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스팍 우주 그리고 그 너머 1
커크스팍
우주 그리고 그 너머 1
스팍. 자? 미안. 내가 깨운 거 아니지? 아냐, 아무것도. 별거는 아닌데 문득 생각나서. 벌칸의 평균 수명 말이야. 얼마나 되었더라? 진짜? 휘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데. 응, 그냥 갑자기 궁금하더라고. 정말이라니까. 음. 음.. 인간의 평균 수명에 비하면 까마득한걸. ...그래. 맞아. 사실 그랬어. 그렇게 티 났어? 요즘 계속 우리 미래를 생각하게 되지 뭐야. 웃기지. 난 원래 먼저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런 건 절대 적성에 안 맞는데 말야. 어느 순간부터……. 그래, 네가 내 인생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자꾸만 계획하게 되더라고. 우리가 앞으로 뭘 할지. 어떤 미래를 걷게 될지. 오 년 후에, 십 년 후에, 그보다 더 후에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평생 이렇게 우주를 돌아다녀도 너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봤어. 그리고, 언젠간 끝이 오겠지. 영원히 눈을 감게 될 그 날이. 스팍, 난 혹여 라도 네가 나보다 먼저 죽게 되면 과연 널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기적이지? 알아, 비논리적인거. 그래 맞아. 인간적인 감정이야. 그래서 난 내가 너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에 마음이 놓여. 내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네 모습을 상상하면 안도가 돼. 하하. 이것도 이기적이네.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혹시라도 내가 죽게 되면 내 몸은 미련 없이 우주로 돌려보내줘. 성대한 장례식이나 그런 건 필요 없어. 그리고 넌 가끔 내 생각을 해주면서 계속 살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좋은 것만 기억하면서, 벌칸처럼. ..미안, 스팍. 미안해. 알았어. 이만 자자. 응, 너도.
*
스팍은 눈을 떴다. 동이 트고 있었다.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기이할 정도로 붉은 색이었다. 그 빛으로 인해 땅이 온통 붉게 물들어 대지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사막의 모래와 돌과 바위와 석상과 그 모든 것으로부터 어둠이 바스라지고 천천히 태양의 색을 뒤집어썼다. 느릿하게 번지는 파도의 잔물결처럼 스팍은 그 용암 같은 빛이 그림자를 몰아내고 자신의 발끝에서부터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온 천지가 붉었다. 잠시 후 태양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샛노랗게 변했다. 구름이 쓸려가듯 소리 없이 몰아쳤다.
온통 고요하다. 이 순간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생물의 움직임이 메마른 공기 안에서 증발하고 그는 온 대지가 그의 주변에서 조용히 자전하는 것을 느꼈다. 그건 따듯했고 포용적이었으나 스팍은 그 속에서 명상에 잠겼다. 모래 섞인 바람이 머리칼을 흐트러트리고 옷자락을 건드렸다. 그는 하나의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모래가 되었고 구름이 되었다. 그는 모든 곳에 있었으나 계속해서 그래왔듯, 그 어디에서도 위안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배낭을 둘러매고 로브의 두건을 썼다. 그는 오늘도 천천히 사막으로 발을 디뎠다.
*
56일째. 뉴 벌칸.
고향을 잃은 종족이 새로운 터전을 잡은 행성은 고요했다. 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수가 적었고 우울한 빛을 지우지 못하는 시선의 교환을 나누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그들에게선 아직까지도 가루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암흑의 구렁텅이에 삼켜진 고향을 향한 슬픔이 채 지워지지 못한 것이다. 간혹 카'아디라의 연주 소리가 메마른 길거리를 메웠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한 벌칸들을 위한 연주였다.
지금의 그들은 또 다른 비극으로 인해 말수를 잃었다. Dh'Reth 사원은 늘 그러했듯 정적에 잠겨 있었으나 그것이 누군가를 애도하기 위한 무언의 의식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벌칸은 없었다. 간혹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사원을 이동하는 벌칸들은 검은 옷과 검은 베일을 쓰고 있었다. 발에는 모래 긁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가죽을 덧댄 신을 신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눈빛으로 대화했고 시선은 흙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이런 의식을 행했던 것은 고향의 소멸 이후였다. 셀 수 없는 위대한 벌칸이 죽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벌칸의 시초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한 명의 인간을 기리기 위해 다시 한 번 검은 옷을 입었다.
트파우는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오래 살아갈 것이다. 무수한 비극을 경험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시간이다. 그녀는 죽은 풀과 모래를 밟고 사원을 가로질러 저의 안쓰러운 아이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모든 안쓰러운 이들을 아이라고 부르곤 했다. 처마가 낮고 돌의 냄새가 나는 사원의 안쪽에서 석상처럼 곧은 등을 한 벌칸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고 있던 스팍은 그녀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장수와 번영을.
벌칸의 형식적인 인사에서 트파우는 사무치는 슬픔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같은 인사를 돌려주는 잔인한 말 대신 다른 대답을 했다.
- 슬픔을 나누오.
Tushah nash-veh k'dou. 스팍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곧 고개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그녀의 애도를 받았다. 트파우의 방문이 길어질 것을 짐작한 스팍은 그가 앉아있던 자리를 정돈한 후에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검은 색 의복의 무릎께가 너덜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버석한 돌 벽을 벗어나 사원을 거닐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 명상은 성공적이지 못한 것처럼 뵈오.
스팍은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긍정하지도 않았다.
- 가까운 자의 죽음으로 인한 감정의 변동은 명상으로 쉬이 다스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약 이레 후면 내면의 평화tvi-sochya를 찾을 수 있을 터입니다.
- 많은 자들이 그대와 같은 이유로 사원을 찾은 것은 사실이오.
상실과 죽음. 끊어진 본딩으로 인한 고통. 지난 몇 해 동안 수많은 벌칸이 상처 입은 정신으로 인해 힐러를 찾았다. 누군가는 슬픔을 이겨내는 데에 성공했고 또 누군가는 실패했다. 트파우는 그녀의 눈 앞에서 산채로 스러져가는 벌칸의 별들을 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인간의 피를 가진 벌칸의 아이는 그 누구와도 달랐기에 아주 예전부터 그녀의 신경을 끌곤 했다. 그건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스팍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감정적인 기분을 느꼈다.
- 스팍. 그대는 쾰리나르Kohlinahr를 거부했소.
- 그렇습니다.
- 설명하시오.
- 그를 향한 감정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논리적이지 못하오. 정신이 붕괴된다면 그것은 영과 기억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 그대의 사람을 향한 감정을 되새기고 싶다 한들 불가능하게 될 것이오.
- 그렇다면 차라리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트파우는 그의 세상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얼굴 위로 드리운 베일 너머로 스팍의 얼굴을 보았다. 검은 장막이 아니더라도 벌칸의 눈은 지독하게 검었고 그 속에선 무엇도 비춰지지 못했다. 그녀는 구차한 노력임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그를 회유하고 싶었다.
- 명상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오.
- 견디지 못하면 또 어떻습니까.
- 본드 메이트를 잃는 것에 따르는 감정은 숙련된 힐러 조차 쉬이 감당해내지 못하외다. 혹 그대는 자살을 원하는 것이오?
정신적인 죽음. 그건 벌칸에게 육체적인 죽음과 다름없는, 어쩌면 그보다도 더한 죽음이었다. 스팍은 잠시 생각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 아닙니다.
- 쾰리나르를 원하지 않는다면 풀라라Fullara를 행하시오.
- 그와의 기억을 지우라는 말씀이십니까?
- 지우는 것이 아니요. 억압하는 것 뿐. 그대의 상처 입은 정신의 상태가 호전된 이후 사렉의 도움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요.
- 거부합니다.
그들의 주변에 침묵이 흘렀다. 트파우는 스팍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몸을 돌려 사원의 너머를 보았다. 새 터전을 잡은 행성은 그들의 옛 고향인 잃어버린 세계paki-panu를 연상시킬 수 있을 만큼 닮아 있었다. 얼기설기 자리를 잡아가는 벌칸들의 터전과 그 뒤로 이어진 붉은 모래 둔덕들 그리고 타오르는 태양이 존재했다. 황폐하고 가꾸어지지 않은 땅을 보던 트파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나흘 후면 추모가 끝나고 르란에스R'ran'eth가 그대를 찾을 것이오.
- 사원의 가디언께서 저를 찾으시겠다면 그에 기다려야지요.
- 그 때까지 나의 제안을 고려해보시오.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어째선지 트파우는 그가 고려 따위 하지 않을 것이란 걸 확신했다. 고집 센 아이. 그녀가 보아온 한 스팍은 항상 그러했다. 양 갈래의 길에서 방황했으나 결국은 자신의 힘으로 그의 길을 선택한다. 인간의 피가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칸보다 강한 면을 갖고 있었다. 트파우는 그것이 너무 곧아 부러질까 염려했다. 슬픔으로 눈이 멀어 제 무덤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길을 제시할 힘이 있을 뿐 그의 선택까지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안타까움은 그 다음의 요소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작별했다. 트파우의 멀어지는 등을 보던 스팍은 그녀가 아주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여 몸을 돌려 걸었다. 명상을 위한 장소로 돌아가는 길까지 그 누구의 얼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그만을 위해 마련된 장소처럼 의도된 인기척의 부재를 느꼈다. 그는 토'산 위에 무릎을 꿇고 이전과 같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눈을 내려감았다.
시꺼먼 감정이 파도가 되어 그를 덮쳤다.
*
6일째. USS 엔터프라이즈.
의식은 조용하게 치러졌다. 그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고 누구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함장의 유언은 다른 선원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확실하게 존재했다. 그들은 임시 함장인 스팍의 지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성운이 있는 은하로 갔다. 보존 캡슐의 표면은 차가웠다. 스팍은 잠든 것처럼 눈을 내려감은 연인의 얼굴 위를 손으로 쓸었다. 커크의 유언에는 지구의 풍습이라는 화장을 제안하는 말이 쓰여 있었으나 스팍은 차마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 그를 아득한 우주로 내보내야 하는 것에도 살이 에이는데 고작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뿌릴 수는 없었다. 스팍은 그것이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게 그의 최선이었다. 그는 차가운 캡슐 위에 입 맞췄다. 그것이 우주로 멀어지는 장면은 모든 선원이 지켜보았고 그들 모두가 울었다. 울다 지쳐 쓰러지는 자도 있었고 슬픔을 고함으로 표현하는 자도 있었다. 스팍은 더 이상 울 수 없었다. 지난 육 일 동안 조금이라도 남겨두었다면 아마 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11일째. 아이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행된 공식적인 장례식과 추모가 끝나고 스팍은 혼자서 아이오와로 향했다. 그는 아이오와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 곳에 대해 아는 거라곤 커크가 간간히 말해주었던 것들뿐이었다. 지루할 정도로 펼쳐진 들판이라던가, 사람이라곤 거의 없는 한적한 거리라던가 주말이면 온 동네 사람이 모이는 펍이라던가, 그런 사소한 것이었다. 스팍이 도착했을 때엔 이미 동네 사람들끼리 행한 조촐한 추모식이 끝난 후였다. 거리 곳곳에는 흰 꽃이나 현수막 같은 추모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호버카를 몰아 마을에서 빠져나와 길게 이어진 마른 길 위를 낮게 날았다. 모래 먼지가 그의 뒤로 구름을 이뤘다. 커크의 집은 중심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했다. 내비게이션이 도착한 것을 알렸을 때 스팍은 그의 시야에 들어온 낡은 집을 보았다.
집은 인적 없이 고요했다. 책이나 자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구식의 집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엉성한 울타리, 작은 마당과 녹슨 게라지, 담쟁이 넝쿨이 자라난 페인트가 벗겨지는 나무 벽, 조그만 굴뚝. 사람 손이 오랫동안 타지 않아 멀쩡한 구석이 없었지만 폐가라고 부르기엔 이상하게 따스했다. 스팍은 밖에 호버카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울타리 문을 밀어 열었다. 끼익 하는 나무 삐걱 이는 소리가 났다. 발걸음 밑에 손질되지 못해 무성한 잔디가 밟혔다. 그는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가에 화관과 꽃들이 수북했다. 그는 꽃의 무덤을 넘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문은 부서질 것처럼 길게 울었다. 마른 먼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스팍은 집의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약간의 곰팡내와 먼지를 빼곤 큼직한 사물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 마냥 침울하게 놓여 있었다. 오래 된 소파와 티비, 다이닝 테이블, 구식 레플리케이터 따위가 보였다. 그는 서랍장의 위에 놓인 액자를 하나 발견했다. 그가 아는 얼굴이었다. 빛바랜 사진 안에선 조지 커크가 제복을 입은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폈지만 그것 외엔 어떤 사진이나 액자도 보이지 않았다. 스팍은 발걸음을 옮기려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야구공을 주워들었다. JK라는 이니셜이 쓰인 야구공을 손에 든 채 그는 계단을 밟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세 개가 있었으나 커크의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활짝 열린 문을 지나 들어가자 이불이 아무렇게 널린 침대와 물건 몇 가지가 흐트러진 책상, 옷들이 비죽 나와 있는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스팍은 그것이 커크답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이 방을 나올 때까지 뒷정리를 하지 않았을 그의 모습이 선했다. 머리에 문득 뭔가 가볍게 부딪혀 고개를 드니 함선과 행성들의 모형이 천장에 달려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한 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 커크의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담았다. 오래 된 라디오, 모자, 신발, 켈빈 호의 모형, 스웨터, 게임기.. 가방이 다 차서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갈 공간이 없게 되자 스팍은 방을 두 번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회색 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니 비가 내릴 지도 몰랐다. 스팍은 등 뒤로 현관문을 단단하게 닫고 꽃들을 넘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스팍은 울타리 너머에 주차시켜 놓은 그의 호버카 옆에 어떤 나이 든 노인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인은 막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참에 스팍과 시선이 마주쳤다. 스팍은 그의 주름진 손에 들린 어설픈 꽃다발을 보았다. 투박한 갈색 종이에 쌓인 꽃은 현관의 앞에 놓인 그 어떤 꽃보다도 노랬다.
아마 다른 이들처럼 조의를 표하기 위해 온 것일 테다. 그들은 시선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노인은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스팍 현관에서 내려와 그의 옆을 지나쳤다. 막 울타리 문을 잡을 때 걸걸한 목소리가 그를 잡았다.
- 이 꽃을 놓아 주시겠소?
스팍은 몸을 돌려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그를 향해 꽃다발을 내밀고 있었다. 종이는 보잘 것 없었으나 꽃만은 싱그러웠다.
- 직접 놓기 위해 갖고 오신 것 아닙니까?
- 맞아. 그런데 자네가 놓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스팍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인간들의 말뜻이나 행동의 연유를 찾는 데에 실패했다. 노인은 그를 재촉하듯 꽃다발을 한 번 작게 흔들어 보였고 스팍은 결국 그에게 다가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에게선 은은한 향이 났다. 그는 지구의 식물 종류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에게 노인이 말했다.
- 원추리요. 곱지?
- 예.
- 그 아이를 생각하면 항상 이 꽃이 떠오르더라고. 샛노랗고 화사한게 웃는 낯을 꼭 닮았지. 제 아비도 그랬어.
- 실례지만 당신은..
- 동네 이웃이외다.
이곳에 오래 살면 서로 다 알게 되어있어.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로 지탱하던 허리를 조금 폈다. 주인 없는 집을 담는 시선 안에 스팍이 짐작할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스팍은 그를 응시하다 그가 지나쳐 왔던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흰 꽃들로 가득한 가운데에 스팍은 그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노란 꽃들이 구름 가운데 피어난 햇살처럼 만개한 것을 보자 순간 눈가가 시큰거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도로 걸어 나와 노인을 지나쳐 호버카에 올랐다. 노인은 그가 시동을 켜고 출발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집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68일 후 스팍은 커크의 집이 무명의 기부금에 의해 역사적 장소로 보존 처리되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팍이 다시 그 집을 찾은 건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
1일째. 델타 베가.
- 스팍!! 스팍, 정신 차려! 젠장! 지금 너 마저 미쳐버리면 안 된다고! 너까지 잃을 순 없어! 엔터프라이즈, 여긴 맥코이- 스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