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노나가 파이크와 불륜했다는 설정으로 단문
내 손에는 굳은 살이 가득이었다. 손바닥이고, 손 등이고 할 것 없이. 그건 아마 나를 좀 더 남자답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요소이자 동시에 내가 겁쟁이며 무뢰한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두 개의 단어는 서로 한 문장에 분리하기에는 그 의미에 차이가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두 단어 모두 나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무지하다는 단어 역시 추가해야겠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난 내 손의 굳은 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마치 그게 일종의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외도와 반항이 얼마나 가치있고 뜻 있어 보이는 것인지를 증명하는 증거물인 것 마냥 나는 내 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음 주의 난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머리카락을 쥐어 뜯을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 만큼은 난 나의 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싶었다. 난 문득 화들짝 놀란다. 코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을 손등으로 훔쳤더니 붉은 자국이 번져 있는 걸 보고 그제서야 코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아주 조금 아팠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육체적인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행위로나마 나의 정체성이란 것을 정의할 만큼 난 머저리였으니. 내 발치에 널부러진 사내들을 지나쳐 비틀거리는 걸음을 떼었다. 밤이 까마득했다.
술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걸음은 무거웠다. 여러 명을 상대해야 할 때엔 아무리 내가 주먹질을 잘 한다고 해도 완전히 성한 몸으로 끝내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안만큼은 난 남성성의 상징이 되어 내 속에 억눌려있는 괴물을 표출할 수 있었다. 그래, 내 속에는 괴물이 있었다. 그건 계속해서 나에게 일탈을 권했고 이 행동이 정당 방위라는 것을 속삭였다. 난 마치 아둔한 베르길리우스처럼 그 속삭임에 따른다. 아, 이 상황에서도 비유적 표현을 쓰고 싶어하다니 난 얼마나 지성적으로 남고 싶었던가. 지금의 나는 정말 꼴불견이다. 그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러한 일탈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 나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나를 잘 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정말 몰랐던 것이다. 난 지속적으로 일탈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를 밖으로 내보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니와 심지어 붙잡으려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보여지기 위해 일탈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나 자신을 정당화시킬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일탈하는 것인가.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충동은 그 곳에서 모태한다. 난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생각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지 따위에 대해. 자존심. 자존심. 질질 끌리는 무거운 걸음은 부상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오늘 소각장을 지나칠 때에 한 여자를 만났다. 쓰레기 틈에 섞여 있어 그녀가 있는 지도 몰랐던 나는 갑작스럽게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고함을 질렀을 때 다른 행인들과 마찬가지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에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지라는 단어가 생소할 정도로 모두가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살면서 처음 본 거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 손에 모조리 조각난 신문을 들고 뛰어 나와 눈을 뒤집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부분의 말은 발음이 뭉개지고 침에 섞여 부정확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모두 망할거야. 이 세상은 멸망할 거야." 라는 단어를 알아들었을 때 난 누군가가 내 뺨을 휘갈긴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피해 물러섰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아 경찰들이 그녀를 체포했다. 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그 주변을 방황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소각장이었다. 그 곳은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인파 속에서 평범한 소각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난 여자가 떨어 트린 신문지가 바닥을 뒹구는 것을 보았다. 신문이었다. 그건 종이로 된 신문이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내달렸다. 종이 신문은 이제 유물이나 다름 없었다. 난 굳은 살 배긴 손을 점퍼의 주머니 안에서 틀어쥐며 도망치듯 그 곳에서 빠져 나왔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부터 까지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뒤를 쫓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였을까.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난 일탈하는 내가 자유로운 줄만 알고 있었다. 내 주변을 둘러 싼 모든 것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었단 말인가?
난 몇 번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우주에 별이 그토록 많은데 그 중 단 한개도 술 집으로 가는 길을 비춰주지 않았다. 여전히 반 쯤은 술에 취한 채, 그리고 반 쯤은 조금 전의 싸움의 여파에 취한 채 난 비틀거렸다. 슬슬 술집의 불 빛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난 그 빛을 등지고 선 한 인영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나중에나 알게 되었지만 난 누군가가 날 기다려주길 바랬던 것이 분명했다.
남자의 존재는 항상 날 동요시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믿고 있던 기반을 흔들어 대는 것에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머니는 배신감에 물든 날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반응한다는 듯한 말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해 나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어머니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의 분노를 항상 신기한 다큐멘터리를 지켜보는 식으로 관전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날 두 번 죽였다.
남자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너저분한 술집 앞에는 있어야 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그 모습에 심장이 뛰었다. 당시 난 그것이 증오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부러 더 험악하게 보이기 위해 인상을 쓰며 그에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날 찾아온 것임에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이 쪽으로 걸어왔다. 술 집에서부터 나오는 누런 싸구려 불빛과 희미한 음악 소리가 남자에게 부딪혀 흩어지는 것 같았다. 꼭, 아무 것도 그에게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난 그를 무시하며 지나치려 했지만 그가 내 앞을 막아서는 것이 빨랐다. 세월이 보이는 얼굴은 굳어 있다가 내 얼굴을 가까이서 확인하자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쳤고 그는 손수건을 꺼내 얼룩진 피를 닦으려 햇다. 그것이 진심이었기에 난 그 팔목을 잡아 저지하며 비아냥거렸다.
"걱정하는 척 하지 말아요." 상대를 모조리 아는 것처럼 구는 건 좋은 기분이었다. 남자의 팔뚝은 나이 때문인지 남자 치곤 얇은 편이었는데 그걸 뿌리치듯 놓았다. 파이크는 화 내지 않았다. 단지 그는 잠시 침묵하다 낮은 어투로 말했다.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들었네." 걱정 되었다던가 염려 되어 와 봤다던가 하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으나 난 그가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불륜을 저지를 사람 치곤 지나치게 올곶았다. 그래서 내가 처음 그 진실을 들었을 때 더욱 충격받은 걸지도 몰랐다. 난 마른 세수를 하곤 흐린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난 간혹 그가 내 아버지였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사실, 난 대체 내가 뭘 바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날 흔들어 놓았다. 남자가 나에게 뻗었던 손이, 나를 향했던 자상한 눈빛이 전부 죄책감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는 생각이 날 죽였다. 그건 어머니의 무관심으로부터 죽임당하는 것보다 더한 끔찍함이었다. 나는, 대체 이유도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날 감싸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은 날 시궁창 속에 처박혀 허우적거리도록 만들었다. 멸망.
세계가 무너지고 우주가 스러져도 괜찮았다. 난 일탈 속에서 자상한 구속을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