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c/dc

아서뱃 단문


아서뱃

네임버스





"이해가 안되는군."


배트맨은 단조롭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비록 카울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제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상대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배트맨은 원래 궁지에 몰리지 않는 자이지만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벽에 등을 대고 있었으며, 제 앞에서 버티고 선 철갑 옷을 입은 비인간으로 인해 이 대화로부터 쉽게 빠져나가기 힘들어 보였다. 다른 리거들은 그들을 흘끔거렸으나 차마 말리거나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최근들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이들의 마찰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은 배트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남자의 얼굴 옆 벽을 짚은 손을 떼지 않은 채 그에게 조금 더 몸을 기울였다. 준수한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진심인가, 배트맨?"

"이 손부터 치우고 말하지 그래."

"지난 이 주 동안 도망만 다녔던 사람으로부터 듣고싶지는 않군."

"당장 뒤로 물러서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어."

아쿠아맨은 당연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네가 시도하는 걸 보고싶은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배트맨은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으며, 아쿠아맨은 바다의 힘을 가진 비인간이었다. 만약 순수한 힘 자체로만 겨룬다면 분명 승부는 보나마나일테지만, 배트맨이 누구인가. 그는 자신보다 배는 강한 자들을 넘겨트릴 만한 지능이 있었고 그만큼 교묘했다. 그는 뛰어난 책략가였으며 또한 달변가였다. 그랬기에 리거들은 그들이 전면전으로 부딪힐 가능성을 가늠하며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배트맨과 아쿠아맨의 싸움이라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결말이 올지도 몰랐다. 그리고 배트맨은 지금 정말로 당장에라도 주먹을 내지를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신, 배트맨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증거를 보이던가."


주변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이 이름이 새겨진 살을 내보이는 건, 마치 길거리에서 섹스를 하는 거나 다름 없었다. 이름이 적힌 피부를 보이는 행동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한편으로는 음란할 정도로 사적인 행동이었다. 배트맨은 말을 되물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아무리 배트맨이라 할 지라도 그건 도를 넘어선 요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쿠아맨은 그 누가 무슨 행동을 채 하기 전에 벽을 짚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목께의 갑옷을 잡아 밑으로 끌어 내렸다. 비늘과 같은 갑옷이 내려가며 쇄골뼈와 근육이 불거진 남자의 어깨가 드러났다. 다들 숨을 들이켰다.


"브루스 웨인. 네 이름이야."


쇄골 바로 아래에 적힌 이름의 철자는 분명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이름이 맞았다. 


대답 없이 그것을 응시하고만 있는 남자에게 아서는 자신의 물결처럼 흐트러진 금발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푸른 눈동자가 파도처럼 넘실거렸고 브루스는 그걸 조금 버겁다고 느꼈다. 아서가 숨이 섞일 거리에서 말했다.


"이제 네 몸에 적힌 이름을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