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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망할게 대체 뭐라고?"
토니는 거의 땀을 흘리듯이 말했다. 아니,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거진 온몸에서 흐르고 있는 땀처럼 줄줄 흐르다시피 내뱉어졌다. 도무지 이 끔찍한 더위에 그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애매해지고 말았다. 정신의 혼미할 지경의 더위였다. 마치 이전 그가 걸미라에서 피랍 당했을 적을 떠올리게 할 법한. 한편 더위를 느낄 수 없는 자비스는 그를 약 올리는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엑티브X 라고 부르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이죠.
토니 스타크는 그 앞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한국어로 된 창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코끝에서부터 땀방울이 뚝하고 떨어졌다.
사건의 전말은 49 시간, 약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까지만 해도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연인과 함께 보낼 기막힌 밤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보지 못한지 거의 두 주가 다 되어갔다. 두 주면 십사 일이나 되었고, 그 정도라면 예전의 토니 스타크가 서른 명의 모델들과 충분히 광란의 시간을 보냈을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인과 완전하게 정착한 이상(물론 정착하기까지 말로 이루지 못할 엄청난 장애물들을 넘어야 했지만) 그는 더 이상 방황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아주 조금, 많이, 애가 탔을 뿐이었다. 빨리 보고 싶다. 진짜로. 그 말을 속으로 되새기길 수십 수백 번, 고대하던 연인의 얼굴을 볼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토니는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호텔을 알아보는 둥 들뜬 기분으로 밤까지 지샜다. 주인님, 작업하시던 마크52에 관한 열 체감조정기의 수치가 교정을 필요로 하여... 아아. 자비스, 됐어. 오늘은 오프야. 휴업. 일 안해. 토니는 작업실까지 버려둔 채 그렇게 연인을 기다렸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비밀번호 찍는 소리가 들린 후에, 말리부 저택의 문이 열렸다.
"에엑."
샴페인을 치켜든 토니는 저도 모르게 목 졸린 소리를 냈다. 닉 퓨리는 나 역시 널 보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망을 줘서 미안하게 됐군.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나 보지?"
"샴페인에 재즈 음악에 오믈렛과 실크 앞치마를 보면 모르겠어?"
"안타깝게도 캡틴은 오늘 밤 여기 오지 못할 거라네."
토니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당신 그거 취미지. 데이트 훼방 놓는 거."
"그 정도로 자네에게 관심이 많지는 않아." 퓨리가 단호하게 말하며 그의 앞에 홀로그램을 띄워 올렸다. "비상 상황이다. 장소는 남한, 서울이라네. 미스터 로저스는 이미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고. 그러니 자네도 당장 그 어울리지도 않는 앞치마 벗고 수트나 입게."
그렇게 돼서 토니는 계획에도 없던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서울이 쉴드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신호를 보내는 물질이 레이더망에 잡혔다는 이유여서다. 쉴드의 인원들이 이미 파견되었다 하는데 그들은 모두 소리소문 없이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로 인해 어벤저스의 멤버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에게 임무가 전달되었다. 물론 거기까진 좋았다. 그는 언제 한국에 다시 방문하고 싶었던 와중이다. 저번에 들렸을 때엔 아주 잠시 업무 차 가게 되었기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왔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한국의 테마파크가 그렇게 끝내준다던데 임무가 끝나면 테마파크를 반나절 정도 빌려서 스티브와 함께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황은 이번에도 그의 뜻처럼만 돌아가진 않았다. 토니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아머 헤드를 두들겼다.
"토니, 자꾸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 거라네."
그의 옆에 서있던 스티브가 조용히 말렸다. 이미 주변에서는 무수한 시선이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 더운 칠월의 여름날에 말도 안 되게 더워 보이는 코스튬을 입은 채 강남 한 복판에 서있는 두 명의 외국인은 주목을 받지 못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어벤저스의 코스튬 플레이를 한 것 치고는 굉장히 닮아 보였기에 간혹 사진을 찍는 자들도 있었다. 스티브는 더위와 부끄러움에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옆에서 머리를 두들겨 대는 연인도 상황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아오, 진짜! 이거! 뭐냐고! 대체 뭐 길래 GPS가 안 잡혀? 엉?"
-엑티브X는 일반 응용프로그램과 앱을 연결시키는 데에 쓰이는 기술입니다. 서울 도심의 GPS 정보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시스템 내에 엑티브X 설치가 필요했습니다.
"난 왜 이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지?"
-국내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다 사용이 간편하고 설치가 쉬운 다른 대체 시스템을 추구하는 편이죠. 현재 엑티브X로 인해 약간의... 작업 지연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기 시간은 십삼 분, 아니, 십오 분... 자비스의 말이 계속되자 토니는 아머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게 말이 돼? 세상에, 난 너를 미 국방부 인텔조차 해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단 말이다!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스티브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토니, 자네 혹시 그걸 사용해 본 건 아니겠지? 토니는 한숨 쉬고 싶어졌다.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자비스의 소리만 울리는 가운데에 그들 주변을 정장 입은 인파가 쉴새 없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은 굉장히 복잡한 도시였다. 그 곳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지만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아머가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허나 별 알 수 없는 것 때문에 임무 장소를 찾는 데에 시간이 지연되어 버린 두 사람은 결론적으로 어찌저찌 장소에 도달하긴 했으며(토니는 자신이 기초 한국어를 알아두었던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스티브와 사이좋게 임무를 처리했다. 에너지를 방출하는, 치타우리의 헤드처럼 생긴 괴상한 물건을 찾아내어 쉴드에게 넘긴 후 그들은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어쨌든 토니는 어느새 그의 시스템 깊숙이 깔려버린 엑티브X라는 것을 손봐야 했기 때문에다.
"그래도 배달 문화 하나는 정말 편하단 말이야." 토니는 초밥 세트에서 스시를 집어 먹으며 헤드 파트를 점검했다. 그 때 뒤에서 스티브가 그를 불렀다.
"방금 한국에 있는 자네 은행으로부터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는 전화를 받았네."
"뭐?"
"신원조회가 필요하대서 자네 구좌 중 하나를 알려줬네만."
"잠깐만. 난 한국은행 따위 없어. 그리고 그런 전화가 어떻게 바로 어제 산 중고 핸드폰으로 온 거야?"
한동안 잠시 난리가 났다. 토니는 전화에 불이 나도록 여기저기 연락해서 당장 그의 보안정보 등급을 올리고 그 괘씸한 전화를 건 사람을 법적 조치 하도록 시켰다. 어제 산 중고 핸드폰을 자근자근 밟고 있는 토니를 보면서 스티브는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걸렸다는 걸 채 완벽하게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단지 뭔가 잘못했다는 듯한 죄책감에 조금 시무룩해졌을 뿐이다. 토니는 이마를 짚으며 그의 연인을 달래줘야 했다.
"괜찮아. 어차피 돈이야 많으니까."
"토니. 그런 말 할 때면 자네가 참 속물 같다네."
"그래도 내가 싫지는 않잖아."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걸 보자 토니는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과 밖으로 나가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비록 바깥은 한여름의 더위로 찜통과도 같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은 얼마 남지 않았으나, 종처럼 만나기 힘든 연인과 해외에 단 둘이 남게 될 경우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티브의 두 손을 맞잡았다.
"어디 나가자, 우리."
"지금? 밖은 39도라네. 나야 괜찮지만 자네 더위 잘 타지 않나."
"그딴 거 상관없어. 더운 게 대수야. 내 애인이랑 데이트하겠다는데."
"토니..."
"감동했어? 그럼 우선 우리 옷부터 갈아입자."
토니가 아무리 70년 전 시대에서부터 해동된 연인에게 너그러운 사람일지라도 데이트 할 때만큼은 체크무늬에 복고풍 면바지를 벗어줬으면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역시 땀에 절어 꼴이 엉망진창이기도 했고 말이다. 스티브는 슈퍼솔져라 그런지 웬만해선 땀도 많이 흘리지 않는 편이었고 그는 자신의 옷차림새에 매우 만족했기에 토니의 제안이 크게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토니의 들뜬 모습을 보는 건 좋은 기분이라 그는 토니가 인터넷에서 옷을 검색할 동안 얌전히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역시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한국이라고 생각하며 토니 스타크는 마우스를 딸깍였다. 굳이 자비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는 한동안 이런저런 한국의 패션 사이트를 검색했다. 최신 스타일의 옷이 매우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수많은 온라인 쇼핑몰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흥하는 아이돌이 입는 옷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그와 스티브에게도 문제없이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며 몇 가지를 골라 장바구니에 담은 토니는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창이 하나 떠올랐다.
"...주민등록번호?"
그는 소셜 시큐리티 넘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며 외국인임을 표시하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다시 창이 떠올랐다. 외국인 등록 번호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스킵 버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토니가 대략 한 시간 여 동안 열여덟 개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슷한 것을 시도하고 있을 때 스티브는 졸고 있었다. 그는 결국 마우스를 집어 던졌다.
"자비스. 해킹해."
결국 그는 자비스가 최고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했다. 엑티브X를 완전히 피할 방법을 습득한 자비스는 훌륭한 방법으로 모든 방어벽을 뚫고 들어가 유출되기 쉬운 한국 국적의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었다. 이것이 후에 엄청난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으나, 어쨌든 토니는 만족했다. 그는 스티브가 자고 있는 동안 몰래 그 정보를 사용하여 옷을 구입할 수 있었다. 당일 배송을 요구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옷이 도착했다. 정말 편한 건지 아닌지 모를 나라였다.
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바깥은 느지막한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았으나 대낮처럼 살을 태우는 더위는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토니는 선글라스를 눌러 썼다. 그들은 평일 오후, 모든 사람들이 회사 안에서 일하느라 죽어가고 있을 시간, 한가한 서울의 도심을 천천히 걸었다. 가로수가 널찍이 그늘을 드리웠고 10차선 대로에선 간혹 버스와 택시의 무리가 쏜살같이 지나치고는 했다. 스티브는 그 뉴욕과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론 색다른 도시의 분위기에 흥미를 띤 눈으로 사방을 살피기에 분주했고, 그 모습을 보며 토니는 얼핏 웃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바빠 평상복 입은 두 외국인에게 신경을 쓸 겨를은 없어 보였다. 토니는 슬쩍 손을 내밀어 스티브의 손을 잡았다.
어쩌면 이 도시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몰랐다.
2014.03.
by. 아비얌
to. 이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