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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star trek

캐롤칸 무덤



캐롤칸


무덤







그리고 나는 꽃이 있어야 할 곳에

무덤과 비석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검은 옷의 사제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고

나의 기쁨과 열망을 들장미로 묶었다.




쉽진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과연 쉽지는 않은 과정이었다.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나 그 과정을 겪는 동안에는 차마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침착할수 만은 없었다. 오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과정 동안에 침착함을 잃은 이유는 지독하게 치밀어오른 분노 때문이었고, 그 지경이 될만큼 한 자락 이성마저 놓아버리는 것 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다고 말 한 것이었지,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번 분노에 휩쌓인 몸은 지독하게 본능만을 쫓았다. 핏줄 속의 그녀 자신조차 존재하는 줄 몰랐던 모든 폭력적인 세포들이 깨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처럼 신경 세포를 잠식해 나가는 걸 느꼈다. 캐롤 마커스는 떨리는 손 끝으로 뺨 위에 흘러내린 금발을 귀 뒤에 넘겼다. 손은 떨렸으나 그 새파란 시선만큼은 무거운 납구슬을 박아 넣은 듯이 단호하고 서늘하다. 차가운 공기에 피부가 식어가는 만큼 그 심장은 거센 뜀박질을 한다. 그녀의 안에서 두 마리의 괴물이 뒤엉킨다. 이것은 잘못 된 행동이다. 아니, 이것은 해야 마땅한 행동이다. 저질러버려. 네 자신을 파멸시켜 버릴거야. 좋지 않나? 파멸이라는 것.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네 원수의 목줄기를 물어 뜯을 수 있다면.


구금실의 밖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어렴풋한 인공적인 조명에 비친 얼굴들에 기이한 음영이 진다. 안치실의 얼어붙은 시체와 같다. 표정이 배제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인간적인 요소가 사라진다. 허나 어쩌면 그 속내는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분노. 증오. 복수와 광기. 그건 모두 인간으로부터 파생한 더러운 감정의 산물 아닌가. 칸 누니엔 싱은 미동 없이 누운 채 눈을 떠 자신을 노리는 아름다운 맹수의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초연함에 되려 피가 끓는 것은 캐롤이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고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는 듯한 가증스러운 모습에 안구 뒷쪽에서 점멸하는 분노의 불꽃이 타오른다. 그것이 완전히 그녀의 몸뚱아리를 제압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번 결정하자 그 뒤의 행동은 예정된 수순마냥 물 흐르듯이 이루어진다.


메마른 크로노스의 서리를 박아 넣은 두 시선이 엉키고 그녀는 증강 인간의 결박된 몸 위에 올라탄다. 두렵지 않나? 감당할 수 있는 결과는 두려움을 기여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자신을 신뢰하고 있군. 나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가? 더 이상 지켜야 할 무엇도 남지 않은 남자가 눈으로 말한다. 캐롤은 그의 바지를 풀러 내리는 것과 동시에 손을 미끄러트려 뱀의 아귀처럼 남자의 목에 가는 손가락을 감았다. 네 본능. 그것이 주는 공포를 즐겨. 또 한 번 지켜야 할 것이 생겼을 때 네가 느껴야 할 무기력함을 떠올리고 고통 속에서 복수를 갈아. 그리고 우리는 기형아를 만드는거야. 복수와 복수가 성교해 낳을 불쌍한 아이를. 칸의 굳어가는 눈을 그녀는 천으로 가렸다.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리며 캐롤은 제 뺨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방치했다.


복수는 마치 거울과도 같다. 뫼비우스의 띄와 같은 감정의 계승.


너나 나나, 그 제물이 되어 가련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