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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star trek

스폰즈 꽃가루


리사님 리퀘

스폰즈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나. 좋게 말할 때 검사 해보라 했지?"


맥코이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얼핏 입가에 서리는 웃음만큼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래서 의사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종말적인 일이 일어날지 장담 못 한다니까 그러네. 그의 반 장난어린 말에 벌칸은 만약 인간이었다면 입술을 비죽 내밀었을지도 모를 법한, 뚱한 기색을 내비쳤다. 스팍은 딱히 그다지 심각한 건 아닙니다만, 하고 말했으나 그의 표정만으로도 지금 꽤나 괴로워하고 있단 것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 맥코이는 그에게 측은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 상황이 차마 재밌지 않다곤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행성은 지구에 비교하자면 봄에 가까운 기후를 띠고 있었다. 비록 근래들어 지구는 예전 그것이 겪던 봄과는 다르게 봄마다 볼 수 있었다고 하는 나비떼나 벌의 무리라던가 혹은 공기중에 흩날리는 무수한 꽃씨라던가 그런 자연적인 것을 찾아보기는 힘든 환경이었다. 이 행성은 마치 예전 지구가 그것이 겪었을 온갖 자연재해나 온난화 이전 보였을 법한 그런 그림같은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리까지 불쑥 자라난 색색가지 알 수 없는 꽃무더기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대낮의 별처럼 허공을 수놓는 꽃가루가 그 예중 하나였다. 맥코이는 물론, 탐사를 내려가기 직전 커크에게 백신 하이포를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번에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걸려 돌아와 사흘 밤낮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끙끙거리는 꼴은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커크는 멀쩡한 듯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은 스팍 쪽이었다. 맥코이는 벌칸의 벌겋게 달아오른 팔뚝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다시 한 번, 이번엔 조금 더 진지하게 혀를 차야했다.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설마하니 자네가 꽃가루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걸. 혹은 벌칸 특유의 성질과 작용하는 부분이 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미리 알지 못했던 내 불찰이라 할 수도 있겠지."

"당신의 잘못은 없습니다, 닥터." 스팍이 차분하게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처 예상치 못한 제가 부주의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짐작하건데 이 행성의 꽃가루는 제게 가벼운 피부질환만을 일으킬 뿐 심각한 반응은 없을 듯 합니다."

"아프진 않고?"

스팍은 눈을 깜박였다. "괜찮습니다."


그 때 바람이 크게 불어왔다. 드넓은 꽃밭은 끝이 모르고 펼쳐진 희고 노란 바다처럼 그들 주변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너른 바람에 의해 마치 파도가 치듯 넘실대며 흔들렸다. 맥코이는 손을 들어 이마께에 가져가 햇빛을 가리며 지평선 너머를 내다 보았다. 얼핏 탐사를 하러 내려온 엔터프라이즈호의 다른 대원들 모습이 희미하게 흔들리길 반복했다. 스팍은 자신의 울긋불긋한 팔을 내려다보다가 팔뚝까지 걷어 올렸던 옷자락을 도로 내려 그것을 감추었다.


"누굴 찾고 계십니까?"

맥코이는 스팍을 돌아보지 않으며 픽 웃었다. "저기 있네."


언덕 위에 서있던 커크는 그들을 발견하곤 손을 들어 보였다. 맥코이는 마주 손 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함장에게서 눈을 떼지도 않았다. 이럴 때면, 바보처럼 아픈 누군가를 볼 때에면 반드시 한 번 쯤은 생각나는 녀석이지.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스팍은 그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는 맥코이를 한동안 말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