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럼로우
사랑하는 나의 무기에게
의사는 그의 앞에 온갖 사진들을 주르륵 펼쳐 놓았다.
"굉장히 예민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조심스럽게 고르려고 노력하겠소. 이해해 주시오. 좋은 소식은 당신의 상태가 꽤 안정적이라는 거요. 호르몬 수치는 여전히 변화가 없기 때문에 조금 더 강한 약을 처방해야 하겠지만, 그 외에 다른 신체적 기능은 모두 정상적이요. 고환 아래 쪽과 성기 윗쪽에 위치한 두 군데의 봉합 부분 역시 감쪽같더군. 시술을 한 자가 누가 되었던 간에 뛰어난 의학 기술을 사용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오. 하지만 고통은 한동안 더 느끼게 될 거요. 특히 매 달 월경 주기가 찾아올 때엔 더 심해질지도 모르고. 자궁과 나팔관 등 착상된 부속 기관은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종류처럼 보이지만 생식기의 부재로 인해 정상적인 월경을 겪게 될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고통이 올 거란 건 배제할 수 없는 예측이지. 여기 보이시오? 이 낭종과 같이 생긴 것이 자네의 몸 속에 있는 여성 기관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요. 만약 실제로, 단지 가정일 뿐이지만, 이 자궁에 태아가 들어선다고 해도 문제 없이 클 수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아마 일상 생활을 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하오."
럼로우는 자신의 처치가 참으로 병신같이 느껴졌다. 그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불손한 태도로 의사를 쳐다 보았다.
"그래서, 이게 지금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자네의 몸이 건강하다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소? 이건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도 모르는 시술임이 분명하오. 내 생전 이런 건 듣도보도 못했으니."
"좋은 소식이 이 정도면 안 좋은 소식은 정말 끝내주겠군."
"그건... 당장으로선 자궁 적출식이 불가능 하다는 거요. 자네의 자궁으로부터 떼어낸 세포 조직으로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있으나 어떤 방법이 가장 안전한지 판정을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오. 말했다 시피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보니 임상 실험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 내 몸을 당신네들 실험용으로 들쑤실 수 있도록 허락하진 않을 겁니다. 이미 충분히 당했으니까."
"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염려 마시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조금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럼로우는 제 앞의 사진들을 두 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쉴드에서 그의 상태에 대해 분석하는 것에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들이 하이드라의 기술임을 알아채거나 할 일은 없기를 바래야겠지만, 한 편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럼로우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어찌됐던 그는 강제로 시술을 당한 상태라 알려져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쉴드가 그의 자궁을 적출해내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곤란해질 것이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진 이 자궁을 잃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쉴드의 의료 기술로 방법을 알아내는 데에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를 노릇이다. 럼로우는 뱃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초조함을 느꼈다.
하이드라의 요원들은 이미 쉴드 내에 많은 수가 잠입해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자도, 모르고 있는 자도 있었으며 럼로우는 그들 모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단 걸 느꼈다. 그가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해내는지에 따라 그의 목숨이 보장되거나 혹은 아니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만약 그가 로저스의 아이를 갖는 데에 실패한다면, 혹은 시간이 지체된다면, 브록 럼로우는 이 임무에서 삭제당하고 다른 자가 그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삭제당한다는 건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자살을 권장할 것이다. 그리고 힘 없는 충복인 럼로우로서는 그 권장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면 죽어 마땅했다. 럼로우는 자신의 패드를 꺼냈다. 그는 엄지로 스티브 로저스의 이름 옆 통화 버튼 위를 한참 서성이다가, 머리를 거칠게 흐트러트리며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트라이스켈리온으로 향했다.
"어, 대장님."
대원들이 주로 있는 훈련시설 부근으로 가니 역시나 그를 알아보는 익숙한 얼굴이 몇 있었다. 럼로우는 손을 들어보이며 씩 웃었다. 대원들은 그에게 다가와 몸은 괜찮냐는 둥 몇 가지 질문을 해 대었다. 물론 개중에는 럼로우 자신과 같은 하이드라의 요원들 역시 있었기 때문에 럼로우는 내심 그 얼굴이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다. 연기인 건 알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그는 하나같이 복장을 차려 입은 대원들을 보고 자신이 입은 옷에 조금 의식했다. 평범한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그들의 틈에 있자니 영 어색하다.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쉴드의 복장에 적응된 건지 싶었다.
어쩐 일로 온 거냐 묻는 대원들에게 그는 너네들이 잘 하고 있는지 영 걱정이 되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말했다. 사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던 건 맞는 말이었지만, 그건 지울 수 없는 초조함 때문이었다. 혼자 남는 건 자꾸만 그의 뱃속에 담긴 것을 생각나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는 자궁이건 빌어먹을 나팔관이건 하나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건 상상만으로도 그를 약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가 속해 있던 수컷들 가득한 환경에서 떨어져 나와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은 그 느낌을 더욱 가증시킬 뿐이었다. 게다가 트라이스켈리온에는 그가 만나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럼로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가 생각하기 무섭게 스티브 로저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어떤 여성 요원 한 명과 서류를 주고 받으며 낮게 말을 주고 받다가 럼로우를 발견하더니 멈춰섰다. 눈이 마주치자 스티브 로저스는 그가 럼로우라는 걸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파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새삼 참 잘났다 싶었다. 그러더니 로저스는 옆의 요원에게 뭐라 말을 해 돌려 보내더니 럼로우에게 걸어왔다. 럼로우는 억지로 웃었다.
"캡틴. 오랜만..."
"잠깐 얘기 좀 할까."
질문이 아닌 명령이었다. 로저스는 한 손으로 그의 팔꿈치 위쪽을 잡더니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동작으로 끌었다. 럼로우는 영문을 모름에도 딸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 대원들은 그들이 뭔가 할 말이 있나보다 예상하곤 곧 뿔뿔이 흩어졌다. 로저스는 그를 창가 쪽 아무도 없는 곳까지 데려 오더니 주변을 슥 살피고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집에서 쉬지 않고 뭐 하는 건가?"
이번엔 럼로우가 멍청히 눈을 껌벅일 차례였다. "예?"
"아직 요양 중이어야 하잖나.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 하더라고요." 럼로우는 로저스의 손을 제 팔에서 떼어냈다. "캡, 전 이제 멀쩡합니다. 충분히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저스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네."
럼로우는 그런 스티브 로저스의 얼굴을 주시했다. 모로 기울인 남자의 시선에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단순한 불편함은 아니었다. 머뭇거림. 씁쓸함. 못마땅함. 그런 것이 엿보였다. 이전 로저스로부터는 한 번도 볼 수 없던 얼굴이다. 저걸 뭐라 불러야 하나. 럼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문득 물었다.
"제가 이렇게 되서 꺼려지십니까?"
"뭐? 아니라네."
로저스는 되레 질문했던 럼로우가 놀랄 정도로 당황했다. 거의 화를 내는 듯이 당황하는 남자를 보며 럼로우는 잘못 짚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남자의 몸에 여성의 기관이 달린다는 건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비정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럼로우 그 자신 역시 본인이 이런 꼴을 당하기 직전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캡틴 아메리카가 아무리 자상하고 이해심 넘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럼로우에게 일어난 변화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건 이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럼로우 그 자신 역시 제 몸이 역겨웠으니 다른 사람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안 되었다. 로저스는 말을 고르려는 것처럼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걱정되서 그런 거였어. 오해하게 했다면 미안하네."
럼로우는 비식 웃었다. "미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더 걱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 걱정 받는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알았네. 숙지하지."
"음식도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그에 로저스는 답지 않게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변명처럼 말했다. "자네라면 또 제대로 먹지 않을 거 같아서."
하여간 정 많은 남자다. 아니면 단순히 오지랖이 넓은 거던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으려나. 럼로우는 짐작해보려다 관두고 어깨에서 조금 힘을 풀었다.
"정 걱정되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쇼."
"뭐든지."
뭐든지, 라고 말하는 스티브 로저스는 쓸데없이 진중해서 럼로우는 저도 모르게 제 입안 살을 깨물었다. 정말 남자라면 별을 따다 달래도 따다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거겠지, 하고 저도 모르게 생각한다. 럼로우는 살갗에 이는 자잘한 소름을 무시하며 씩 웃었다.
"간만에 대련 상대 좀 부탁드립니다."
*
양 손에 붕대를 감는 스티브 로저스는 누가 봐도 흠 하나 없었다. 그가 입은 흰 색 와이프비터가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돋은 상체 근육의 굴곡이 그린 것만 같았다. 허리와 골반은 꽉 조여있고 아래로 늘씬하게 뻗은 양 다리는 길고 탄탄하다. 둔부는 심지어 같은 남자 놈들마저 끈적한 눈빛으로 쳐다볼 만큼 보기 좋은 모양새였다. 얼굴은 두 말 할것도 없었다. 여느 여자가 봐도 그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지게 만들 법한 사람이었다. 럼로우는 만약 자신이 여자였다면 이 임무를 좀 더 달갑게 수행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상상했지만 곧 관두었다. 지금보다 더 계집애같은 생각만 한다 해서 도움될 거 하나 없었다. 그는 대련용 매트 위로 걸어오는 스티브 로저스에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양 손을 가볍게 털며 럼로우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나?"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살살 해주십쇼."
로저스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더니 자세를 잡았다. 럼로우 역시 양 주먹을 쥐고 그에 마주섰다. 긴장감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드레날린이 치솟았다.
바로 이 감각이었다. 브록 럼로우는 이 기분을 그리워했다. 긴장때문에 기분이 고조되고 흥분이 치솟는 것 말이다. 그건 남자로서의 본능적인 정복욕과 파괴심이 섞인 감각이다. 몸 속에 자궁을 단 채 호르몬제를 먹는 건, 그 누구보다도 마초스럽다 자신할 수 있던 럼로우에게 있어선 끔찍한 일이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잃어가는 기분말이다. 전투 때에 몰아치는 가학심을 동반한 흥분은 그로 하여금 시술을 받기 이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럼로우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 올려 울었고, 로저스는 그걸 도발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눈썹을 꿈틀했다. 그들은 약속한 것처럼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몇 수가 오갔다. 그들은 이미 수도 없이 서로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이고 또 안정적으로 대련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잇었다. 하지만 럼로우는 로저스가 그의 안면과 흉부의 상체 위쪽만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저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럼로우의 배와 하반신을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에 배알이 뒤틀렸다. 럼로우는 이를 악물며 그의 앞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의 상체만을 공격하느라 빈 틈이 생겨버린 남자의 명치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퍽, 소리가 울리고 로저스는 크윽 신음을 내며 조금 비틀거렸다. 남자는 그에게 한 방 먹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은 주먹이었지만 로저스는 슈퍼 솔저였으니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테다. 럼로우는 남자의 코 앞에서 이죽였다.
"살살 하란다고 너무 봐주시는데요."
로저스는 웃는 듯 애매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더니 온 몸으로 육박해 왔다. 조금 전보다 확실히 달라진 움직임에 럼로우는 그걸 막으며 어금니를 악물어야 했다. 결국 얼굴을 한 방 맞았다. 하지만 이 편이 봐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훨씬 나았다. 그는 자신에게 연거푸 가차없이 내질러지는 주먹을 팔을 들어올려 막다가 남자가 다시 주먹질을 하는 순간 한 쪽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그리곤 다른 손으로 로저스의 멱살을 잡아 몸을 돌리며 엎어쳤다. 그 때부터 단순한 킥복싱 수준에서 상황 봐주지 않는 육탄전으로 돌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로저스는 땅에 몸이 닿는 순간 럼로우의 다리를 잡아 챘다. 그로 인해 바닥에 엎드리듯 엎어진 럼로우의 위로 올라타려는 로저스의 상체를 돌려 찼으며, 쓰러진 그의 위로 팔꿈치를 찍었다. 로저스는 가까스로 그것을 피했다.
이렇게 나오니 이제 꽤나 진심이 된 모양이었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들은 한동안 개처럼 싸웠다. 럼로우는 그가 갈아입은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가 땀으로 질척하게 젖어든 걸 느꼈다. 로저스 역시 상태는 비슷했다. 가까이서 몸이 부딪힐 때마다 땀방울이 튀기고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남자의 푸른 눈은 이제 그에게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엔 참하기만 하던 사람이 이렇게 먹이 노리는 맹수같은 모습을 보일 때면 럼로우는 기묘하게도 더 흥분하곤 했다. 한없이 곧기만 한 사람에게서 일말의 본성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그 때 로저스가 달려들었고 럼로우는 그를 막았지만 힘에 못이겨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윽..."
그는 남자의 두꺼운 팔뚝이 제 목덜미를 짓누르는 통에 신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다리를 움직이려 했으나 남자의 양 허벅지가 철근처럼 내리누르고 있어 불가능했다. 로저스는 제 아래에 깔린 럼로우를 내려다보며 헐떡거렸다.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슬슬 항복하게나."
그 말에 속에서 승부욕이 울컥 올라왔다. 약간의 짖궂은 기분 또한 마찬가지다. 럼로우는 짓눌린 하반신을 간신히 비틀어냈다. 그러자 꽤 가까이 맞붙어있던 로저스의 아랫도리가 그의 것과 문대지듯 스쳤다. 노골적이란 게 뻔할 정도로 정확히 맞닿았다.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반 쯤 단단해진 것이 천 너머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로저스 역시 느꼈을 것이다. 럼로우야 그것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스티브 로저스는 펄쩍 뛸 정도였다. 그는 숨까지 들이쉬며 하반신을 뒤로 빼려고 했고 럼로우는 그 틈에 몸을 뒤집었다. 다음 순간 그들의 위치는 뒤바껴 있었다. 럼로우는 제 팔로 로저스의 목을 꾹 누르며 땀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로저스는 조금 켁켁거리다가 눈썹을 꺾어 그를 못마땅한 듯이 올려다보았다.
"비겁하네, 럼로우."
"싸움에서 비겁하고 말고가 어딨습니까? 슈퍼 솔저를 이기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렇게 말하는데 다시 한 번 하체가 스쳤다. 이번엔 럼로우가 그의 골반 위에 올라탔기에 벌어진 일이다. 로저스는 움찔했지만 조금 전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럼로우는 남자의 푸른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하반신을 조금 더 아래로 꾹 누르다가, 그의 몸 위에서 일어섰다. 수건을 줏어 목을 닦는데 뒤에서 로저스 역시 따라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로저스가 그를 불렀다.
"럼로우."
남자의 목소리는 걸걸했다. 럼로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반칙을 썼으니 비긴 걸로 하죠. 전 먼저 씻으러 가봐야 겠습니다."
"왜...?"
그는 수건을 어깨에 걸쳤다. "서버린 것 좀 풀어주려고요."
그 말에 로저스는 완전히 닥쳤다. 럼로우는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샤워실까지 들어왔고 그 동안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없는 샤워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락커에 쾅 소리 날 정더로 등을 기대며 재빨리 바지춤을 풀어 내렸다. 이미 완전히 발기한 성기는 아랫배에 바싹 붙을 정도로 일어선 채 땀과 프리컴으로 젖어 있었다. 럼로우는 제 떨리는 손으로 성기를 감싸 쥐었다. 앓는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는 눈을 질끈 내려감으면서 성기를 세게 흔들었다. 절정에 닿는 것은 금방이었다. 엄청난 후폭풍에 럼로우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제 다른 쪽 손목을 씹어야 했다. 절정의 여운에 골반이 절로 떨리고, 흘러 내린 정액으로 둔부 사이의 골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였다.
숨이 천천히 가라앉자 럼로우는 욕설을 씹어 뱉으며 제 뒷통수를 락커에 한 번 쿵 소리나게 박았다.
왜 이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