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스팁
모처 리퀘
토니 스타크는 놀람에 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웬만한 일이 닥쳐도 생각 장애를 겪거나 알콜 중독 증세를 보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는 거였고 그건 아마도 토니 본인이 기억하는 한 최근까지 충실하게 지켜져 오고 있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겪었고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죽음에도 삶에도 변화에도 순리의 거스름에도 토니 스타크는 언제나 그것의 일부 혹은 주모자가 되어 놀람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래, 어쩌면 자신의 피부 위를 감싸는 아머처럼 단단한 남자일지도 몰랐고 그건 부분적으로나마 사실이었다. 천재의 시야에 비춰진 인간의 삶은 느리기 그지 없을 것이 분명했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그의 주변에서 너무나도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껴 그 자신과, 혹은 모든 사람에게 셀 수 없는 사건을 초래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몇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리고 토니는 늘상 그러하듯 그런 것 따위에는 신경 하나 쓰지 않을 정도로 놀람에 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토니는 자신의 동료이자 연인인 스티브 로저스가 아침 식사를 만드는 것을 보곤 확실히, 놀랐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가 가진 무수한 로망 중 하나였다. 왜, 아무리 천하의 토니 스타크라고 해도 로망 한 두개 쯤은 갖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로망이라는 것이 스티브 로저스라는 인물에 한해서는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었고 사실 토니는, 그의 머릿속으로만 굴려 보곤 하는 은밀한 소망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토니는 진지한 연애에 한해서는 언제나 약간은 서툰 면을 보여왔고 그건 자신을 추스리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염려로 섣부른 행동을 하기에 망설이기 때문에였다. 그도 그럴 것이, 토니는 살면서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으며 적어도 연애, 특히나 스티브 로저스와의 연애에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더, 조심스럽고, 섬세하며, 어쩌면 약간은 일상적인 것처럼 느릿하고 소소한 연애를 하기 원했던 것이어서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눈치가 빨랐고 그에 더불어 과묵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꽤 오랜 시간동안 토니 스타크라는 남자를 옆에서 지켜봐왔으며 그와 사귄지도... 아니, 정식으로 사귄지는 한 넉 달쯤 되었다. 하지만 사귄다 는 기간으로 그들의 사이를 정의하기엔 그들은 이미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 로저스가 어느 날 문득 함께 영화를 보던 그의 연인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저 여주 기분 좋아 죽는 것 좀 봐. 애인이 아침 식사 한 번 해줬다고 흐물흐물 풀어지는 꼴이라니.'
라고 말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바로 전날 뜨거운 밤을 보낸 연인이 함께 아침 식사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화면을 보던 스티브는 잠시 후 화면과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고 곧, 깨달았다. 흔하디 흔한 로맨스 영화를 향해 있는 힘껏 비아냥거리고 있는 이 솔직하지 못한 남자가 지금, 어쩌면 남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속으로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스티브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토니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 왜? 라며 되물었고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는 토니와는 또 다른 의미로 과묵한 남자였다.
"...세상에. 스티브."
토니의 목소리는 심지어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조금 전만 해도 어제 밤에 함께 격정적인 시간을 보낸 연인이 눈을 떴을 때 옆에 누워있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허전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토니는 침대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와 느릿하게 옷을 주워 입고 거실을 향해 길고 긴 길을 걸을 때 쯤에서야 음식 냄새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는 현실이 되었으며, 토니는 주방에서 단정한 등을 보인 채 요리를 하는 스티브를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말 그대로 굳어버릴 정도로, 놀란 것이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평상시와 별 다를 것 없는 말끔한 셔츠에 허리에서 단단히 벨트를 조른 면바지를 입고 양 팔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둘둘 겉은 상태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멍하니 선 토니를 발견하곤 살며시 웃었다.
"앉게. 식사를 준비했으니."
"오...... 아아."
말을 더듬거나 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단답으로 대답한 토니는 약간 비척이며 의자에 앉았다. 잠이 덜 깨서 헛것을 보는 건가? 혹시 스티브와 닮은 꼴을 한 새로운 가정부인가? 하는 온갖 쓸데없는 가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으나 곧 스티브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져 와 토니의 앞에 내려놓자 그는 더 이상 그런 바보같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연인은 아침의 내음을 담은 채 자신의 옆에 앉아 잔잔하게 웃고 있었고,
그것으로 토니 스타크의 놀라운 행복은 충족되었다.
사람이 얼마나 사소한 부분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던가. 토니는 입꼬리를 끌어 당기며 웃었다. 오늘 무슨 날이라도 돼? 내 생일이야? 그런 식의 말로 벅찬 기분을 감추려는 것까지 너무나 토니 스타크 다웠다. 그걸 알고 있는 스티브는 그저 약간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다. 스티브는 포크로 해쉬 브라운을 조금 잘라 토니의 입 앞에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먹은 토니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스티브의 뒷목을 감싸쥐며 입 맞췄다. 스티브는 놀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