 모르겠군. 방금 봤다시피 내가 자네가 아니란걸 금새 눈치채잖나. 토니는 스티브를 잠시 멀뚱히 보다가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팔을 뻗어 스티브의 어깨를 잡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스티브는 토니가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가 거리를 두곤 그의 표정을 살피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을 못하는 듯 했다. 그는 다시 입맞췄다. 한 팔로는 스티브의 허리를 끌어 안으며 입술을 핥고 벌려지는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토니의 키스는 능숙했고 스티브는 그를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채 입맞춤에 동요했다. 점차 숨이 거칠어질 정도로 입을 맞추던 토니는 입술을 떼었다. 그는 헐떡이는 스티브의 상기된 뺨을 쓸으며 속삭였다. 내 체액을 많이 삼켰으니 이 정도면 도움이 되겠지?
방에서 쫓겨난 토니는 거의 주저앉을 뻔 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뒤로 쾅 닫히는 문을 보곤 혀를 찼다. 말 실수를 했다. 평상시엔 여자 한 둘 꼬시는건 일도 아닌데 스티브 로저스 앞에만 서면 요령이 없어지곤 한다. 그래도 키스할 때 밀어내지 않은 걸 보면 내게 마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닫힌 문을 두드리며 이름을 불러보지만 스티브가 문을 열 기미는 없어보인다. 미안해 스티브. 근데 나 진짜로 자넬 좋아해. 진짜야. 토니가 방문에 대고 말했지만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아서 그는 결국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발을 돌려야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였다. 충동적으로 입을 맞춰버린게 잘못이었다. 아마 자신이 한 중 최악의 고백이라 생각하며 토니가 복도를 빠져나올 때에 그는 코너를 돌아 나오는 한 사람을 마주하곤 눈썹을 휘었다. 여긴 어쩐 일이죠 교수님? 자비에 교수가 토니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자네의 열렬한 사랑고백을 듣고 있었지. 토니는 눈을 굴렸다. 프라이버시도 모릅니까? 여긴 공공장소가 아니던가? 교수의 말에 토니는 피곤한 듯 뒷목을 문질렀다. 스티브 로저스에게 대략적인 걸 말했습니다. 어찌됬든 당분간 용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니. 복도에 방음 마법이 걸린 걸 깨달은 토니가 말했고 자비에는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용의 상태는 괜찮은지 모르겠군. 자비에의 질문에 토니가 낮게 가라앉은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더 양호하더군요. 게다가 모체를 따르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로써 고작 종이쪼가리로 용의 소유권을 주장할 순 없다는 이유가 하나 더 늘은 셈이죠. 그렇게 말한 토니가 할 일이 있다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에 그의 등 뒤에서 들린 자비에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자네 건강은 좀 어떤가 토니? 그는 자비에가 웃고 있지 않다는 걸 보고 작게 한숨쉬었다. 뭐 똑같죠. 호흡곤란. 심장통. 공황발작. 요새는 좀 덜한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으나 곧 그것에마저 지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비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 견디지 못한 채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웅얼거리듯 뱉고 빠르게 걸었다. 약을 먹어야 했다.
퀴디치 시즌이 다가올수록 스티브는 바빠졌다. 그는 선생이자 감독관이었기 때문에 각 기숙사의 퀴디치 팀들이 제대로 연습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그들의 연습 경기들도 감독을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까지 필드에 나가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의도치않게 용을 돌보는 시간도 줄어들었으며 토니 스타크를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사실 그는 토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곤 했다. 토니는 그를 좋아한다고 했고 스티브는 그 역시 토니를 향해 감정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입을 맞출 때 그를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만 해도 자신의 감정은 충분히 설명되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토니를 만나는 것은 힘들었다. 스티브 그 역시 바쁜 편이었으나 토니는 거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쁜 듯 했다. 호그와트에 돌아오긴 했으나 그의 마법의 약 수업도 상급반을 제외하면 여전히 자비스가 맡고 있었고 그는 식사시간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어 번 애매한 거리에서 스쳐 지나듯 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토니는 페퍼와 자비스와 빠른 대화를 하며 경보 수준으로 걸어가고 있었기에 스티브를 알아 차리지도 못했다. 다른 한 번은 서류뭉치를 들고 가다가 스티브를 발견하곤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지만 토니가 이야기를 제대로 건네기도 전에 피한 쪽은 스티브였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그런 십대 소녀같은 반응을 보였는지 나중에서야 신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토니를 마주한다는 생각은 그의 명치를 죄고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자꾸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용은 개의 모습을 한 채 잠잠했다. 정말로 토니의 입맞춤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스티브가 가까이 다가가거나 만져도 더 이상 물려 들진 않았다. 어쨋건 개는 이제 사람 넙적다리만한 고깃덩어리를 씹어먹을 수준이었다. 그건 별로 친근감을 느낄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브리스톨에 있는 토니의 집들 중 하나가 마법으로 인한 폭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터질 무렵 퀴디치 시즌이 시작되었다.
피터 파커는 양 손에 한 아름 응원도구를 들고 뛰어가다가 스티브 로저스를 발견하곤 끼이익 소리가 날 정도로 멈춰섰다. 피터는 그에게 성큼 다가와 기웃거렸다. 선생님? 괜찮아요 선생님? 스티브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있다 피터의 목소리에 뒤늦게 반응했다. 아 파커. 난 괜찮네. 응원 준비를 하는건가? 스티브는 애써 웃으며 말했지만 눈치 좋은 피터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네 다들 내일 있을 시합으로 난리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진짜 지쳐보이는데요. 요즘 퀴디치 시합 준비하느라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스타크 교수님 때문에... 아아 그렇구나. 그 일은 정말 유감이에요. 진짜로. 재잘거리며 빠르게 변하는 피터의 표정에도 스티브는 평소처럼 웃기가 힘들었다. 피터에게 양해를 구하고 걸음을 돌린 스티브는 퀴디치 소품 체크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마법의 약 수업이 이뤄지는 지하로 가자 찬장 정리를 하는 자비스가 보였다. 자비스는 스티브의 방문에 놀라지도 않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저스 씨. 주인님께서 호그와트를 떠나기 전 당신이 찾아올거라 하시더군요. 그리고 자비스는 자신의 품 안에서 편지를 꺼내 스티브에게 건넸다. 이걸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면 닥터 배너에게 찾아가 보라고 전해달라 하시더군요. 닥터 배너가 누군지는 아시죠? 스티브는 일렬로 이어지는 자비스의 빠른 행동들로 인해 제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스티브가 답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자비스가 이어 말했다. 닥터 브루스 배너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과목의 담당 교수이십니다. 금지된 숲의 입구에 위치한 개인 자택에서 지내고 계시고요. 지도를 그려 드릴까요?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괜찮네. 난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 그는... 토니는 괜찮은건가? 자비스는 잠시 푸른 눈을 내려깔며 생각했다. 원래 막힘 없이 기계처럼 술술 내뱉는 그가 망설이는 모습은 처음 본다. 질문이 애매하군요. 하지만 최근 여러가지 상황을 조합해본다면 그다지 괜찮으시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만. 스티브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지금 그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번에 자비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예. 주인님은 도움이 필요하십니다.
스티브는 토니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그리고 그걸 품 안에 잘 챙겨 넣은 그는 한 쪽 손에는 방금 전 자신이 썼던 편지를 들고 다른 손에는 초를 든 채 서쪽 탑으로 향했다. 저녁이라 그런지 식사가 끝난 아이들은 대부분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간 상태였고 서쪽 탑으로 가는 길에 스티브는 거의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부엉이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부엉이와 올빼미들이 어둠 속에서 노란 눈을 밝히며 그를 돌아보았다. 부엉이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티브는 초를 한 쪽에 놔두고 그의 부엉이를 찾았다. 갈색의 부엉이가 그에게 날아와 팔뚝에 앉았고 스티브는 잠시 고민했다. 편지의 내용은 누군가가 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도록 썼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부엉이가 공격당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결심한 이상 위험을 감수해야했다. 그가 부엉이의 다리에 편지를 묶을 때 한 쪽에서 툭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꺼낼 뻔 한 스티브는 어둠 속에서 두 명의 익숙한 인영이 걸어 나오자 긴장감이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클린트 바튼과 그의 친구인 나타샤 로마노프였다. 클린트는 떨어진 책을 주워 들며 안녕하세요 하고 어색하게 인사했고 나타샤는 팔짱을 꼈다. 몰래 엿보려고 한 건 아니니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나타냐의 당당한 말에 스티브가 눈썹을 휘었다. 둘 다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건가? 클린트는 책을 들어 보였다. 가끔 얘기하러 여기 오곤 하거든요. 제 부엉이도 볼 겸. 아직 통금시간 안됐죠? 확실히 아직까지 그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어서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 시간에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하며 편지를 다시 묶기 시작했다. 클린트가 말을 걸었다. 혹시 편지 보내시려구요? 위험하지 않아요?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 아차. 그는 뒤늦게 나타샤의 눈치를 보았고 나타샤는 흐응 하는 콧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클린트는 쩔쩔 맸고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별 거 아니네 로마노프. 저번에 한 번 나에게 왔던 편지가 중간에 가로채질 뻔 한 적이 있어서 그런거네. 나타샤는 똑똑한 학생이었고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을 뿐 더 이상 스티브에게 캐묻지 않았다. 그렇군요. 조심하셔야겠네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그녀가 클린트를 데리고 나가려 할 때 클린트가 예고없이 불쑥 말했다. 그거 중요한 편지죠? 제가 전달해 드릴까요? 그 말에 나타샤가 클린트! 하고 소리쳤고 스티브는 거절하기 전에 의아해했다. 자네가 전해준다니? 클린트는 나타샤의 찌를 듯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부엉이보단 매가 훨씬 빠르지 않겠어요? 그리고 스티브의 눈 앞에서 클린트 바튼은 직접 매로 변해보였고 스티브는 아연해졌으며 나타샤는 이마를 턱하니 짚었다.
매는 편지를 발에 매단 채 큰 날개를 펼치며 창문 너머로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스티브가 나타샤를 돌아보았다. 나타샤는 예쁜 얼굴을 걱정과 화로 일그러트린채 사라진 매의 뒤꽁무니를 보고 있었다. 바튼은 언제부터 애니마구스였던 거지? 그의 질문에 나타샤는 느릿하게 말했다. 작년부터요. 원래 클린트는 변신술에 소질이 많았었죠. 그녀는 스티브를 돌아보았다. 클린트는 미성년자에다가 등록되지 않은 애니마구스에요. 반드시 비밀은 지켜주셔야해요. 나타샤는 단호했고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에요.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 이런 모험에 사족을 못쓰죠. 게다가 클린트는 선생님을 신임하고 있어요. 그는 맹목적이고 단순해요. 마치 매처럼. 난 클린트가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아요. 스티브는 그녀에게 말했다. 절대로 그가 다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네 로마노프. 나타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티브 역시 그렇게 말한 것에 비해 가슴 한 쪽에서 불안함이 밀려오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토니 스타크가 브리스톨에 위치한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한때 집이었던 건물의 잔해에선 아직까지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의 집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의 피해는 없었고 머글 목격자 역시 없었다. 토니는 노란 테이프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 까맣게 탄 가구들과 목재의 사이에서 주변을 둘러 보다가 허리를 굽혀 뭔가를 집어 들었다. 깨어진 액자 속에는 그의 가족 사진이 담겨 있었다. 한동안 그걸 쳐다보던 그는 망설임없이 액자를 잿더미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휘유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이거 제대로 탔는데? 복구하기는 불가능하겠어. 여전히 낡은 롱코트를 입고 있는 존 콘스탄틴은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빨며 전혀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토니는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놀라지 않으며 한때 거실이었던 곳을 둘러 보았다. 내 집이 이거 한 채도 아닌데 구지 복구해서 뭐해. 그 말에 콘스탄틴은 재수없는 부르주아 자식이라고 중얼거렸다. 집안을 수색한 후에 불태운 것 같군. 토니의 말에 콘스탄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적이 아주 난장판인데. 게다가 뒷처리를 이렇게 허술하게 한 걸 보면 수색하려는 것 보단 단순한 협박용인 것 같고. 토니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혹은 날 이 곳으로 오게 만들 미끼였겠지. 그들은 건물의 잔해에서 빠져 나왔다. 브리스톨의 날씨는 우울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가 여기까지 와줄 줄은 몰랐군. 자타나와 일하고 있던 중 아니었나? 토니의 질문에 콘스탄틴이 대꾸했다. 자타나는 지금 스트레인지와 있지. 동유럽 쪽에서 임무 수행중이었거든. 가장 유명한 오러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남자 콘스탄틴은 다 타버린 담배를 버리고 새 것을 물었다. 높은 자리에 계신 개새끼들을 건드리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냐 스타크. 그것들이 괜히 높은 자리에 있는 게 아니거든. 더러운 수법을 쓰는 건 기본이고. 그 말에 토니는 소리내서 웃었다. 자네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진짜 우습구만. 지옥의 높으신 분들까지 약올리는 사람이 누구더라. 콘스탄틴은 씩 웃었다. 더러운 놈들에겐 똑같이 더럽게 굴어줘야지. 안 그래? 토니는 마주웃었다. 짐승같은 웃음이었다.
콘스탄틴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곧 비가 쏟아지겠는데. 토니는 그의 품 안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가까이 있군. 고개를 끄덕인 콘스탄틴은 토니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여긴 나에게 맞기고 가 봐. 바쁠거 아냐? 토니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존 콘스탄틴이 자처해서 내게 좋은 일을 해주다니. 혹시 내일이 지옥이 무너지는 날이었던가? 콘스탄틴은 클클 웃었다.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네가 도운 것도 있고 하니 빚 갚는 셈 치지. 그 때 네가 준 용의 입김은 아주 유용하게 썼거든. 그 말에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콘스탄틴이 돕는다 한 이상 그는 확실했다. 그들은 어느 새에 수 명의 검은 복장의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그림자단이었다. 존, 그럼 처리를 부탁하지. 자타나와 스테판에게 인사 전해주게. 콘스탄틴은 뒤도 안 돌아본채 손을 흔들어보였다. 곧 토니 스타크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지팡이를 꺼내든 존 콘스탄틴의 주변으로 바람이 일었다. 그는 담배를 뱉으며 씩 웃었다. 그럼 어떤 새끼부터 엿을 먹여줄까?
스티브,
편지 잘 받았습니다. 토요일 밤에 저의 집으로 오세요. '그것'과 함께.
B.
토요일까지의 5일여 간의 시간동안 세 번의 퀴디치 게임이 있었고 스티브 로저스는 거의 정신의 한계까지 몰려가는 자신을 느꼈다. 퀴디치 시즌은 그로 하여금 많은 일을 요구했다. 매번 필드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 시합을 감독하는 것, 물품을 정리하는 것, 간혹 부상자가 생길 경우 뒷처리를 하는 것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스티브가 필요했다. 평소같았으면 그는 그 모든 일을 일말의 힘든 점도 느끼지 않고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토니 스타크에 대한 생각 때문에 심적으로 지쳐있었고 뭘 하던 간에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어했다. 토니 스타크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둘째 치더라도 그는 스티브 로저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토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 자유분방하며 주도적이고 추진적이며 똑똑한지만 어딘가 어설프기도 한, 그리고 매력적이기도 해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휘말리는 모든 사건들은 어쩌면 토니 스타크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위험해진다는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졌다. 스티브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는 토니 스타크가 정말로 좋았다.
스티브 로저스가 토요일 밤에 방을 나설 때까지도 토니는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팔 안에 들린 개를 고쳐 안았다. 스티브는 체력 하나는 좋은 편이었지만 그가 들기에도 묵직할 정도로 개는 눈에 띄게 커졌다. 개는 스티브의 접촉에 딱히 사나운 반응은 보이지 않았으나 간혹 몸을 틀어댔다. 쉬, 가만히 있어. 스티브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조용하고 어둔 복도를 걸었다. 그가 정문에 다다라갈 때에 복도에서 프랭크 캐슬과 마주쳤다. 호그와트의 관리인은 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딱딱한 점으로 유명하다. 스티브는 그가 자신을 막아 서거나 혹은 많은 질문을 할까 새삼 긴장했으나 프랭크는 스티브와 그가 안고 있는 개를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려 다른 방향의 복도로 걸어갔다. 그를 못본 척 해주는 건가? 스티브는 잠시 의아했으나 곧 발걸음을 옮겨 성을 빠져나갔다. 하늘에 달이 높게 떠 밤인데도 불구하고 사물이 제대로 분간 될 정도로 밝은 밤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빠르게 걸어 숲의 입구에 도착했고 그곳에 작은 집이 한 채 보였다. 스티브는 주변을 살피며 문을 두드렸다. 바로 열린 문 너머에선 닥터 배너가 사람 좋은 얼굴로 그를 향해 손짓했다. 들어오세요 스티브. 집은 작은 편이었지만 안락했다. 가구는 많이 없었지만 책이나 양피지같은 것이 잔뜩이었다. 창문과 문을 단속한 배너의 권유에 의자에 앉은 스티브는 개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저, 닥터 배너?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뵐 일이 없었군요. 배너는 그의 앞에 차를 내려놓으며 미소지었다. 당신 뿐이 아니에요. 제가 성에 들어가는 적은 손에 꼽으니. 배너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토니에게서는 대충 들었어요. 아, 토니와 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에요. 그가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운영할 때부터 종종 만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죠. 토니의 추천으로 호그와트에서 일도 할 수 있었고요. 배너의 목소리에는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듯한 기운이 있어서 스티브는 조급함이 약간이나마 가시는 것을 느꼈다. 토니가 이... 용에 대한 문제가 있으면 당신에게 물어보라 편지를 남겼더군요. 배너는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킁킁거리는 개를 돌아보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곧 개가 용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붉은 용이 퍼덕거리는 모습에 배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 뿐이었다. 토니가 제게도 연락을 했었어요. 당신과 용에 관해. 그리고 스티브 당신의 편지를 받았을 땐 제가 예상한 '문제'가 아니어서 좀 놀랐어요. 당신이 내게 쓴 그 편지 내용, 진심이었나요? 스티브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용이 저를 따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배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스티브, 토니를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은 알겠지만 잘 생각해야돼요. 그를 돕고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나도 가능하면 그를 돕고 싶으니.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를 도우려고 하는 건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라스 알 굴은 오랜 기간동안 마법부 장관직을 맡아 왔고 지금의 마법부는 라스 알 굴 그 자체나 다름 없다고 할 정도로 그가 장악하고 있어요. 게다가 그는 그림자단과 같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추종자들도 있죠. 이건 이미 단순한 정치 싸움이 아닌 생사가 오가는 문제에요. 배너는 그를 구슬리려 하는 듯 말했지만 스티브는 강경했다. 위험하단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니는 지금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신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이건 그 혼자서 싸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닥터가 이 곳에서 당신의 방법으로 그를 돕는 것처럼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에게 가서 돕기 위해선 이 용이 저를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스티브는 파충류의 눈알을 굴리며 낮은 울음 소리를 내는 용을 돌아보았다. 성장한 용은 분명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겠죠? 하지만 이 용은 아직 새끼에 불과합니다. 도움이 될 일은 없겠지만 저나 토니가 없는 이 곳에 용을 두고서 저 홀로 토니에게 갈 수는 없으니 말이에요. 아니면 혹 닥터께서 용을 돌봐 주실 수는..? 스티브는 배너를 만나기 전 자비스로부터 그에 대한 것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신비한 동물에 관한 유명한 학술을 몇 발표한 학자들 사이에선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극히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호그와트 안의 사람들도 배너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보다 덜 알려진 사람일수록 위험에 노출될 일이 적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배너는 스티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 용을 돌보지 못해요. 아직 새끼긴 하나 자칫해서 용의 마력과 저의 것이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요. 스티브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예? 마력이요? 그가 되묻자 배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토니가 이건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죠? 용이나 유니콘과 같은 신비한 생물들은 각각 마력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의 장기가 마법의 재료로도 쓰일 수 있으며 신비한 힘을 내는 거죠. 그리고 저에겐 조금이지만 거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저 역시 마력을 갖고 있구요.
스티브는 자신이 이젠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을 수 있다고 자부했었으나 배너의 말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인의 피라니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몰랐다. 배너는 보통 체격의 남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놀라는 스티브에게 웃어보이며 배너는 일어섰다. 그래도 토니가 어째서 당신을 신임할 수 있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스티브 당신의 편지를 받고 준비는 이미 해놓은 상태에요. 배너는 방에서 천에 쌓인 둥그런 물체를 갖고 나왔다. 천을 벗기자 드러난 것은 알이었다. 타조알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크기인 그것은 미끈한 회색으로 빛났다. 알이 드러나자 용이 고개를 홱 쳐들며 반응했다. 배너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요구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고 성공할수 있는지도 몰라요. 무엇보다 저 용은 토니가 '만들어 낸' 것이지 정상적인 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해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고요. 게다가 이미 태어날 때 처음 본 토니를 따르고 있다면서요?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삼켰다.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합니까? 배너는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알의 정수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단단한 알이 드릴 뚫리듯이 하며 둥그런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경악하는 스티브에게 배너는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어미가 죽어서 버려진 알이었어요. 용의 알은 어미의 체온이 없으면 생명을 잃어버리죠. 하지만 그 마력은 여전히 내포하고 있죠. 그리고 배너는 그 알을 스티브에게 내밀었다. 다 마셔요. ...예? 알을 전부 마셔야 해요. 제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용의 어미도 아닌데 용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 용이 아니지만 용으로하여금 매료될 수 있는 마력을 갖게 되는 방법. 이것 뿐이었어요. 스티브는 양 손으로 알을 들었다. 묵직했다. 그는 긴 목을 뺀 채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어린 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으며 알을 마셨다.
토니는 문득 한 팔로 벽을 짚으며 휘청였다. 심장께의 옷깃을 부여잡고 헐떡이는 그의 옆에서 페퍼가 부축하려했다. 토니! 괜찮아요 토니? 그녀의 얼굴에 염려와 안타까움이 스쳤다. 토니는 그녀의 부축을 손을 내젓는 걸로 물리며 비척이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위스키 틴을 꺼내 안에 담겨있는 약물을 마셨다. 조금 숨을 가라앉힌 그를 살피던 페퍼가 말했다. 병이 다 나은 거 아니었어요? 용... 그것을 만들 때 전부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토니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심장 위를 쓸었다. 아주 느리게 뛰는 심박수가 느껴졌다. 거의 회복된 상태였지.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니까.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런던의 도심에서 머글의 인파에 섞여있는 그들은 간혹 바쁜 발걸음으로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을 받곤 했다. 벽에 반 쯤 기대다시피 한 토니 스타크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용의 기운이 희미해지고 있어. 아마 스티브가 닥터를 찾아갔었나보군. 페퍼가 인상을 썼다. 그에게 편지를 남겼죠? 무슨 말을 한 거에요? 토니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냥 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면 닥터 배너를 찾아가라 그랬지. 그리고 필요의 경우 용이 그를 따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했고. 페퍼는 이 말에서부터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을 이기지 못한 토니가 한숨을 쉬며 이어 말했다. 그와 용의 연결은 나와 용 사이의 연결을 희미하게 만들었겠지. 용과의 연결은 원초적이며 또한 감각적인거야. 용은 제 어미나 그 동족들 외에는 교감하지 않지. 왜냐면 그 외의 다른 생물이 용의 탄생을 보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야. 페퍼는 잠시 입을 벌리고있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토니 당신이 말하는 건, 당신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던 이유는 용과의 연결에서 오던 거였고 스티브와 용 사이의 연결이 생긴 이상, 당신의 건강 역시 용과의 연결과 더불어 약해질 수 있다는 거에요? 토니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페퍼는 이마를 짚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스티브에게 그런 말을 한 거에요! 완쾌될거라 했잖아요. 용의 생명력과 연결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당신의 건강을 악화시키면서까지 스티브가 용과 연결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에요? 말 해봐요!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던 페퍼는 토니가 그의 손을 잡았을 때 입을 다물었다. 페퍼 난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어. 난 약해 빠졌어. 그래서 탈출구를 마련해놓은 거야. 스티브 로저스라는 탈출구를. 런던의 하늘은 우중충했고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토니는 눈을 내려감았다 떴다. 슬픔과 의아함이 섞인 표정을 한 페퍼에게 토니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걱정 마. 다 잘 될거니까. 그리고 그는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빗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페퍼가 입술을 짓씹으며 따랐다. 회색의 건물엔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불이 꺼진 낡은 간판이 간신히 붙은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수 년간 닫혀 있었던 건물은 황폐했다. 고층의 건물은 시내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 시선을 주는 행인조차 없었다. 토니와 페퍼는 그 문을 밀고 들어가 젖은 옷의 물기를 털어냈다. 1층의 홀은 넓은 편이었고 그 바닥과 리셉션 데스크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어두침침하고 으슬으슬했다. 리셉션 너머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손에 턱을 괸 채 시선만 들어 그들을 보았다. 늦었군. 토니는 저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에게 웃어 보이며 다가갔다. 수고하네 마크. 마크 스펙터는 페퍼에게 눈인사를 하곤 조금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곳을 지키느라 거의 일 주일을 넘게 있었어. 나 대신 변신술 수업을 맡은 에코에게서 연락이 왔더군.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학생들을 전부 기니피그로 만들어버린다고 말야. 그 말에 토니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거 유감이네. 이 곳에 별다른 일은 없었나? 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문자가 있었지. 그림자단으로 보이는. 아마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내 망령들로 조금 겁을 주니 금방 달아나던데. 망령이라는 말에도 마크 스펙터가 종종 혼자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곤하는 토니는 납득했다. 그 놈들 생각보다 미신적인 놈들이니. 그래서 애초에 라스 알 굴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마크는 뒷목을 쓸어내렸다. 자네 말대로 크게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 다시 올거네. 그리고 다시 왔을때 그들은 자넬 죽일 준비가 되어있겠지. 토니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미소지었다. 내가 어디 쉽게 당할 사람이던가? 그는 토니를 위 아래로 살폈다. 자네 몸은 좀 어떤가? 그 때 분명 심장을... 토니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마크. 그만둬. 토니의 말에 마크 스펙터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페퍼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설마 자네 미스 포츠에게도 말을 안 한건가? 그 말에 토니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고 페퍼는 눈썹을 휘었다. 토니, 또 뭔가 내게 말하지 않은 게...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마크가 손을 들어올렸다. 침묵을 요구하는 동작에 그들은 전부 긴장했다. 누군가 오고 있어. 망령들이 반응하고 있군.
흐, 흐흐흐. 히히. 하.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이 삐걱거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디바처럼 자신을 뽐내는 과장된 동작으로 양 팔을 벌린 채 조커가 웃었다. 아니 그는 늘상 웃는 모양이었다. 토니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으나 턱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페퍼와 스펙터 역시 지팡이를 뽑아 들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조커는 텅 비고 먼지쌓인 홀이 자신의 무대라도 되는 듯 행동했다. 이거, 이거 여기서 리유니언이라도 하는 모양이야. 흐흐. 날 쏙 빼놓고 말야.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알아? 초대받지 못한 사악한 요정이 어떤 마법을 걸었더라. 조커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박수를 탁 쳤다. 아아 참 여기선 내가 사악한 쪽이 아니지. 나보다 훨씬 더 사악한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으니 말야. 앤ㅡ소니 에ㅡ드워드 스타ㅡ크. 기괴한 입을 귀밑까지 찢어 웃는 조커에 토니는 입이 얼어붙은 듯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꿈을 꿨다.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거대한 양 날개를 뻗고 광활한 하늘과 구름 위의 세상까지 시야에 담았다. 그건 자유로운 기분이었고 동시에 완벽했다. 온 우주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그는 하늘을 나는 것과 안개속에 빠진 듯한 먹먹한 기분을 번갈아가며 느꼈다. 동시에 심장이 지끈거리는 고통 역시 느꼈다. 뱃 속에 가득 들어찬 기운이 그의 온몸을 덮고 사고를 지배하는 것 같아 그는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기운은 부드럽게 그를 잠식해나갔다.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스티브의 정신은 간혹 물 밖으로 나와 흐릿한 주변을 담곤 했고 곧 다시 수면에 빠져들길 반복했다. 가끔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몇 명의 사람들이 누워있는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뿌연 시야에 병동의 의사와 자비에 교장이 보였다. 그들은 무슨 말인가 나눴으나 웅웅거릴 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땐 배너가 보였다. 배너는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으나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성공적이었어요 스티브. 용이 당신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아요. 나에게도 느껴져요. 당신의 안에 있는 마력이... 그 후로도 배너는 뭔가를 계속 이야기했으나 스티브는 전부 듣지 못했다. 다시 수면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간혹 그의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나 침대 옆에 꽃 따위를 두고 가는 것이 느껴졌다. 감각이 예민해진 것이다. 그는 마치 정식적인 휴식을 하듯 한동안 안개속에 부유하는 것처럼 머물렀고, 얼마가 지났을지 모를 때에 깨어났다. 사물이 분간되기 시작했을 때 스티브는 주변이 어둡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이 밤이란 걸 짐작했다. 사이드 테이블에서 촛불이 일렁였다. 침대 맡에 웅크린 개가 쇳소리를 냈다. 스티브는 누군가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데미안 웨인은 어딘가 지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옷에는 아직까지 밤이슬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표정은 여느 때처럼 견고했으나 지울 수 없는 피곤이 묻어 있다. 데미안의 양 손 위에는 아무렇게나 늘어진 매가 한 마리 들려 있었다. 네 소식을 위해 런던까지 날아가려 했다더군. 데미안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멍청한 짓이지. 네가 감시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거다. 이 놈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려고 하니. 스티브가 몸을 일으켜 매를 살피기도 전에 데미안이 일어섰다. 그는 매를 조심스럽게 안으며 스티브를 살의마저 느껴지는 서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매는 내가 돌본다. 넌 스타크 교수에게 가. 당장.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복도가 빙글거리며 돌았다. 스티브는 간혹 울렁이는 속을 다잡기 위해 벽을 짚어가며 뛰었다. 그의 몸속에 퍼진 마력이 순환하며 그의 몸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달리는 그의 옆에서 개가 함께 뛰었다. 스티브는 그가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박이 아주 느려진 것을 깨달았다. 몸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와 용은 연결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이 아닌 듯 가볍게 움직이는 육체에 놀랄 틈도 없이 그는 밀려오는 토기에 벽을 짚으며 속을 게워냈다. 잠들어 있는 동안 먹은 것이 없어 멀건 위액이 올라왔다. 헐떡이며 몸을 추스를 때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복도 저 쪽에서 달려온 사람은 관리인인 프랭크 캐슬이었다. 그는 스티브를 부축하려했다. 괜찮으십니까, sir? 굵고 낮은 목소리는 편안함을 주는 종류였지만 스티브는 그걸 느낄 새가 없었다. 그는 프랭크의 부축을 거절하며 물었다. 교장 선생님은 어디 계시나? 프랭크가 바로 대답했다. 저녁 시간이라 연회장에 계실겁니다. 스티브는 고맙다 고 말하곤 계속 뛰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계단들과 복도를 지날수록 그는 전신의 감각이 예리하게 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연회장의 문을 힘껏 열었다.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많은 학생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단상에 선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자비에를 찾다가 결국 뒤를 돌으려 할때 누군가가 그를 잡았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금방이라도 스티브의 따귀를 날릴 것 같은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저와 할 얘기가 있으실텐데요 선생님. 스티브는 그녀가 분명 클린트 바튼에 대해 말할 것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타샤에게 클린트가 먼저인것처럼 그에겐 토니가 먼저였다. 미안하네 로마노프. 지금은 급히 가야할 곳이 있어서... 그가 그렇게 말할 때 나타샤는 정말로 지팡이라도 빼어 들 기세로 다가오려 했다. 그 타오르는 순수한 분노에 스티브는 자신의 감각이 날선 바늘처럼 반응하는 걸 느꼈고 개가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슬리데린의 학생 무리가 그의 뒤를 지나치며 어깨로 밀쳤다. 아 이거 죄송하게 됬네요 잡, 아니 선생님.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다. 바로 스티브의 뒤를 따라온 프랭크가 슬리데린들을 위협적인 모습으로 멈춰 세웠고 그리핀도르 테이블로부터 토르가 벌떡 일어나 걸어오기 시작했으며 나타샤는 그를 향해 분노했고 학생들이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모든 감각기관에서 뒤엉킨 소음이 그의 고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스티브 로저스는 개화했다.
그의 개화는 용의 알로 통해 얻은 마력의 해제를 의미하고 그건 동시에 그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있는 용의 개화를 뜻했다. 알을 통해 모든 세포에 섞여 든 마력의 원소들이 그 힘을 열 때 인간의 몸은 무리하게 받아들여진 마력에 고통을 느끼며 또한 육체적으로 강해진다. 그리고 어린 용은 자신을 개의 모습으로 억압시키던 마법의 힘을 깨트리며 불완전하지만 강력하고 그만큼 순수한 마력을 내뿜었다. 송아지만한 크기의 붉은 용이 양 날개를 펼치며 날카롭게 울었다. 스티브는 눈을 떴다.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숨을 삼킨 채 그들이 마주한 지나친 경이로움에 경악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미스터 로저스. 자비에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을 때가 되어서야 스티브는 움직일 수 있었다.
저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군요. 배너가 안경을 벗은 채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보통 용의 개화는 어린 용이 불완전했던 마력을 완전히 몸 안에서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게 될 때에 생기는 것인데, 그게 스티브로 인해 앞당겨진 모양입니다. 상황을 들어본 결과 그의 감정적 변화가 용과의 연결로 인해 예민해진 감각을 자극시켜 마력을 깨우도록 한 것 같군요. 그걸 듣는 자비에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스티브는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느낀 것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이해했을 뿐 그건 논리적인 것과는 다른 방법의 깨달음이었다. 자비에는 스티브를 살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데에 있어서는 다른 점이 없었다. 그의 옆에 붙어있는 붉은 용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럼 미스터 로저스가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범위도 굉장히 제한되겠군. 배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용의 마력은 마법과 거의 상반되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요. 다급해진 스티브가 끼어들었다. 전 지금 당장 떠나야합니다. 바튼이... 그러니까 그는 애니마구스인데 -알고 있네 스티브.- 그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분명 마법부, 아니 라스 알 굴일겁니다. 토니가 런던에서 지금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미약하게나마 용과 연결되어 있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그가 말을 이으려던 걸 자비에가 막았다. 우리도 알고 있네 스티브. 그렇지 않아도 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지. 그 와중 자네가 개화한 것이었고. 자네는 이제 막 개화를 통해 용과의 완전한 연결을 마친 셈이야. 걸음을 떼는 어린아이와 같지. 그래서 자네에게 유의해야 할 점을 말해주려 한거네. 배너가 이어 말했다. 첫째로 알아둘 것은 당신과 용이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까진 이어져있다는 겁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하나 심경이나 뜻은 알 수 있다는 거죠. 둘째. 지팡이를 쓰거나 마법을 정통으로 맞는 것을 피하세요. 마력과 마법이 충돌하며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모르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용의 죽음은 당신과 토니 모두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겁니다. 정신적으로 강하게 용과 연결되어있는 당신, 그리고 몸이 약해져있는 토니 둘 중에 누가 더 피해를 입을지는 모르지만요. 하지만 용은 장수하는 생물이니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괜찮을 것 같네요. 배너는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심지어 토니마저도 용과 완전히 연결하진 못했어요. 용이 너무 어렸기에 무언갈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 성립되어있지 않았던거죠. 스티브 당신 외에 용의 알을 먹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 없지만 어찌되었든 당신은 처음으로 용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그건 축복이며 또한 저주에요. 잘 판단하고 행동하길 바래요. 자비에가 미소지었다. 최초로 용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된 걸 축하하네.
지팡이 유출사건. 비록 고작 몇 년 전의 일이었으나 그 일은 마법사와 마녀들의 근대사에서 가장 크게 여겨지는 사건 중 하나였다. 그 만큼 충격적이었고 마법 세계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마법 물품이 머글들의 세계로 흘러나가게 되어버리는 일은 간혹 있었다. 하지만 지팡이가 머글의 손에 들어간 적은 이전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는 거대한 기업이었고 공장이라 부를 수 있는, 마법 용품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장 역시 있었다. 그 곳에서 물건을 만들고 마법을 걸고 그 마법을 영구적으로 보존시키는 마법을 걸은 다음 조립과 포장까지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마법 세계의 기업인 것을 따져보면 실로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장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었다. 지팡이와 빗자루를 만드는 작업장이 그것이었다. 특히 마법 지팡이와 같은 경우엔 모든 작업이 철저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며 그에 들어가는 재료들 역시 값을 따지기 힘들 정도로 고가의 것들이라 외부인이 모를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조용히 만들어 내곤 했다. 알다시피 모든 지팡이들은 각각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지팡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 단단한 토타라 나무가지로 만든 지팡이는 재료중에서도 아주 부드러운 것들만 넣어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웬만한 사람이라도 쓸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그 중 한 개의 지팡이가 머글의 손에 들어갔다.
지팡이는 올바르게 사용될 때에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것을 터트리거나 하는 괴상한 마법들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머글이 지팡이를 아주 완벽하진 않으나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었다는 말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지팡이 중 한 개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챈지 며칠 되지 않아 등록되지 않은 지팡이가 머글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한 경보가 울렸다. 머글은 마법부에서 1차 경고를 보낸 후 직접 처리반을 파견할 때까지 수 기구의 차와 건물을 손상시켰고 서른명이 넘는 사람들을 중경상을 입게 만들었다. 그것도 도심에서 말이다. 모든 마법부의 인원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뛰었으며 현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머글들의 기억을 지우고 훼손된 것을 보상하는 데까지 한 달이 걸렸다. 한편 아무 이유없이 범죄를 저지른 머글은 결국 아즈카반에 갇혔고 그는, 정말 놀랍게도 그 곳을 탈출했다. 그 머글의 이름은 조커였다.
내가, 어,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 물론 난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적어도 지금 난 항상 웃고 있잖아. 오 사람들은 날 피하더군. 머글들 말이야. 나의 흉측한 모습이 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지. 하지만 난 마법사의 세계에서도 무시당해. 미친 살인마라고 경멸 당한다고! 하하, 히히히. 미친 듯이 지껄이는 조커를 보며 토니가 낮게 말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어 라스 알 굴을 돕고 있는 가 보지. 조커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오, 토니. 토니. 토니. 넌 나의 창조자잖아.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그들은 내가 한 때 머글이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취급조차 해주지 않아! 조커는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걔가 날 이용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걔를? 오 토니. 사실 난 널 지나치게 그리워하고 있었어. 네가 호그와트에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한 올 보여주지 않았잖아. 토니가 눈썹을 휘었다. 그래서 날 만나기 위해 라스 알 굴을 돕는 척하며 여기까지 왔다는 소릴 하는 건 아니겠지? 조커는 비꼬았다. 넌 항상 네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토니 스타크. 유능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회장님. 추락한 영웅. 불쌍한 머글을 광대로 만들어 버린 나의 창조자! 흐흐 히히히! 네가 사람을 시켜 그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머글을 알아보라고 했던 걸 모를 것 같아? 네 치기어린 실험쥐가 된 날 보라고. 히히히! 조커는 높게 웃었다. 페퍼가 오한이 드는지 몸을 떨며 토니를 보았다. 토니는 그저 조커를 노려보고만 있었는데 그 눈동자가 떨리는 걸 페퍼가 알아채지 못할리가 없다. 조커는 토니가 특별한 반응이 없자 재미가 없어진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서론이 길었네 그치? 널 보고는 싶었지만 떠들려고 온 건 아닌데 말이야. 흐, 흐 그러니 얌전하게 내놔. 다들 아무말도 하지 않자 조커가 눈을 굴렸다. 세상에 모른 척 하기야? 빌어먹을 날개달린 도마뱀 말이야 앤ㅡ소니. 토니는 딱딱하게 고개를 저었다. 용은 실패했네. 그리고 난 이미 모든 정보를 라스 알 굴에게 넘겼... 쾅! 조커의 지팡이에서 마법이 튀어나와 토니의 발치에서 폭발했다. 거짓말! 난 다 알고 있어. 토니, 전부 알고 있다고. 네가 용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걸. 그래서, 다시 한 번 묻겠는데 용은 어디... 그 때 위 층에서부터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고 곧 홀의 천정이 폭발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키이이이익-- 붉은 용이 날개짓을 하며 사납게 울었다. 몸을 일으키며 먼지와 땀에 젖은 턱을 훔치는 스티브 로저스의 시선이 찌를 듯 했다.
마크 스펙터는 용을 보며 뒷걸음질쳤다. 그의 망령들이 요동치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페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토니는 눈을 크게 떴다. 스티브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던지며 토니를 발견했다. 스티브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떨렸고 곧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지었다. 당장이라도 토니를 껴안고 싶은 듯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시간에 맞춰 온 것 같군. 다친 덴 없나? 그의 침착한 척 하는 말에 토니가 끄덕였다. 난 괜찮네. 스티브 자넨 괜찮... 그 때 그들을 향해 마법이 쏘아졌고 토니가 재빨리 방어주문으로 그것을 튕겨 내었다. 조커가 토라진 표정을 지은 채 지팡이를 까딱였다. 난. 무시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게 아무리 블론디에 도마뱀 때문이라도 말이야. 그렇게 말한 조커가 박수를 치자 인기척이 났다. 무너진 천장 위로부터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그림자단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내려다 보았다. 조커가 음침하게 웃었다. 네 실력이 어떤지 보자고 토니 스타크. 회사 하나 지킬 수 없었던 네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지. 그렇게 말하며 조커는 뒤로 빠지기 시작했고 토니가 채 무슨 행동을 하기도 전에 그림자단이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크 스펙터가 토니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 곳은 우선 내가 맡고 있을테니 자네는 저 용을 데리고 나가게. 그들은 저 용을 포획하지 못하면 적어도 죽이려 들을테고 자네를 문책해 제조법을 알아내려고 할거네. 그리고 마크 스펙터는 무심코 내뱉었다. 용의 심장이 멈추면 자네의 심장도 멈출 게 아닌가.
페퍼가 경악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스티브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용의 죽음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거라는 말은 들었으나 용의 심장이 멈추면 토니 스타크의 심장도 멈춘다는 확고한 가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토니는 그들을 향해 죄어오는 그림자단을 경계하며 작게 한숨쉬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여길 뜨라는 건가? 자네 마법 실력을 어떻게 믿고? 마크의 눈썹이 휘었다. 토니는 스티브와 페퍼를 흘끗 보곤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설명해 주겠네. 우선은... 그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그들을 향해 마법이 쏘아졌다. 용이 공격을 당하자 성가신 듯 울부짖었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마법으로 공격할 때에 스티브는 지팡이를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칼을 들었다. 그리곤 그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단을 노려보았다. 그는 문득 무너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라스 알 굴이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적대심은 그대로 용에게도 이어졌다. 소만한 용은 양 날개를 폈고 그 위협적인 모습은 아직 새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단마저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용의 콧구멍에서 김이 나오기 시작하며 쇳소리를 내고 아가리를 벌리자 토니가 스티브를 잡고 끌어당겼다. 숙여! 토니가 그렇게 외치며 방어마법을 구현할 때에 용이 불을 토해냈다. 스티브는 용이 불을 뿜는 걸 처음 보았다. 후끈한 열기가 스치며 용이 그림자단을 향해 굵은 불길을 뿜었고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타버렸으며 몇은 옷에 불이 붙어 허우적거렸다. 그 무자비한 광경에 양 쪽이 전부 질린 건 불가항력이다. 그림자단이 공격을 잠시 중재하며 머뭇거릴 때 라스 알 굴이 허공에서 내려와 가볍게 착지했다. 그를 본 토니가 이를 갈았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마법 세계의 거의 모든 법칙을 위반하고 있다. 이건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에 라스 알 굴은 느긋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쟁이라. 전쟁은 양 쪽의 구도가 대등할 때에나 치뤄지는거지. 지금 상황은 침공이라고 해야겠군. 용은 라스 알 굴에게 불을 뿜고 싶은 눈치였으나 다시 불을 뿜기 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라스 알 굴은 잘 알고 있었다. 이거 고민이군. 제조법을 알아낸다면 저 용은 필요 없겠지만, 자칫 용을 죽이면 자네도 죽을테니 지금 당장은 둘 다 포획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번거롭게 되었어. 토니는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그게 쉽게 될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 날 너무 얕잡아 보는군. 라스 알 굴은 소리내어 웃었다. 물론 아니지. 자네는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거든. 겉으론 좋은 사람인 척 하지만 뒤에서는 그 뛰어난 두뇌로 음모를 꾸미지. 지금 자네는 단지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 세뇌하고 있는 것 뿐이야. 애초에 용을 만든 목적이 뭔지 자네의 친구들에게 말했나? 토니는 침묵했다. 라스 알 굴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생명을 창조하는 마법은 그 누구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되는 부분이야. 게다가 용을 만들어낸다라. 그건 신의 범위에 도전하는거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우린 멸종위기의 생물을 버릴 순 없다는 의견 하에 자네의 실험을 인정해 준 거지만 우리 모두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건 알고 있겠지. 용들을 만들어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고 싶었다고? 자네는 그저 자네의 죽어가는 심장을 유지시켜줄 대체제가 필요했던 것 뿐이잖나.
페퍼와 마크 그리고 스티브는 토니를 돌아보았다. 토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스티브는 그가 변명할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토니는 그러지 않았다. 죽어가는 심장? 대체제? 모든 것이 낯선 단어였다. 페퍼와 마크 그리고 스티브 모두가 서로 각각 다른 측면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토니가 그들 모두에게 한 가지씩 쯤은 숨기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도 전부 사실이었다. 라스 알 굴은 말했다. 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을 비난하는 게 아니네. 단지 자네가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영웅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거슬리는거지. 그러니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있다면 그 제조법을 건네는 것이 어떤가? 자네의 건강을 위해 혼자 독차지하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토니는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가 망설이는 모습은 보기 힘든 종류였으나 토니는 지금 동요되었고 망설였고 무너져가고 있었다. 스티브는 그에게 배신감이 들기 이전에 측은함을 느꼈다. 토니가 숨을 들이쉬었다. 난...
자네는 늘 말이 많아. 이번에는 좀 조용히 있게 토니. 자비에가 말했다. 그와 함께 나타난 한 무리의 마법사와 마녀들이 라스 알 굴과 그림자단을 향해 지팡이를 조준했다.
토니 스타크는 전쟁의 한 가운데서 정신적인 미아가 되어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스치는 수많은 빛과 마법의 줄기에 그는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러 막을 뿐 그는 오로지 혼자였다. 용과 연결된 이후 너무 많은 마법을 사용했다. 그건 용과의 연결이 희미해진 것과 더불어 그의 몸상태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고 토니는 그걸 알면서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스티브를 보았다. 용의 옆에서 지팡이와 검을 들고 있는 스티브는 마치 용의 어머니라도 된 것 같았다. 그의 기운이 그랬다. 스티브 로저스는 언제나 상대를 포용하는 따스함을 지니고 있었고 토니는 그것에 한결같이 의지하곤 했다. 아마 스티브 로저스가 지금 최대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이유도, 그 자신의 상태 때문이 아니라 함께 용과 연결되어있는 토니의 몸상태를 생각해서일 것이다. 스티브는 문득 토니를 돌아보았고 그 시선에 불안과 조급함이 섞인 것을 보며 토니는 자조했다. 라스 알 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속였고 이용했다. 특히 스티브 로저스, 그가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사람마저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복지가라는 애꿎은 이름을 붙여 정당화시켰고 살고 싶다는 욕심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토니는 몇 년 전 지팡이 유출사건을 떠올렸다. 그 때 처럼 자신은 죄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룰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사랑하는 것을 향한 집착을 놓을 수 있을까. 토니 스타크는 고개를 들어 라스 알 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팡이를 들었다.
스티브가 토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용의 화염으로 인한 불길의 소음에 묻혀버렸다. 낡은 건물 안에서 용이 뛰놀고 수십의 마법사와 마녀들이 엉켜 싸웠다. 그 와중 용과의 연결을 통해 스티브는 라스 알 굴을 향해 지팡이를 든 토니가 그에게 전달하려하는 미약하지만 강한 사념을 들을 수 있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죽어가는 심장. 그것을 담보로 만든 용.
용의 심장은 바로 토니의 심장이었다. 스티브는 눈물을 흘렸다.
위대한 생명을 창조해내는 것의 댓가는 너무나도 컸다.
몇 년 전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문을 닫을 당시 토니 스타크는 거의 죽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조커를 상대하던 와중 잘못된 고문마법의 여파가 심장을 직격해 자칫하면 쇼크사 할수도 있었으나 그는 살아났다. 단지 마법의 힘으로도 완치되지 않아 그의 심장은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었다. 그래서 토니 스타크는 모든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의 심장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 그 와중 장생의 동물 중 하나인 용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마법부가 용을 착취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니 스타크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망설일 생각따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심장을 유지시킬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았다. 연금술은 탄생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마치 약물을 제조할 때에 여러 종류의 재료를 넣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손으로 생명을 만들 때에 그 대가는 생명의 무게를 필요로 한다. 심장에는 심장으로.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심장을 재료로 붉은 용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그건 죽음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고 실패할 확률도 높았다. 하지만 토니 스타크는 성공했다. 그의 심장의 일부를 가진 용은 완벽한 생명력을 가졌고 그로 인해 토니는 용이 살아있는 한까지 생명의 연장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육체적이며 또한 일말의 정신적인 연결은 물론 스티브 로저스의 개입으로 약해지고 말았으나, 스티브 로저스로 하여금 용과 연결을 하게 한 것 역시 토니의 생각이었다. 그는 나중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결과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끝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림자단은 수적으로 많았으나 점차 밀리고 있었다. 용은 스티브의 컨트롤을 받아 침착하게 그들을 위협했고 토니 스타크를 돕기 위해 온 마법사와 마녀들은 전부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테판 스트레인지가 지팡이로 진을 그려내어 섬광같은 마법을 뿌렸을 때 상황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양쪽 모두 피해자가 속출했지만 승패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많은 불을 내뿜어 지친듯 머리를 터는 용을 진정시키던 스티브가 본능적으로 토니를 찾았을 때 토니는 휘청이고 있었다. 지나친 마법의 사용으로 인한 결과였다. 라스 알 굴은 자신이 열세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지팡이를 휘둘렀고 붉은 불꽃이 건물의 사방을 때려갈겼다. 쾅 쾅 쾅 쾅 연달아 시멘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진동하고 금이 갔다. 포획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라스 알 굴은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돌덩이를 피해 마법사와 마녀들이 쓰러진 동료를 챙겨 순간이동을 하고 있었다. 스티브는 토니에게 달려가 부축했다. 토니는 헐떡였다. 이 곳에서 나가야했다. 하지만 토니나 스티브 그리고 용 그들 중 누구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머글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 때 자비에 교수가 스티브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토니를 데려갈테니 자넨 용을 챙기게나. 하지만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이 용을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스티브는 토니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그의 허리를 감싸 건물 밖으로 나갔다.
런던의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잔뜩 헤어지고 다친 것 같은 두 남자가 난데 없이 갑작스럽게 길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소리를 지르거나 피했다. 스티브는 그 누군가가 도움을 주려 다가오려고 하기도 전에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든 칼을 보는 것에 얼른 그것을 허리춤에 걸었다. 스티브는 가까스로 다이애건 앨리 쪽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토니는 반쯤 그에게 끌리다시피 걷고 있었는데 마치 온 몸의 기력을 소진한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그건 사실이었다. 토니 스타크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있었다. 얼마 가지 않은 골목길에서 토니는 스티브의 부축을 거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섰다. 다른 동료들과 어디서 재회하기로 한 것도 아닌 이상 호그와트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는데 빗자루도 없는 당장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토니는 골목길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골랐고 그것을 스티브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토니는 그가 본 중 가장 나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괜찮나? 내가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도... 스티브가 말할 때에 토니가 손을 들어 제지하곤 힘겹게 웃어보였다. 괜찮아. 그냥, 그냥 잠깐만 쉬었다 가자. 숨을 고르던 토니는 조금 안정이 되었을 때 스티브를 보았다. 스티브 로저스는 망을 보다가 토니의 시선을 느꼈다. 왜 아무말도 하지 않지? 토니가 말했다. 침묵하는 스티브에 토니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을 했잖아. 진실을 숨긴 것도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지. 스티브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토니는 어깨를 움츠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날 질책해. 내게 화를 내고 따지란 말야. 그래서 내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변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왜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토니는 입을 닫았다. 스티브가 그를 단단한 팔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그렇게 포옹하다가 몸을 물리곤 탁한 시선으로 토니에게 말했다. 보고싶었네 토니. 이 말을 하고 싶었어. 토니의 표정은 울듯이 일그러졌고 그는 참지 못한채 스티브의 손에 뺨을 묻었다. 네겐 자네가 전부야.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토니 스타크가 그렇게 고백했을 때 스티브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의 북받침을 느꼈다. 토니가 말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거야. 내가 한 짓은 인간이 해선 안되는 일이었어.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한 후 너와 함께 안정된 삶을 살거야. 사실 몸은 그렇게 아프지도 않아. 그러니 스티브, 나랑. 거기까지 말한 토니가 문득 멈췄다. 스티브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서서히 창백하게 질려갔다. 조커가 피묻은 칼을 토니의 등 뒤에서 뽑아 내었다. 이런 이런 이런. 눈물 나는 사랑이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되지. 스티브는 넋이 나가 앞으로 천천히 기울어지는 토니의 몸을 받았다. 도망가는 조커에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의 시야에는 붉은 피에 물든 채 눈을 내려감은 토니 스타크밖에 보이지 않았다.
페퍼는 미동없이 누운 토니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였으나 눈물이 연신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선 자비스 역시 무감동한 시선으로 토니를 바라보다가 페퍼의 어깨를 짚었다. 그에 페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아직도 용서할 수가 없어. 그녀가 읊조렸다. 어떻게 내게, 심지어 내게도 말하지 않은 거지? 넌 전부 알고 있었지 자비스? 자비스는 말했다. 전 주인님께 충고를 드렸습니다만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제게 없습니다. 페퍼는 이 집요정에게 화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방황했다. 이렇게 깨어나지 않으면 용서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없잖아. 자비스는 침묵했다. 스티브는 문가에 서서 그들을 마중했다. 멀어져가는 페퍼의 등이 유난히 작다. 자비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서다가 문득 몸을 돌려 스티브를 보았다. 많이 믿으셨습니다. 주인님께선. 스티브는 그가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단 걸 알았다. 그리고 미스터 로저스는 주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셨습니다.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자비스는 그렇게 말한 후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스티브는 토니의 침대 옆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영원히 잠든 것처럼 평안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당장의 전쟁은 끝났으나 그들이 이겼다는 말은 아니었다. 라스 알 굴은 지원군에 대해 방심하고 있었고 다음 번이 되었을 때 그는 더욱 큰 세력으로 몰려 올 것이다. 그는 죽어가는 토니 스타크의 머릿속에 침입해 기억을 끄집어낼수도 있었고 진실을 말하게 하는 약물을 먹일수도 있었으며 고문을 할 수도 있었고 그 외의 수 가지의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할 것이다. 이건 단지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자비에 교수가 걸어 들어왔다. 자비에의 발치에서 악어와 같이 걸어온 용이 스티브에게 다가와 그를 어미처럼 반겼다. 자비에는 토니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남지 않았군. 그 말에 스티브의 심장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어째서 나에게 용과 연결을 하라고 제안한 걸까요. 어째서 마법을 지나치게 쓰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학과 같은 행위를 계속 했을까요. 자비에는 스티브를 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 건지 깨달은거네. 그리고 그는 회개의 방법으로 자네를 선택한거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기적인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토니를 알지 않나. 그의 성격이 늘 이런 식이라는 건. 자비에는 그렇게 말했으나 어렴풋이 웃고 있었다. 그가 떠난 후에 스티브는 한동안 계속 토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그의 이마에, 입술에 입 맞췄다. 핏기가 사라져가는 입술은 차가웠다. 스티브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용에게 몸을 구부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그의 마지막 자취이자 또한 짐이구나. 스티브의 말에 용은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티브는 조금 울었다. 용을 몇 번이나 더 쓰다듬던 스티브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단번에 그 목을 잘랐다.
사방이 환한 걸 보니 아침이었다. 햇살이 밝고 부드러웠다. 토니는 눈을 껌벅이다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방의 풍경이 아니었다. 방은 물건이 몇 개 없었으며 매우 정갈했지만 동시에 따듯한 기운이 있었다. 토니는 자신의 등을 더듬었다. 흉터 자국이 느껴졌다. 그는 빠르게 뛰는 심장 위를 쓰다듬다가 침대에서 나와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옷걸이에 걸린 가운을 입으며 그는 방에서 나왔다. 그곳은 누군가의 자택처럼 보였고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이 그가 발을 딛을 때마다 낮게 울었다. 토니는 커튼이 펄럭이는 걸 제치고 열려있는 뒷문으로 나왔다. 그는 햇살을 막기 위해 손바닥으로 잠시 눈을 가려야 했다. 잔디밭은 언덕으로 이어져 있었고 거기서부터 낮은 산과 목장 등이 보였다. 그는 풀밭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등을 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단정한 금발과 곧고 넓은 등이었다. 토니는 그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이거 꿈인가? 아니면 나 죽은거야? 토니의 말에 스티브가 웃었다. 죽은 것 같나? 토니가 생각했다. 음. 이 잔디는 꽤나 진짜처럼 느껴지는군. 바람도 그렇고. 천국이 이렇게 시골스러운 분위기인줄은 몰랐는데. 아니면 혹시 지옥인가? 스티브는 다시 한 번 웃으며 토니에게 입맞췄다. 토니는 스티브의 어깨를 움켜쥐고 끌어당기며 그 입 안을 점령했다. 깊게 입 맞추고 떨어지자 스티브는 헐떡였고 토니는 그의 양 뺨을 잡으며 이마를 맞댔다. 현실이라고 해줘. 내가 지옥에서 평생 네 환영만 붙든 채 살아가야 하는게 아니라고 말해줘. 토니의 속삭임에 스티브는 그를 끌어 안았다. 지옥도 천국도 아니야 토니. 자네와 내가 있는 세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