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
단문
스티브 로저스는 과보호를 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독립적이었으며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의 아비가 전쟁에서 죽은 이후 어미가 홀 몸으로 저를 보살펴야 했을 때, 스티브는 그가 더 이상 누구의 짐도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티브는 그래서 신문을 돌리고 우유병을 거두며 다녔다. 그는 제 손으로 돈을 벌어서 병 든 어미의 약을 샀고 학비를 댔다. 간혹 어미가 늙은 손으로 허드렛일을 해서 그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것 외의 다른 물건, 예를 들면 스티브의 새 옷이라던가 그가 읽고 싶었던 책이라던가 그런 걸 사올 때면 스티브는 그녀에게 한결 같은 말 뿐이 하지 않았다. 이런 거 하지 마시라니까요. 그래도 감사해요. 스티브의 어미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습성은 별로 바뀐 점이 없었다. 어쩌면 그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여전히 병든 몸이라던가 왜소한 체구라던가,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 만큼 쓸모 없는 몸뚱아리가 그랬다. 길목을 다닐 때마다 누군가에게 얻어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스티브에게는 그 때마다 그를 지키려고 드는 버키 반즈가 있었다.
스티브는 결혼이란 걸 꿈도 꾸지 못했다. 그를 좋아하는 여성이 있을 리가 만무했으며, 딱히 그가 마음에 둬 본 여자도 없다시피 했다. 애초에, 자기 한 입 풀칠하면서 미대를 다니기도 빠듯한 와중에 가정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스티브에게 있어서 버키는 성망의 대상이나 다름 없었다. 버키 반즈는 잘 생겼으며, 싸울 줄 알았고, 그가 들어가지 못할 군대에 너무나도 쉽게 입대하고 말았다. 그리고 스티브가 그에게 말은 하지 않아도 일종의 부러움을 느끼고 있단 걸, 버키 반즈는 그의 누구보다 재빠른 눈치로 알아차렸다. 이건 비밀이긴 했지만, 버키는 스티브에게서부터 그런 시선을 받는 걸 즐기고는 했다. 그는 자신이 골목에서마다 스티브를 지켜줄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겼으며 그걸 빌미로 스티브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는 걸 행운으로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면 버키는 스티브에게 조금 더 진심으로 다가가겠다 마음 먹었다. 버키는 나쁜 생각을 가졌다. 스티브 로저스에겐 어차피 버키 반즈, 그 밖에 없다는 생각 말이다. 어차피 로저스를 봐줄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는 오로지 버키 반즈, 그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아주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버키는 스티브의 허벅지 위로 올라 탔다. 군복 바지가 벌어진 허벅지 위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졌다.
"기분 좋을거야, 분명."
그는 양 팔을 스티브의 어깨에 두르며 하반신을 슬슬 앞 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묵직한 중심끼리 맞닿자 기대에 부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스티브 로저스는 지나치게 커져 버렸다. 그의 손과 발, 어깨, 그리고 하반신까지 이젠 버키 반즈가 온 몸으로 달려 들어도 휘청거리지 조차 않았다. 버키는 조르듯이 엉덩이를 조금 더 흔들면서 스티브와 이마를 마주대었다. 스티브의 눈에 약간의 망설임이 비춰졌지만 그보다 더 큰 욕망이 엿보였고, 버키는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에 금방이라도 싸버릴 것처럼 꼬리뼈가 얼얼하게 당기는 것을 느꼈다. 스티브는 그의 큰 손들로 버키의 골반을 잡았다. 거의 골반 전체가 다 잡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소름돋는 흥분감이었다. 버키는 웃음기 띈 눈을 느리게 깜박이면서 스티브의 군모를 벗겼다. 그리고 그걸 제 머리 위에 비뚜름하게 썼다.
"나랑 하자. 스티브."
"버키..."
스티브가 신음하는 듯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버키는 몇 번이고 그 입술에 가볍게 스치듯이 입을 맞췄다. 그리곤 한 손을 내려 스티브의 반 쯤 단단해진 물건을 천 너머로 문질렀다. 그는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처음이지? 나도 처음이야."
스티브가 초조하게 웃었다. "거짓말."
"내 뒤는 처음이야."
버키는 스티브의 눈이 푸르게 타는 걸 보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스티브에게 거칠게 입 맞췄다. 그에 호응하는 남자의 입술이 벌어지고, 큰 손들이 그의 엉덩이를 세게 쥐어왔다. 버키는 억눌린 신음을 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눈 앞에서 스파크가 튀겼다. 정신적 쾌감이 너무나도 커서 몸이 먼저 타버릴 것만 같았다. 변해버린 스티브는 더 이상 그가 무엇으로도 구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이 버키 반즈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보물함 속에 몰래 숨겨 두었던 인형이 길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누구나 그를 줏어갈 수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그런 기분. 버키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문란한 표정을 지으며 스티브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철벽같은 남자를 조금이라도 더 흔들고 싶었다. 그가 자신만 쳐다보는 시선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