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고 짧고 존못이라 죄송합니다 야히로님 ㅠㅠ 보답을 드리고 싶었는데 엉엉..
할뱃 리퀘입니다 ㅠㅠ 늘 감사하고 연성 잘 보고있어요 존잘님!
고담에 여름이 찾아왔다. 매년 그러하듯이 기온은 한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이번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고 잠시간만이라도 밖에 서 있다가는 일사병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저희가 스페인같은 나라마냥 시에스타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름 진지하게 토론하곤 했다. 그 정도로 더웠다. 회사원들에게는 특히나 고역이었다. 양복 차림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그들에게는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지옥의 수라도로 걸어 들어가는 거나 다름 없는 행위였다. 아이스크림과 선풍기, 에어컨, 심지어 부채마저 불티나게 팔렸고 기온이 가장 고조를 보이는 오후에는 도로에서 사람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비정상적인 날씨에 대해 티비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고 일사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으나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는 듯 했다.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들만 해도 매일 수 명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름의 바로 중간 지점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뙤악볕 아래에 늘어진 오징어처럼 흐늘거렸다. 마치 아포칼립스를 맞는 듯 했다. 히어로들은 어쩌면 지구의 위기가 빌런들 때문이 아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가정 사실을 세우고 있었다. 날이 지독하게 뜨거워서인지 얼마 전부터 빌런이란 빌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잠잠했다. 빌런들마저 모두 피서를 간 게 아니냐고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히어로들은 이제 더위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뛰어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부는 정말로 그러고 있었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걸 돕는다던지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모든 사람들 태양의 공격으로부터 구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슈퍼맨이 자신의 입김으로 공기의 온도를 낮추고 원더우먼이 공사 현장을 돕고 플래쉬가 햇빛 가리개 따위를 나누어주기 위해 뛰어다닐 때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배트맨이었다. 그는 더위의 습격(그들은 이번 여름을 그렇게 불렀다. 맞서 싸우기는 마찬가지였으니)에서 모두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시민들을 돕고 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첫 째로 그는 그 어떤 슈퍼파워도 갖고 있지 않았다. 둘 째로 그의 실력은 철저히 닌자와 같은 전투나 은신 따위를 위해 단련 된 것이었지 그의 도구들을 사용해 더위를 막는 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는 자신의 배터랭을 들어보며 한숨쉬었다), 셋 째로 그는 검은 복장을 착용한다. 모두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배트맨은 자신이 이번처럼 쓸모 없어 본 적이 있나 생각해보다 관두었다. 그는 결국 모두가 밖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티비에 얼굴을 비추고 있을 때에 케이브 안에서 슈퍼컴퓨터를 두들겼다. 카울은 이미 벗은지 오래다. 배트맨 수트 역시 모조리 벗어던진 그가 티셔츠에 바지 차림으로 모니터를 들여다 보던 와중 알프레드가 얼음이 한 가득 담긴 차가운 주스와 계절 과일을 갖고 들어왔다. 알프레드는 평상시와 같은 집사 차림이었고 브루스는 그 복장에 혀를 내두르며 옷 정도는 갈아입어도 된다 말했다. 알프레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브루스는 그에게 말해 웨인 사로 하여금 각 가정에 에어컨을 놔주는 이벤트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알프레드는 그런 이벤트를 하기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서른 두 가지의 필요 절차와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브루스는 관두기로 했다.
모니터를 확인하며 뭔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던 브루스는 침입자 경보가 울리는 것에 누군지 확인했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방문 마저 침입처럼 하는 상대에 대해 이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모니터에서 빨리 열라고 더워 죽겠다며 몸부림을 치는 남자를 그대로 저 곳에 방치해 둘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기엔 소란스러운 녀석이라 제 손해가 더 많다. 결국 허가를 내리자 초록색 수트를 입은 그린랜턴, 할 조던이 케이브 안으로 들어오며 한결 편한 표정으로 양 팔을 과장되게 벌려 보았다. 아 살겠네 살겠어.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영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았어. 이렇게. 할은 제 머리 위로 손가락을 휘저었다. 브루스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무시하곤 수박을 입 안에 넣었다. 모니터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이냐 라고 묻자 어느새 그에게 다가온 할 조던이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다들 밖에서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혼자 안에서 편하게 과일이나 먹으며 쉬고 있는 히어로 얼굴이나 보러 왔지. 할이 얼굴 옆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말하자 브루스가 손으로 그 얼굴을 턱하니 밀었다. 땀 냄새 나니까 떨어져. 그 말에 할이 금새 발끈했다. 거짓말 하지 마, 태양 근처로 가도 멀쩡한 수트거든 이거? 하지만 브루스는 단호했다. 더우니까 가까이 붙지 마.
너도 더위를 타긴 하는구나? 할은 제 몸에서 수트를 벗겨내곤 평소의 복장으로 돌아왔다. 셔츠에 바지라는 무난한 차림새라 맨날 그가 똑같은 옷만 입는 걸 보던 브루스는 한 번 흘끗거렸으나 그게 전부였다. 할은 그가 막 먹으려던 수박을 뺏어서 자신의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밖에 정말 장난 아니야. 화산 지대 같다니까? 숨도 못 쉬겠어... 이야 이거 시원한데. 그렇게 말하며 연신 과일을 줏어먹는 할을 보던 브루스는 이제 포기했다. 생긴 건 멀쩡해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가끔 본인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했으나 브루스는 몰랐다). 딱히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앉아만 있는 것은 아냐. 브루스가 말하자 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충 짐작은 했어. 어차피 민간인인 네가 밖에 나와서 무리라도 하다가 픽 쓰러지면 곤란한 건 우리이기도 하니까.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노려보는 브루스에 할은 킬킬 웃곤 차가운 주스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신난 얼굴로 그걸 단번에 반이나 비웠다. 벌컥벌컥 들이키고 거하게 숨을 내쉰 할은 이제 저를 아예 무시하고 있는 브루스에게 그 컵을 내밀었다. 이거 맛있는데 왜 안 먹어? 그에 브루스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차가운 건 잘 못 먹는다.
브루스가 차가운 걸 못 먹던가? 잠시 생각하던 할은 재차 그에게 컵을 건넸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먹어보라니까. 그의 밑도 끝도 없는 강요에 결국 진 쪽은 브루스였다. 그는 할 조던이 자신을 더 이상 방해하지 않도록 그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얼음을 어찌나 많이 넣었는지 차갑다 못해 입 안이 시릴 정도라 브루스는 눈살을 찌푸렸고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너나 마셔, 라고 말하는 브루스를 보며 할은 우와 진짜 못먹는구나 라고 복창 터지는 소리만 지껄였다. 대체 먹을 수 있다면 애초에 못 먹는다는 말을 왜 했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할은 잠시 생각하다 주스의 얼음 중 하나를 입 안에 머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브루스의 목을 뒤로 가볍게 젖히게 했다. 익숙한 손길에 브루스의 머리는 자연스레 뒤로 조금 기울어지며 턱이 코보다 조금 더 높게 올라갔다. 브루스는 할이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싼 채 입 맞추는 것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할이 자신의 입 안에 있던 얼음을 브루스의 입으로 넘겨주려 한 것이다. 으읍..,! 당황한 신음을 흘리며 브루스는 할의 어깨를 떠밀었다. 하지만 할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되려 그들의 입술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얼음을 오가게 했다. 브루스는 그 이 시린 감각에 자꾸만 밀어내려 했지만 할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더욱 깊이 입맞추자 얼음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브루스는 미간을 잔뜩 주름을 잡았다. 잠시 후 얼음이 다 녹자 몸을 떨어트린 할은 브루스에게 씩 웃어보였다. 차가운 것 먹는거, 좀 더 연습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