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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star trek

커크본즈스팍 raw 2





우선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선 레너드 맥코이가 제임스 커크와 사귀게 된 경위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맥코이에게 있어서 커크는 좋은 친구, 그 더도 덜도 아니었다. 굳이 부가설명을 덧붙여 보자면 그가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가까운 사람들 중 하나. 허물없이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 중 하나. 그리고 그의 그다지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과거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 그 정도일 것이다. 같잖게 간지러운 표현을 빌려 보자면, 절친이라거나 베스트 프렌드라던가 소중한 친구라던가... 그런 식상한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커크에게 있어 맥코이 역시 비슷한 존재일거라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맥코이는 순수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간혹 그렇게 멍청했다. 커크가 낄낄거렸다.


"너 완전 장관이야. 끝내줘."


맥코이는 씨발새끼야 로 시작하는 욕설을 뱉으려고 입을 움직였지만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는 건 침밖에 없었다. 천으로 틀어막힌 입에서는 뭉개진 혀가 연신 읍읍 소리를 만들었지만 커크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 양 손목은 노끈으로 침대 맡에 묶여 있었고 그건 양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베드포스트에 한 짝씩, 민망할 정도로 가랑이를 쩍 벌린 채로. 옷은 브리프만 걸친 채였는데 맥코이는 이런 모습을 커크 앞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보인 적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애초에 수치스럼을 느끼도록 만들려 한 것이 목적인 것 같았지만.


어쨌든 정신을 차려보니 이 꼴이었다. 무슨 약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내에 남아있던 알콜과 혼합되면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종류임이 분명했다. 맥코이는 자신의 위를 덮쳐 내리는 커크의 등 뒤로 우주를 보았다. 별들이 그들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오만 색의 네뷸러가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성좌들이 춤을 췄다. 커크는 맥코이의 뺨을 툭툭 두드리더니 기분 좋은가보네 하고 지껄였다.


"네가 눈치가 워낙 없어야지. 이렇게 안 하면 평생 모를 것 같았다니까."

"하....고...고으..으응...우."

"저번에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그 때 네가 뭐랬는지 기억나냐? 친구끼리 좋아하는 거 당연한거 아니냐고 그랬잖아, 씨발 존나 멍청한 새끼야."


커크는 양 팔을 교차시켜 윗통을 벗어 던졌다. 커크는 아이오와의 시골에서 구르며 자라났다. 진하게 그을리고 잔근육으로 단련된 몸이 번들거리는게 보이자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커크가 몸을 숙여 키스했다.


"나랑 사귀어."


맥코이는 도리질 쳤다. 다음 순간 성기가 강하게 잡혀왔다. "사귀라고." 커크가 으르렁거렸다.


그 다음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는 거라곤, 맥코이는 많이 울었고, 커크는 많이 싸질렀다. 머리채가 한 웅큼씩 쥐어 잡히고 맥코이는 아프다며 악을 질렀지만, 커크는 참으라던가 혹은 더 질러보라던가 그딴 소리만 지껄이며 맥코이의 뒤를 들쑤시기 바빴다. 성욕 때문에 눈 앞에서 스파크가 튀고 흐느끼는 소리가 절로 새나왔다. 끝에 가선 맥코이는 계집애처럼 커크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장단에 맞춰주었고 커크는 만족스럽게 맥코이의 입술을 빨아대었다. 거봐, 너도 나 좋아하는 거 맞잖아. 커크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맥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맥코이가 커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임스 커크를 생각하면 그는 언제나 올가미에 걸려 든 기분이었다. 정말 사고처럼 엮였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덫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커크를 보며 좆을 세운 적이 있다는 것도 전혀 아니었지만(빌어먹을, 그들은 정말로 친구일 뿐이었다) 그 하룻밤의 섹스를 차마 강간이었다 부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란 것이다. 커크는 맥코이 역시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장담했지만 맥코이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가 커크를 이성적으로 좋아했건 혹은 아니었건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커크는 정말로 거부하기 힘든 놈이었단 것이다. 섹스가 관련되었다면 더하다. 난생 처음 후장이 뚫리고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 걸 보니, 맥코이에게도 그 사항은 여지없이 적용되었던 모양이다.


"두 분이 어떻게 사귀게 된 거예요?"


아직까지도 이런 질문이 나오면 맥코이는 적어도 오 초 정도는 머리를 싸매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곤 한다. 차마 누군가의 면전에 대고, 아 별건 아니었고 녀석이 내 사지를 묶어놓은 채 뒤를 따먹어버려서 사귀게 됬소 하고 말하기엔 아무리 맥코이가 뻔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실직고하기 힘든 사실임에다. 어찌됐건 맥코이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커크는 제가 자신의 화려한 잠자리 테크닉으로 맥코이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다고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니는 모양이었지만.


"뭐, 어쩌다 보니."

"참 신기한게, 보면 함장님이 닥터한테 잡혀 사는 거 같은데 실상은 그 반대인 것 같단 말이지."


휴게실에는 맥코이와 체콥 그리고 술루가 있었다. 아직 커크가 떠벌리는 말을 듣지 못한 듯한 체콥이 그 지긋지긋한 질문을 꺼냈고 뒤에 참 신기하다며 중얼거린 쪽은 술루였다. 술루는 별로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이라 맥코이는 그가 커크의 떠벌림을 들은 건지 아닌 건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젠장. 동양인들의 얼굴이란.


"아무리 함장님이 잘못해도 좀만 구슬리면 닥터는 금새 풀려버리니까요."


게다가 동양인은 눈치도 빠르다. 맥코이는 입을 굳게 다문채 가늘게 뜬 눈으로 술루와 체콥이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과 CMO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마치 제 3자인양 지켜보았다. 그들이 사귄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별로 숨길만한 일도 아니었거니와, 제임스 커크와 사귄다면 그걸 숨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커크는 맥코이의 주변에 꼬여들 가능성이 있는 날파리들을 떨쳐내기 위한 것이라 지껄였지만 별로 그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워낙 평소에도 가벼운 신체 접촉마저 안 하곤 못배기는 성미라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맥코이를 주물럭거리기 위해 사귄다는 걸 숨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던 맥코이로선 그닥 달갑진 않다. 그래도 싫은 것도 아니라, 몇 번 손모가지를 잘라버린다는 빈말로 협박을 했을 뿐이었다.


맥코이는 불편하게 목덜미를 긁적였다. 뭐, 자신이 커크가 속눈썹 몇 번 깜짝이면 저도 모르게 화가 풀려버리곤 한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워낙 말빨이 좋아야지. 애교도 끝내주고. 살살 달래가면서 달콤한 말을 지껄이며 꼬리를 흔들어대면 아주 그냥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가 따로 없었다. 여자였다면 남자 여럿 잡아먹었을 거야. 맥코이가 불퉁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끝은 항상 침대로 가서 맥코이의 혼을 쏙 빼놓는 섹스를 하는 것이라, 정신 차려보면 애초에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가물가물해진다. 안 좋은 패턴이다, 이건. 심지어 술루까지 눈치채고 있을 정도면 더욱.


"그건 저 역시 알고 있던 사실이군요."


어느 새 휴게실에 들어온 스팍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술루가 그렇죠? 나만 느낀 게 아니라니까 하고 받아쳤고 체콥은 저는 몰랐는데요.. 하고 중얼거렸다. 맥코이는 너네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자각은 하고 있는거냐? 응? 하고 말했다. 스팍은 이번에도 알고 있습니다 하며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그는 맥코이의 뒤로 다가와 손 끝으로 그의 뒷목 어느 부분을 가볍게 건드렸다.


"제 쿼터는 캡틴의 쿼터 바로 옆에 붙어있습니다."


맥코이는 스팍을 올려다보며 제 뒷목을 매만졌다. 어젯 밤 커크가 진득하게 빨아대던 부분이란 걸 기억해내자, 맥코이는 그대로 스팍의 찻잔에 코를 박고 죽고 싶어졌다. 그는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밤마다 그걸 다 들었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들리기라도 한 건지 스팍은 긍정하듯 눈을 깜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