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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star trek

커크본즈스팍 raw



제임스 커크는 보통 좋은 함장이다. 그는 자신의 대원들에게 자애로우며 상냥하고 또한 너그럽다.


"방금 씨발 뭐라고?"


커크는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어깨 근육을 꿈질대었다. 새파란 푸른 눈은 일렁이는 워프 코어의 빛무리를 수십 겹 겹쳐 놓은 것처럼 흔들리며 짙은 눈썹 밑에서 기이하게 번들거렸다. 맥코이는 커크의 이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커크가 이러한 눈이나 표정을 지을 때 대부분의 경우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었으며 결국 그 끝은 차마 평탄한 마무리였노라 말할 수 없는 종류가 거진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게 레너드 맥코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이었으나, 차마 전부 안심하기는 일렀다. 그것도 아주 한참 일렀다. 스팍은 뒷짐 쥐고 있던 손을 풀더니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귀가 멀쩡하시다면 분명 제대로 들으셨을 텐데요. 함장님."


벌칸은 온순하다면 온순한 종족이다. 그들은 최대한 싸움을 기피했고 평화를 주도했다. 비록 스팍이 절반은 인간이라고 하나 그 역시 벌칸의 성질이 깊숙이 박혀 있었기에 별 다를 바는 없었으며, 실상 맥코이는 제 두 눈으로 스팍이 그의 온순함을 잃는 걸 본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의 스팍은 양 손을 서서히 움켜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맥코이는 육탄전에 대해 쥐뿔도 몰랐으나 지금 저 행동이 뭘 야기하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여차하면 상대방에게 주먹질을 하겠다는 거다. 제임스 커크건, 스팍이건.


그들은 서로 한 뼘 정도만을 사이에 두고 바짝 노려보고 있었다.


서리발이 몰아치는 듯한 한기 속에서 브릿지의 대원들은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그들을 주시할 뿐이었다. 눈을 떼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광경이었지만 차마 말리거나 끼어들기엔 지나치게 살벌하다. 심지어 우후라마저 입을 벌렸고 캐롤은 브릿지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한 상태로 굳었으며 스콧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채였다. 체콥이나 술루의 쪽도 두 번 볼 것 없었다.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 새에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던 커크가 짐승처럼 잇새를 드러내며 이죽였다.


"내 귀는 존나 멀쩡하거든."

"그렇다면 뇌에 문제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다시 한 번 지껄여 보시지. 스팍."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굳이 다시 듣고 싶으십니까?"


비꼬는 듯한 도발에 커크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갈퀴같은 손아귀에 어깨죽지가 잡힌 맥코이는 억 소리도 못내고 휙 끌려와 꼴사납게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맥코이가 중심을 잡으려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웃음짓지 못했다.


"니가 지금 내 애인을 어쩌겠다고?"


맥코이를 가리키며 으르렁거리는 커크에게, 스팍이 담담하지만 파도가 몰아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신 애인, 레너드 맥코이와 본딩을 할 겁니다."


침묵이 뒤덮었다.

폭풍 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