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퍼니셔 육아일상물
마약 밀매를 일삼는 모 조직을 붕괴시키고 나서 프랭크 캐슬은 며칠 간의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동안 무기도 정비하고 아지트도 옮기고 새로 검은 옷을 사서 해골 모양도 그려넣고 할 일이 많았다. 의자에 큰 등을 굽히고 쭈구리듯이 앉아 그는 자신의 검은 색 티셔츠를 앞 뒤로 훑어 보았다. 이곳 저곳 찢어지고 헤어져서 두 번은 못 입을 듯 싶었다. 준비해놓은 실과 바늘을 아쉽게 보던 그는 아지트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총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노크를 하고 들어온 인물이 레이첼인 것을 확인한 그는 총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품 안에 둥그런 뭔가를 안고 있었다.
"빵인가? 그렇지 않아도 뭘 좀 먹으려던 참인데."
"빵 아니에요. 이거 봐요 프랭크."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안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보자기에 쌓인 그것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갓난 아기였다. 색색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를 보던 프랭크는 들고있던 티셔츠를 구석으로 던졌다. 구석엔 이미 죽은 티셔츠가 한 무더기나 쌓여있었다.
"그럼 난 뭘 먹지."
"왜 그렇게 먹는 거에 집착해요?"
"점심부터 못 먹었어. 계란밖에 남지 않았군."
"당신 계란 좋아하잖아요."
프랭크는 후라이팬을 달구며 계란 세 개를 꺼냈다. 침묵하던 그가 말을 돌렸다.
"그 애는 어디서 데려온거지? 우린 납치는 하지 않아."
레이첼은 애기를 안은 팔을 가볍게 흔들며 요람 흉내를 내었다. 결혼을 하다가 그 사고를 당했으니 애를 보는 눈빛이 남다르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프랭크는 최대한 아이를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의 과거를 떠올릴수 밖에 없어서였다.
"납치한 거 아니에요. 누군가 버리고 갔더군요."
"그냥 잠시 놔두고 잊은 걸수도 있잖아."
"자기 애를 잊어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게다가 가로수 밑 보도블럭에 놓여져 있었으니 버려진 게 확실한 것 같아요."
프랭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에 레이첼은 작게 한숨 쉬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심기가 불편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애를 데려온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고 그녀는 이런 반응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 초겨울에 애를 버려두고 올 수도 없잖아요. 며칠만 데리고 있다가 시설로 보내기로 하죠."
"하죠(let's)가 아니라 당신이 한다는 거겠지."
"한 번 자세히 봐봐요. 얼마나 귀여운데. 여자아이에요."
"됐어."
"그러지 말고."
결국 프랭크는 계란 후라이를 접시에 담아야 한다느니 뭐니 시간을 때우다가 마지못해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정말 빵덩어리처럼 조그맣고 가볍고 또 사랑스러웠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자고 있는 모습이 천사같았다. 프랭크는 자신의 한 때 살아있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 되진 않았다. 그는 한동안 계란 후라이가 식을 때까지 아이를 안고 있었고 그 모습을 레이첼은 웃으며 지켜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어벤져스에 의해 그의 아지트가 공격받았다.
사실 얼마 전 마약 밀매를 하는 조직을 프랭크 캐슬이 처리할 때에 몇 명의 잠복 경찰과 더불어 사건에 휘말린 민간인이 있었다. 그건 예상치못한 일이었으나 뉴스에 보도된 내용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퍼니셔의 일로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 건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벤져스는 그를 친히 잡아들이기위해 아지트를 공격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토니 스타크는 프랭크의 아지트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를 비롯해 몇 명의 어벤저스는 이른 새벽 불시에 기습했다.
프랭크는 아지트의 주변에 깔아 놓은 그의 와이어들이 차례로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아이언 맨이 공중에서 수 바퀴 회전하며 땅에 쳐박힌다는 말과 같았다- 다행히도 레이첼은 외출중이었기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두고 갔다. 프랭크는 무기를 챙겨 들다가 아이의 존재를 떠올리고 잠시 망설였다.
"프랭크 캐슬. 거기 안에 있는거 다 안다. 그러니..."
토니는 쏘아올려진 수류탄같은 것에 맞고 다시 한 번 땅에 박혀야 했다. 프랭크가 양 손에 총을 들고 등에는 가방같은 걸 맨 채로 나왔다. 덩치 좋은 남자가 야차같은 검은 눈을 부라리며 두 개의 기관총같은걸 들고 있는데 위협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파이더 맨이 비꼬듯 말했다.
"헤이 프랭크. 웬일로 당당하게 앞문으로 나왔데? 보통 트릭같은 걸 잔뜩 설치해 두잖아?"
"아까 보지 못했나본데 내가 그 트릭 중 하나에 걸렸거든? 조심해."
수트가 너덜너덜해진 토니가 떨어진 자리로부터 날아와서 이를 갈았다. 그 때 스티브 로저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Stand down, Soldier."
평소같으면 그 말에 듣는 시늉이라도 할, 아니 정말로 복종했을 프랭크는 이상하리만치 묵묵하게 선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스티브마저 의아함을 느낄 정도였다. 원래 프랭크 캐슬은 스티브 로저스의 명령이라면 껌벅 죽지 않았던가? 프랭크는 찌푸린 미간으로 시선을 내려 깔았다.
"죄송합니다, sir."
그리고 프랭크는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잡기 위해 몸을 날리던 피터의 뒤에서 토니가 갑자기 소리쳤다.
"잠깐만! 저 가방에 뭔가 있어."
"폭탄?"
"아니. 아기가 있어."
어벤져스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어째서 프랭크 캐슬이 파이팅 마더라도 된 것처럼 아기를 등에 업은 채 양 손에 총을 든 것일까? 아이에게 저런 교육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젖은 어떻게 먹이지? 그 전에 질문이 한참 잘못되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생각은 하나같이 모아졌다. 설마 퍼니셔가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인가?
"그는 누군가를, 그것도 아이를 인질로 잡을 사람은 아냐."
그 말은 맞았다. 트라우마가 있는 프랭크 캐슬이 애를 인질로 잡을리는 없었다. 토르가 생각하듯 눈을 굴렸다.
"그렇다면 그가 어째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오?"
"한 번 확인하러 가보죠. 캐슬이 아이에게 사살교육을 가르치려들기 전에."
피터가 말했고 그들은 프랭크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대략 n시간 정도의 공방전과 시선싸움과 말싸움과 비아냥과 이것 저것이 일어난 후 프랭크 캐슬은 오만 인상을 쓴 채 어벤져스 타워의 안에 의자에 앉은 채로 묶여 있었다. 물론 그가 그 어떤 물건도 무기로 사용할 수 없도록 주변을 치워 놓은 상태였다.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아기를 지키려고 몸을 사리다보니 공격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자신이 모든 공격을 막아야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기가 없었다면 그가 잡혔을 일은 없었겠지만. 한편 그가 어떤 생각을 하던지 어벤져스들은 아기를 둘러싼 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귀엽다."
"귀엽네."
"귀엽잖아."
"귀엽군."
과 같은 일관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 쪽에서 팔짱을 낀채 그 꼬락서니를 본 로건이 눈을 굴렸다.
"그래서 이 친구는 지금 여기 왜 있는건데? 버려진 애를 주운 죄로?"
"민간인을 죽였잖아요 울비."
"이봐 거미. 넌 그 경계를 좀 낮출 필요가 있겠어."
"그럼 당신은 경계를 쌓는 법을 배워야겠네! 아니지. 둘이 친했던가? 편 들어주는거야?"
"피터. 애가 울잖아."
나타샤가 흐앵흐앵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아기를 안아 들었다. 그녀는 꽤나 능숙한 동작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조금 얼러주자 아이는 울음을 낮추었다. 하지만 여전히 칭얼거리는 아이에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어벤져스들은 서로 뭘 해야 하나 난감한 채 눈치만 봤다. 피터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토니를 가리켰다.
"보스! 보스가 해."
"뭐? 왜? 뭘?"
"애 돌보는 거. 보스는 모르는 게 없잖아? 애 돌보는 법도 알 것 아냐."
"육아법은 나의 천재적인 두뇌와 전혀 상관이 없다 피터. 로건, 자넨 어때? 자식이 몇이더라."
"장난하냐? 싸울래?" "미안." "보아하니 로마노프 요원이 애 돌보는 데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난 조금 후에 출장이에요. 토르?"
"아스가르드에 돌아가야 하네. 돌볼 수 있겠나 스티브."
"......"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스티브 로저스의 표정은 애매했다. 책임을 맡으려는 듯한 리더의 표정과 그 답지 않게 약간은 자신 없는 듯한 표정이 보였고 어벤져스들은 모두 동시에 한숨을 쉬다시피 했다. 어쩜 어벤져스의 중요 멤버들이 하나같이 애를 돌보는 데에 무력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어쩌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재되어있던 건 약간의 모성애가 아니었을까. 아이는 뭔가 불편한지 자꾸만 나타샤의 품 안에서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그 때 프랭크가 여태껏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날 풀어줘."
"기각."
"내가 아이를 돌보겠다."
"기...뭐?"
단호하게 말하려던 토니가 프랭크를 돌아보았다. 어벤져스는 그들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으나 프랭크는 꽤나 진지한 얼굴이었다. 하긴 그의 얼굴은 항상 진지하긴 했다.
"애가 있는 동안은 도망가지 않겠다고 약조하지."
어벤져스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몇 분 후에 그들은 하나같이 놀랐다거나 경악한다거나 세상에!라는 표정이거나 말도 안돼 라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프랭크는 능숙하게 애를 그의 품 안에 안고 얼렀다. 그의 크고 울퉁불퉁한 상체에 들린 아이는 말 그대로 곧 찌그러질 빵덩어리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놀랍도록 잠잠해졌고 프랭크가 손가락 끝으로 그 조그만 코를 간지렀을 때엔 심지어 웃기도 했다. 나타샤가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쟨 내 품에서도 칭얼거렸단 말이야. '내' 품에서!"
"엄마라고 생각하는 걸 아닐까? 가슴 크기로 보면 역시 나타샤보단 저 쪽이... 아야! 왜 때려!"
그렇게 해서 프랭크 캐슬과 이름 모를 갓난아기가 어벤져스 타워의 임시 거주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