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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star trek

체콥파이크 단문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파벨 체콥이 잘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는 워프 코어의 56자리 보안코드를 거꾸로 외울 수도 있었고 돈 킬머의 물리역학 이론 사십 오가지 논문들을 기억만으로 막힘없이 써내려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달의 마레 임브리움에서 자라며 그 잘난 머리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기엔 어렵다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아버린 그가 잘 하는 것들 중에는 상대에게서 어떠한 반응을 도출해 낼줄 알고 표정과 목소리를 꾸미는 습성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체콥은 자신의 앞에서 일그러지는 나이 든 남자의 얼굴을 보며 그의 특기가 잘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체콥은 착한 아이였다. 그는 정말 착했다. 다른 이를 이간질시키거나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는 스타플리트의 제독과 아름다운 백마를 이끄는 함장의 사이를 망칠 법한 거짓된 말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적어도 파이크는 그렇게 생각하리라. 체콥은 눈썹을 애처롭게 휘며 제 자신이 생각해도 가증스러울 법한 목소리로 남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가 봤어요. 함장님이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제독님이 상처를 받는 것을 두고 볼수는 없어서. 그래서 주제넘게도 제가. 감히 말씀드리는걸 용서해주세요. 체콥의 말을 듣는 파이크는 무너진다. 강하고 올곶던 남자가 그의 나이 든 삶을 모두 내맡긴 연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말에 속부터 무너지고 있는데 그걸 제 손자뻘은 될만한 청년의 앞에서 채 숨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체콥은 웃는 얼굴을 숨기는 것 역시 잘 한다. 그는 손을 뻗어 조심스러움을 가장한 손길로 파이크의 어깨를 짚었고 남자는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그에 기대어왔다. 파벨 체콥에게는 잘 하는 것이 여러 개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이라면 그 주인의 목줄기를 끊어서라도 손 안에 넣을 수 있을 때까지 자상하게 뒤쫓는 것 역시, 그가 잘 하는 것 중 하나였다. 광기와 상냥함의 충돌. 푸틴이여, 이것이야말로 교양있는 이혼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