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파이크 판타지물 미완
짐이 그의 가정의 불화에 대해 처음 자각한 것은 그가 일곱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크리스마스 였다고 기억한다. 짐과 샘은 위노나의 손을 잡고 추운 거리로 나서며 어린 나이에 들떠 있었다. 거리는 시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으며 온 곳에서 캐롤 송이 울려 퍼졌다. 짐은 그가 아버지는 어디 있냐고 물었던 것도 기억했다. 어머니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았다. 혹은 그녀가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다.
위노나는 두 형제를 옆 동네에 사는 그녀의 친구 집에 맞겼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날까지 그들을 찾지 않았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떄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위노나는 여전히, 되려 그들 형제가 자랄수록 그들을 혼자 두는 일이 잦았다. 조지는 우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의 일 때문에 집에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실 일이 아니더라도 거의 집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다. 짐이 눈치가 빠른 편이기도 했으나 샘이 하루건너 위노나와 고함을 지르는 것을 들으면 알기 싫어도 알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열 살, 짐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에 들어온 샘은 짐이 말을 걸기도 전에 위노나의 방을 찾았다. 짐은 그를 말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엄마 지금 뭘 하는 거에요? 이 남자는 누구에요?'
샘의 고함소리와 위노나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와 섹스하고 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곧 샘이 분노로 물들 얼굴을 한채 밖으로 뛰쳐나왔다.
'난 나갈거야 짐. 이 집에서 나갈거라고.'
다음 날 샘은 떠났다. 아주 가버렸다. 그 빌어먹을 놈은 짐을 이 망할 집구석에 두고 혼자 도망친 것이었다.
사실 짐이 그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샘을 아무리 욕한다 해도 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샘을 가출하게 만든건 빌어먹을 그들의 부모였다. 짐이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거나 대들거나 화를 내지 않았던 것은, 그의 몫까지 샘이 전부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샘이 나가고 나서 짐은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는 이 주 만에 집을 나왔다.
추운 겨울이었고 홧김에 나왔을 때엔 긴팔 셔츠 하나 걸친 그의 위로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짐은 제 몸에 팔을 둘르며 어깨를 움츠렸다. 추웠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열 두살, 겨울에 집을 나온 짐은 발을 헛디뎌 눈 덮인 언덕을 굴렀고 그로 인해 전혀 다른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짐이 처음으로 벌칸에 발을 디딘 날이었다
어라. 안 죽었네.
정신이 들고 나서 짐이 가장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죽지 않은 것 뿐이었는지 온 몸이 쑤셔왔다. 오른팔은 부러진 것처럼 아팠고 한쪽 발목은 접질렀는지 퉁퉁 부어 있었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이 깨어질 것 같았다. 짐은 간신히 눈물을 삼켰다. 그는 고작 열 두살이었고 그에게 있어서 그런 복합적인 고통은 처음이었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빈말로도 아이오와라고 하기 힘들었다.
한동안 끙끙거리며 누워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 짐은 그가 허허 벌판에 누워있었고 얼마 떨어진 곳에 믿을수없을 정도로 거대한 성이 있는걸 보았다.
A fucking castle. 짐은 추위도 잊고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아이오와에는 성이 없다고 짐은 장담할 수 있었다. 마치 고전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성의 모습에 짐은 넋이 나갔다.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그 크기와 위용에 짐은 성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패닉과 혼란이 뒤따랐다. 분명 언덕에서 굴렀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언덕에서 구를 때 이상한 워프 홀에라도 빠진 것인가?
짐은 재채기를 하고 떨었다. 성이고 뭐고 추운건 여전했다. 짐은 겨우 몸을 일으켜 몇 발짝을 걸었으나 곧 다시 엎어졌다.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춥고 아프고 배고프고... 끝내주는군. 어쩌면 집을 나오는 건 존나 큰 실수였을지도 몰라. 짐은 자신의 위에 쌓여가는 눈을 느끼며 손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곧 어둠이 덮쳐왔다.
이번에 눈을 떴을 땐 고풍스러운 방 안에서 부드러운 실크 이불의 감촉에 휩쌓인채였다. 짐은 그가 천국에 온 건가 싶었다.
"꼬맹이. 정신이 드냐?"
짐은 간신히 눈만 굴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어둔 색의 머리칼을 가진 젊은 남자가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하자 곧 온몸을 덮치는 고통에 신음을 내며 다시 누워야했다. 남자는 짐에게 무슨 약물같은 걸 내밀었다. 진통제야. 남자가 재촉해서 어쨌든 짐은 마셨다. 고통은 확연히 가라앉았다. 정신이 조금 들자 짐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여기가 어디죠? 아저씬 누구에요?"
"넌 지금 시카르 령의 대공의 성에 있고 난 아직 스무 살도 안 됬어 멍청아."
남자는 툴툴거렸다. 짐은 남자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카르? 대공? 이제보니 방은 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식 -멸종된- 물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남자가 입은 옷 역시 짐이 아는 옷들과 달랐다. 그러니까, 마치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것만 같은...오 젠장. 이게 무슨 꿈같은 소리란 말인가.
언덕에서 굴러 떨어진 것으로 정말 타임워프라도 했다는 소린가? 짐은 고작 열 두살이었지만 똑똑했다. 주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여긴...그러니까 태양계 안에 있는 곳이에요?"
짐의 질문에 남자가 눈썹을 휘었다.
"당연히 벌칸은 태양계 안에 있지. 무슨 헛소리야?"
"벌칸? 여기가 벌칸이에요?"
"세상에. 미친 아이라니. 난 의사지 정신 상담가가 아니란 말이야."
이마를 짚는 남자를 보며 짐은 되려 자신이 불평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 안에 모든 부상은 나았다. 마법이라도 쓴 건지 어떻게 하루만에 나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짐은 그제서야 자신이 떨어진 곳이 지구도 아닌 다른 이상한 행성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상한 힘이 존재하는, 하지만 태양계 안에 존재하는 행성.
짐이 회복을 마친 후에 자신을 레너드라 소개한 의사는 나갔고 짐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카페트, 벽장식, 도자기, 풍경화... 커크는 학교에서 역사 시간 때 이런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꼭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지구를 떠난 것이었을까? 돌아갈 방법은 있는걸까?
뭐 어찌됬든 집에서도 그를 찾을 사람은 없었다. 그가 없어진 것에 대해 아무도 신경 하나 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레너드는 음식을 가져올때까지 방안에서 얌전히 기다리라 했지만 짐의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짐은 조심스럽게 무거운 문을 열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정말로 놀랐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보자 옛날 시대의 성에 온 것 같았다. 아 맞다 이곳은 성이 맞지. 짐은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그러자 또다른 방문이 나왔다. 방문은 조금 열려있었고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
"반란은 절대 안됩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당신의 목숨이!"
"쓸데없는 걱정이다. 필요한 건 모두 준비되어 있어."
짐은 문 틈으로 엿보았다. 허리께에서 조여진 금장 달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그 앞에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짐은 한동안 제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대로 보이는 남자는 뭔가로 인해 화가 나 있었지만 짐은 그들이 하는 말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