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씨가 따스했다. 봄의 끝물을 맞아 꽃은 싱그럽게 피고 푸른 잔디는 발목을 덮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랐다. 나비들이 나풀거리며 꽃마다 옮겨 다니는 것을 크립토가 발랄하게 뒤쫓는다. 코너 켄트는 그 따사로운 광경을 보며 잔디밭 위에 누워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크립토가 방문자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짖었다. 슈퍼맨은 그의 클락 켄트로서의 모습으로 들어오며 그에게 달려오는 크립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코너와 시선이 마주치자 짧은 인사를 보냈다. 코너 역시 그에게 마주 인사했다. 슈퍼보이가 코너 켄트라는 이름을 받게 된 지도 삼 개월 쯤이 되었는데 그와 슈퍼맨 사이의 간격은 아직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것도 그러려니와 클락이나 코너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의 관계를 개선시킬 만한 시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안에 계시니 하고 묻는 클락의 질문에 코너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클락은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코너를 돌아 보았다. 그가 소리내어 묻지는 않지만 코너는 대강 눈치를 채고 말한다. 곧 로빈을 만나러 갈거에요. 늦을지도 몰라요. 그 말에 클락은 고개를 끄덕이고 약간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중에 보자며 클락은 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따라 크립토가 들어갔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코너는 작게 소리없는 한숨을 내쉰다. 잠시 후 그는 빠른 속도로 스몰빌을 벗어나고 있었다.
코너 켄트는 그 누구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날아 익숙하게 웨인 저에 도착했다. 스몰빌의 풍경과 고담시의 풍경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코너는 고담시가 전부 싫지만은 않았다. 그는 웅장하면서도 음울한 웨인 저의 문 앞에 내려 서서 그를 향하는 카메라를 보고 손을 들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빈, 팀 드레이크가 그의 방이 위치한 창문을 통해 얼굴을 내밀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팀은 막 나갈 채비를 하던 중이었는지 옷을 껴입으며 코너를 보았다. 코너는 창문을 가뿐하게 넘어 들어와 팀의 침대에 걸터 앉는다. 그냥 심심해서. 라고 말하는 코너의 앞에 다가간 팀이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여상스럽게 말한다. 혹시 슈퍼맨을 만나기라도 한거야? 그는 대답없는 코너를 보다가 가볍게 혀를 찬다. 슈퍼맨과 슈퍼보이는 서로 알고 지낸지 꽤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슈퍼맨의 입장도 이해하는 건 사실이지만 슈퍼보이의 친구인 입장으로서 팀이 그 친우의 허전해보이는 얼굴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코너는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감정 면에 있어서는 특히 그랬다. 그래서 코너가 슈퍼맨을 마주할 때 느끼는 기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듯이 보였지만 팀은 어쩐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렴풋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팀은 코너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늘 말하는 거긴 하지만 그를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 코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코너가 아예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슈퍼맨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버지를 보는 시선, 형을 보는 시선, 영웅을 보는 시선. 그 어떤 것도 슈퍼맨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다.
팀은 코너에게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 도로 입을 다물고 한숨과 함께 그의 어깨를 툭 툭 두드리며 일어났다. 지금 나가려던 참이라 다녀와서 계속 이야기해야겠다. 배트맨을 도와 뭘 좀 조사하는 중이거든. 팀은 그를 올려다보는 코너의 시선에 같이 갈테냐 물었지만 코너는 고개를 젓고 여기서 기다리겠다 했다. 팀은 고개를 끄덕이곤 브루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창문을 훌쩍 넘어 나갔다. 코너는 팀이 멀어지다가 곧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까지 보고 그가 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난다.
웨인 저는 거대한 궁전 같기도 했고 미로 같기도 했다. 넓은 응접실만 해도 여러개였고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방도 많다. 하지만 코너는 익숙하게 그의 길을 찾는다. 어둔 빛으로 희게 밝혀진 복도를 지나 저택의 깊은 안쪽으로 향한다. 팀 드레이크는 그의 친우가 이 곳으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코너는 곧 그의 눈 앞에 펼쳐진 배트 케이브의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축축하고 질척하고 그 모든 음습한 곳에 원초적인 공포의 조가리를 새겨 넣은 그만의 세계였다. 그 주인은 등을 보인 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검은 배트맨의 복장이 아닌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성인 남자의 등은 단단하고 곧아 그의 성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코너는 주저없이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브루스. 그가 손을 뻗어 남자의 허리를 끌어 안고 그 목에 입술을 묻자 그제서야 남자는 움찔거리며 고개를 틀었다. 코너는 눈을 내려 감으며 그의 메마른 향을 가득 들이 마셨다. 그 내음에 마음이 차분하게 뛰었다.
그린랜턴이었던 할 조던이 죽은지 반 년이 되어간다 .
서로를 안다는 것. 그건 위험과 동시에 신뢰를 불러온다. 그린랜턴이 사라진 그 믿을 수 없는 사건은 리거들을 포함한 다른 몇 히어로들이 그들의 정체를 서로에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전까지 리그는 완전하지 못했다. 그들은 동료였으나 실상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는 못했던 불완전한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먼저 가면을 벗은 건 배트맨, 브루스 웨인이었다.
코너는 그 때 당시 브루스 웨인의 모습을 기억한다. 희게 눈발이 내리는 와중 그 한 가운에 무릎 꿇은 남자는 그의 주변에 널린 온갖 너저분한 괴생물의 사체와 고약한 냄새에 둘러쌓여 있었으나 마치 혼자만 동떨어진 듯 했다. 벗겨진 검은 카울 안에서 드러난 남자다운 얼굴은 창백했고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눈을 가린다. 모체가 죽은 후 힘을 잃은 괴생물들을 진압하던 히어로들의 사이에서 슈퍼보이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남자의 고독을 본다. 남자는 마치 흰 바탕에 찍힌 검은 점과 같다. 그만이 유일했고 그 곁에는 누구도 다가갈 수 없었다. 지독하게 외로운 그림이다. 그 메마른 고통. 눈부시게 새하얀 외로움. 적막과 고요. 그리고 상실. 그 짧은 찰나에 슈퍼보이는 남자의 모습에서 감히 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아마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단편적인 남자의 모습에서 그에게 끌림을 느낀 것은.
브루스 웨인은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침대에 누운 코너 켄트는 느릿하게 일어나 앉는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은 어느 새 길어 목덜미에 닿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머리칼의 밑으로 이어진 목과 남자다운 등, 그 위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가 보인다. 아직 채 마르지 못한 땀이 등에 흥건하다. 그걸 보니 코너는 주책맞게도 다시금 하반신에 열이 모이는 것을 느낀다. 브루스 웨인은 섹스 후에 침대 위에서 오래 남아있는 경우가 없었다. 코너는 이 세상의 많은 것에 대해 아직 무지했으나 남자의 행동이 그다지 따듯한 종류는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그건 굉장히 그답다고 생각했다. 배트맨은 항상 그렇다. 그는 빈틈이 없고 견고했으며 치명적이다. 그는 코너 켄트와 관계했지만 마음은 주지 않는다. 그리고 코너 역시 그 자신의 미숙함이 남자의 깊은 내면까지 충분히 만족시킬수 없다는 사실은, 비록 저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실이긴 하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쉽사리 남자를 멀리하기엔 코너는 그들의 공통된 외로움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넓은 욕조 안에 앉아 팔을 뒤로 젖힌 채 기대어 있던 남자는 코너가 욕실 안으로 들어오자 흘끔 시선을 주었지만 그 뿐이었다. 코너는 브루스 웨인이 저의 알몸을 보고도 저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게 된 것이 새삼스럽게도 신기하다. 따듯한 물이 가득한 욕조는 성인 여럿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코너가 들어오자 물이 넘실거리며 넘쳤고 그것에 브루스는 표정을 조금 찌푸린다. 브루스 웨인의 남자답게 잘 생긴 얼굴이 사납게 인상을 쓰는 모습은 예전의 코너 켄트가 마주했다면 지레 움츠러들법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되려 그 표정이 좋았다. 남자는 거의 항상 서늘하게 가라앉은 표정 없는 얼굴을 할 때가 많아서 코너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의 얼굴에 약간의 변화라도 생긴다면 지레 들떴다. 코너는 물을 조금 첨벙거리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팀이 당신과 함께 조사중인 일이 있다고 하던데.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꺼넨 거지만 그의 말에 브루스는 낮게 한숨처럼 말한다. 쓸데 없는 말을 했군. 그러며 남자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피곤한듯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마라는 투가 확연하다. 남자가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과 별개로 그는 저를 항상, 적어도 침대 밖에서는, 어린애처럼 다뤘기 때문에 코너는 그 또래의 누구나 그러하듯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곧 팀이 돌아올거다. 라고 말하는 남자는 코너에게 그만 가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코너는 일어서는 것 대신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나랑 자는 거죠? 그건 항상 코너 켄트의 머리속을 무의식중에 떠도는 질문이었다. 배트맨이 뭐가 아쉬워 슈퍼보이와 몸을 섞는지, 그가 이런 관계에서 무엇을 얻는지 그런 식상한 궁금증이다. 그리고 나름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일테다. 브루스는 저보다 한참 어린 상대를 바라보다 픽 웃었다. 네가 뭐라도 되었다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 남자의 단호한 말에 코너 켄트는 안구 뒤에서 불이 튀는 걸 느낀다. 이런 남자에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간혹 저를 대하는 모습은 억눌려있던 사나운 본성을 건드리곤 한다.
코너는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하지만 행여 저의 힘 때문에 그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브루스의 팔을 잡아 끌어 당겼다. 갑작스러운 몸짓에 나른하게 눈을 내려감고 있던 브루스가 몸에 힘을 주며 사나운 눈으로 코너를 돌아보았으나 코너는 신경쓰지 않는다. 남자의 뼈가 단단한 양 골반을 잡아 제 위로 서서히 앉힌다. 엉덩이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묵직한 것에 놀랐는지 남자는 헉 숨을 들이쉬며 코너의 팔목을 부러트릴 듯 잡았지만 그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아까부터 바짝 서있던 성기가 좁은 내벽 안으로 뿌리 끝까지 밀려 들어가자 코너는 만족스럽게 숨을 내쉬며 브루스의 뒷목에 이마를 문질렀다. 성인 남자의 몸이 제 품안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다. 남자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코너는 그의 상체를 빈틈없이 껴안으며 등에 입맞췄다. 브루스 당신 안으로 들어갈 때가 제일 좋아요. 그렇게 속삭이며 허리를 치대니 남자가 진저리를 쳤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박아줘야 좋아하는지 전부 당신이 알려 줬잖아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저리는 말에 남자가 소름이 돋는지 입을 닥치랬지만 코너는 되려 손을 아래로 내려 남자의 성기를 쥐었다. 팀이 우리가 이러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요? 당신 친구 슈퍼맨은? 브루스 웨인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코너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남자의 신음소리와 물이 철벅이는 소리가 욕실 안에서 요란했다. 도중에 브루스는 자세가 힘에 겨운지 코너를 마주보도록 몸을 돌려 그의 목에 매달렸다.
얼마 후 남자의 안을 깊게 찔러 올리며 사정한 코너가 그에게 입맞추려 했을 때 남자의 주먹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언제 제 위에서 흔들리며 신음했냐는 듯 남자의 서늘한 푸른 눈이 코너를 노려보는 것에 코너는 혀를 내두르지만 동시에 가슴 안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슬픔인지 흥분인지는 애매하다. 그래, 이것이 저가 좋아하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코너는 웃으며 그에게 키스했다.
남자와의 관계를 시작한지는 거진 석 달이 되어간다. 아마 그가 켄트 가에서 살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배트맨은 그 어떤 히어로와 비교하더라도 여상스러울만치 멀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렇게 생각한건 아마 코너 켄트 뿐만이 아니었을거다. 그는 모든 빛이 드리운 가장 치명적인 어둠이었다. 누구에게도 섞여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고 그 안에서 안주한다. 그의 세계는 거칠고 황량하며 공포로 가득한 어둠이다. 배트맨은 그의 세계이자 곧 그 자신이었고 그건 본인을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다. 밝은 빛으로부터 움츠러든다. 저의 공포를 이겨내 그를 향한 공포를 짓밟는다. 그 누구도 가지 않는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 마치 박쥐처럼 말이다.
그리고 코너 켄트는 그의 모든 어둠을 포용할 수 있었다.
사람의 온기를 모르던 코너 켄트를 브루스 웨인은 능숙하게 이끌었다. 웨인 저의 한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섰던 남자의 외로워 보이던 등에 코너 켄트가 처음으로 손을 뻗은 건 반쯤은 본능적이었고 반쯤은 그가 그렇게 하길 원해서였다.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손을 보던 경계심 가득한 눈을 기억한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저보다 어린 남자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단순히 외로워서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도 좋았다.
코너는 이제 막 세상에 나와 두려움을 몰랐다. 어쩌면 그 무모함이 그를 남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외롭다. 고독하다. 상처받다. 그런 익숙한 단어들에서 그와 저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그의 상처를 핥는 것을 통해 저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 같았다. 동질감이다. 그와의 관계는 아직 감정에 서툰 코너 켄트에게 그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부여한다. 남자는 그를 아프게 만들 수 있었고, 화나게 만들수도 있었으며, 그를 위안하기도 혹은 사소한 기쁨을 느끼게도 만들었다. 그의 피부가 떨리는 것에서 설렘을 느끼고 눈이 차갑게 가라앉을 때면 조바심이 난다.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약한 남자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와 저의 다른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한 감정을 서로의 손으로 달랠 수 있었으면 했다. 사랑을 제외한 전부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어제 늦어서 미안해 콘. 팀 드레이크는 코너를 보자마자 그렇게 사과하며 다가왔다. 조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밤 늦게서야 돌아왔지 뭐야. 그의 말에 코너는 괜찮다 했다. 아마 팀은 그가 자신을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다. 제 보호자와 섹스를 하고 나중엔 지쳐버린 남자가 그를 쫓아내다시피 했다는 걸 듣게 되면 팀 드레이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실 코너는 그들의 관계가 알려진다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되려 그는 간혹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쪽은 남자였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는 것 뿐이었다. 저의 욕심으로 그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임무를 받기 위해 발을 옮겼다. 최근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게 된 히어로들이 몇 있었기 때문에 바빠질 참이었다. 특히 슈퍼보이와 로빈이 그랬다. 로빈은 이번에 받게 될 임무가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과 함께 행동해야 하는 거란 소식을 듣고 들떠있던 와중이었다. 코너는 어찌되든 좋았다. 사실은 슈퍼맨만 아니라면 누구던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로빈은 그들의 앞에 나란히 선 슈퍼맨과 배트맨을 보고 각각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로빈은 저가 늘 그래왔듯 배트맨과 함께 움직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입을 다물었고 그걸 보던 배트맨은 조금 인상을 썼다. 슈퍼맨과 시선이 마주친 슈퍼보이역시 어색한 기분이 되었다. 그들 주변에 다른 리거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네 명에게서 동시에 한숨이 나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약간의 토론 이후에 로빈은 슈퍼맨과 행동하게 되었다. 배트맨과 남게 된 슈퍼보이는 그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본인의 사이드킥이 슈퍼맨과 임무를 처리하게 된 거에 신난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지 혹은 저와 행동하게 된 것이 불만인지 배트맨은 한동안 조용히 모니터만 주시할 뿐이었다. 그는 배트맨의 옆에서 그를 보다 예전 그가 보았던 장면이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가 로빈의 부탁으로 배트맨을 찾아 와치타워에 왔을 때 말이다. 슈퍼보이는 무심코 시선을 내려 배트맨의 손을 보았다. 그때 보았던 배트맨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는 걸 기억한다. 배트맨은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슈퍼보이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돌아 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배트맨의 눈빛에 조금 움츠러들기라도 했겠으나 지금의 코너 켄트는 아니었다. 작년에 임무 때문에 당신을 찾아왔던 것이 생각나서요. 그가 싱겁게 말하자 배트맨은 다시 관심을 끈 듯 무심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임무에 대해서는 한번만 말할테니 잘 들어둬라. 그렇게 말한 배트맨은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을 전부 들은 슈퍼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앞장 서서 걸어가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던 그는, 사실 남자와 함께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한 폐건물의 지하 쪽으로 이동하는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일이 없긴 하지만 배트맨과 슈퍼보이가 일종의 성적인 관계를 갖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으로서 자신의 몸을 슈퍼보이의 앞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거리낌없이 행동하게 되었으나 그는 이전보다 필요 이상으로 말하는 일이 없기도 했다. 코너는 그런 그의 반응이 못마땅하다. 분명 몸은 가까워진 것을 느끼는데 남자는 되려 자신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걸어잠그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듯 훤해서이다. 그들은 눈에 띄는 적들의 공격을 간단하게 제압하며 재빨리 움직였다. 조직의 정보가 들어있는 하드의 본체가 일렬로 늘어선 방으로 들어오자 배트맨은 자신의 기기를 사용해 손을 놀리기 시작했고 슈퍼보이는 그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망을 보았다. 아직까지는 경보도 울리지 않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했다. 슈퍼보이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해킹을 시도하는 남자를 흘끗 본다. 배트맨과 단 둘이서만 함께 행동하는 건 처음이지만 어색하다거나 특별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새 그에게 익숙해진 건가 싶었는데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슈퍼보이는 조용한 밖으로 청각을 집중하곤 문에 등을 기대 서며 팔짱을 꼈다. 그는 배트맨을 낮게 불렀다. 하지만 배트맨이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오기가 생긴 그는 브루스, 라고 불렀고 그제서야 남자의 인상 쓴 얼굴이 그를 돌아본다. 그에게서 사나운 시선을 받을 때마다 어쩐지 기분이 고조된다. 예전에 당신이 말한 거 기억나요?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던 것. 슈퍼보이의 말에 배트맨은 다시 본인이 하던 일로 눈을 돌렸다. 아니, 라고 짧게 대답하는 남자는 아무래도 그 때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은 모양이었지만 슈퍼보이는 계속 말을 잇는다. 그거 슈퍼맨 때문에 한 말이죠?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가 매몰차고 한기가 어릴 정도로 시린 남자라는 건 알고 있지만 간혹가다 보이는 연약함이나 배려심에 차마 나쁜 감정을 갖기가 힘든 것이리라. 하지만 입 안 어딘가가 떫었다. 그 말 때문에 나와 섹스하는 거에요? 슈퍼보이가 조용이 묻자 배트맨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벌떡 일어나서 그를 노려 보았다. 그 이상 말하면 턱을 뽑아버릴거다. 남자가 으르렁거리는 말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보여 슈퍼보이는 침을 삼키지만 제가 한 말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왜 그와 말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오기가 치미는지 모르겠다. 이런 치기 어린 행동에 그가 질리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없지도 않다. 그들이 날선 시선으로 서로를 응시할 때 건물 안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빨간 불과 사이렌이 요란하게 돌아가자 배트맨은 재빨리 자신이 작업하던 도구를 챙겼다.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코너는 배트맨의 앞을 막아 서며 본능적으로 그를 보호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옆에서 불쑥 튀어나가는 배트맨에 뭐라 하기도 전에 남자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건방떨지 마라.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터져 나가듯이 열렸다. 적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건물 안의 불이 모조리 꺼졌다. 완전한 암흑. 그 후는 잠시간의 난장판이다. 슈퍼보이는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가 적을 제압하는 걸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어둠을 그의 무기로 사용하는 배트맨의 방식에 대해서 알고 있었긴 하지만 눈 앞에서 보는 건 또 색다르다. 거침없고 치밀하다. 슈퍼보이는 그를 돕던 와중 적 중의 한명이 총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본다. 위험하다는 신호는 본능이 알려온다. 슈퍼보이가 그것을 향해 달려갈 때 초록색의 빛이 들어오며 무기가 발동되었다. 순식간에 사방이 녹색 빛으로 물들었다. 슈퍼보이는 그에게 쏘여지는 빛의 파동에 주춤 했지만 곧 적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적이 쓰러지자 슈퍼보이는 그 곳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배트맨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는 한 쪽에서 배트맨이 멍청하게 선 것을 보았다.
비상이 걸렸다. 그들이 추적하는 조직은 인저스티스 리그와 관련이 있어보이는 듯 하는 신규 조직으로 그 규모가 단기간 내에 걷잡을 수 없이 방대하게 커졌기에 지하 세력은 물론 법조계나 정계에 까지 그 손이 뻗어있다는 정보였다. 배트맨이 빼내어 온 정보와, 로빈이 슈퍼맨과 함께 임무에 나가 알아낸 정보를 조합해 보니 조직은 그들이 받는 지원으로 세력을 키우고 동시에 인저스티스 리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초록색 빛을 내는 무기. 그건 크립토나이트의 힘을 사용한 무기였다. 아직 개발중인 것인지 슈퍼맨이나 슈퍼보이가 그것에 공격을 받았을 때 아무런 효과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만약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건 정말로 치명적인 무기이자 크립토니안의 약점이 될 것이다. 리거들은 한동안 와치타워에서 그것에 대해 토론했다. 처음 그들이 짐작했던 것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이번 임무에 개입되었던 슈퍼보이와 로빈을 포함한 틴타이탄즈 역시 함께 움직여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슈퍼보이는 당시 배트맨과 함께 조직이 사용한 무기를 대립했다는 이유로 토론에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한 일이라곤 간혹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주시했다. 정보 분석을 마친 배트맨이 브리핑을 이끌어가며 회의를 이끌었고 그 옆에서 심각한 표정의 슈퍼맨이 간혹 거들었다. 슈퍼보이는 그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본다. 배트맨은 평상시와 별 다를 바 없는 그 특유의 모습이다.
브루스 웨인과 할 조던은 평범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 조던이 살아있던 당시 두 남자가 보통 친구라고 부르기 힘든 반강제적인 동료의 입장에 놓여 있었다는 걸 그가 모를리가 없다. 그들이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던 것은 코너 켄트를 포함한 틴타이탄즈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너는 그가 보았던 것들을 기억한다. 떨리던 손. 공허한 표정. 눈 덮인 땅에 무릎꿇은 남자. 창백한 입술. 그리고 녹색의 빛을 보며 제자리에서 못박힌 듯 굳어 버리던.
코너 켄트는 무거운 시선을 가라앉힌다. 그 누구보다 강한 남자가 희미하게 비출 수 밖에 없었던 그 감정은 무엇일까. 그의 반응은 어디에서 파생된 것일까. 단순한 죄책감? 그를 지키기 위해 그린랜턴이 죽어야만 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 아니다, 그건 분명히 그 전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미묘한 감정. 일방적인 표출. 하지만 채 숨길 수 없었을 만큼의 동요. 코너 켄트는 아직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채 알지 못했다. 그에게 아직 그만큼의 많은 감정을 예측해낸다는 것은 불가했다. 어쩌면 아직은 어리고 불완전한 코너 켄트의 기우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 사이에는 단순한 적대감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의 본능적인 신경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끈덕지게 달라붙어 속을 미식거리게 만들었다.
코너는 그것이 그저 무리하게 뇌를 사용한 부작용이라 생각했으나 실상은 일종의 불안한 질투심에 가까웠다.
그 감정이 적대감이건, 죄책감이건, 혹은 그 다른 어떤것이건 브루스 웨인의 시선은 할 조던을 향해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다. 남자는 어린 그가 손을 뻗어온 것에 거리낌없이 모든 몸을 내어 주었지만 단 하나 그의 눈만은 한 번도 코너 켄트를 향한 적이 없었다. 차가운 시선은 늘 먼 곳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 코너 켄트는 화가 났다. 그가 모르는 것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남자에 목표 없는 질투심이 난다. 그리고 불안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과거의 무엇일까봐 여서다.
패스트푸드점 안은 막 학교를 끝난 시간대의 학생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교복과 사복이 섞여 재잘대는 무리들로 이루어진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코너 켄트는 먹을 것을 주문했다. 대충 아무거나 시킨다. 트레이에 담긴 치즈버거 콤보를 들고 자리를 잡고 앉아 먹는 시늉을 하며 그의 친구를 기다렸다. 대각선으로 놓인 건너 테이블에서 자꾸만 그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여학생이 조금 신경에 거슬리지만 그다지 관심은 가지 않기 때문에 무시한다. 눈을 가늘게 뜨기도 하고 어색하게 칠한 빨간 입술을 핥기도 하며 짧은 치마를 입은 다리를 이리저리 꼰다. 하지만 코너 켄트는 심드렁하다. 이전 같으면 지레 당황하거나 저도 모르게 떨리는 시선을 주었을 일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저런 미숙한 유혹으로 그가 흔들일 일은 없었다. 코너는 햄버거를 씹으며 브루스 웨인을 떠올린다. 아아, 남자는 그 오만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그의 모든 것이 선정적인 도발이었다. 그림같은 근육이 잡힌 몸과 탁한 푸른 눈과 쾌락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이 스쳐 지나가자 코너 켄트는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입술을 핥았다. 하지만 곧 그의 어깨를 툭 짚어오는 손에 사념에서 깨어났다. 팀 드레이크는 그의 몫으로 햄버거 세트를 들고 와 코너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는 코너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며 여학생 쪽으로 고개를 까딱여 보았다. 장난 아닌데 콘? 쟤 어때? 코너는 팀의 장난기 다분한 말에 웃음 한 번 짓지도 않고 진지한 얼굴로 여학생을 슥 살피더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끌리지 않는데. 그렇게 말하자 팀이 눈썹을 이상하게 휘었다. 보통 그 또래의 남자애들이라면 저런 모습을 보이는 이성에게 눈길을 줄 법 한데 메타휴먼이라 다른 건가 하고 지레 짐작해버린다. 그리고 코너는 팀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던 상관 없었고 말이다. 팀은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며 물었다. 저번에 그와 임무한 건 어땠어? 코너는 간신히 생각에서 지웠던 배트맨이 다시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조금 한숨을 쉬었고 그걸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팀이 손을 내저었다. 그가 좀 딱딱하고 엄격한 편이긴 하지. 코너는 어깨를 으쓱 했다. 뭐 나쁘지 않았어. 그러는 넌? 팀은 코너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그의 질문에 표정이 조금 들떴다. 내 쪽은 꽤 즐거웠어. 늘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움직이니 색다르기도 했고. 그가 사람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가볍게 윙크하는 것에 코너는 조금 웃었다. 곧 팀은 그가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더니 약간은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사실 콘 네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말이야, 그는 너를 정말로 신경쓰고 있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말이야. 코너는 고개를 들어 팀의 얼굴을 보았다. 팀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코너는 그의 친구가 자신을 꽤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에 고맙기도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팀의 말에 그다지 위안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네 말이 맞을지 몰라도 그는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런 것을 보여주지 않아. 코너가 말하자 팀은 어깨를 조금 늘어트렸다. 그 모습에 코너가 물었다. 왜 시무룩한거야? 팀은 고개를 젓더니 금새 개구진 표정으로 웃었다. 그새 눈치가 많이 늘었는데 콘. 코너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지만 속은 썼다. 눈치를 본다는 거라던지 혹은 속이 쓰다는 감정이라던지 그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다 먹은 후에도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코너 켄트는 고담의 거리를 느리게 걸었다. 고층 건물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에 웨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멈춰서서 그걸 올려다 보던 코너는 계속 걸었다.
확실히 그 일이 있은 후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긴 했어. 팀은 코너가 브루스 웨인에 대해, 그리고 그린랜턴이 사라진 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렇게 말했다. 원래도 그는 조용한 편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고 해야하나. 전혀 말을 걸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지. 물론 그를 이해해. 랜턴이 그를 지키려다 죽었다고 들었으니까 아무리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편이 이상할거야. 코너 켄트는 그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팀의 말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코너 켄트는 어느 새 조용히 남자의 자취를 추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저 어떤 이유에서건 그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