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묘님 리퀘 커크스팍입니다~!
쓰면서도 재밌었어욬ㅋㅋㅋㅋㅋ이런 느낌으로 쓰는건 오랜만이라!
부족한 글쪼가리지만 재밌게 읽어줘용 흑묘찡~
세 달 하고도 반. 제임스 커크가 마지막으로 여자를 만난 후로 흐른 시간이었다. 그의 주변의 모든 사람이 스테디한 여자 없이도 반 년 정도는 살아갈 수 있다며 바지 속에 개미라도 들어간 것처럼 안달복달하던 커크를 향해 혀를 차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사실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기분이었다. 되려 최근엔 그들이 커크에게 의외라는 시선을 주곤 했으니 말이다.
커크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의외라고 생각한 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바로 건너 테이블에 섹시한 앤도리안 여자가 빛나는 푸른색 피부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커크를 향해 더듬이를 깜박거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이상하게도 별다른 끌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런 자신에 더욱 기분이 찝찝해져서 애꿎은 술만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레너드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작질을 하고 있는 커크를 보곤 눈썹을 휘었다.
"야 작작 마셔라. 너 취했어."
"안 취했어 병신아."
"의사가 말하면 좀 곱게 쳐들을래 이 화상아?"
"설마 내가 내 주량도 모를거같냐? 멀쩡해." 커크는 다시 술을 넘기고 또 술병을 기울였다.
레너드는 주변에 그말고 아무도 커크를 신경쓰는 녀석이 없단걸 확인하곤 한숨을 쉬며 그의 술병을 기울이는 손을 잡아 멈춰 세웠다. "눈 풀린 놈이 말은 잘하지. 왜 그러는데?"
커크는 그의 손을 빼내더니 꿋꿋하게 술을 따랐다. "왜긴 왜야. 아무 일도 없어 임마."
"지미보이."
"Oh my god, please Bones.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
"열 다섯 번도 더 부를 수 있어."
"게이라고 오해받아도 내 탓 아니다."
그렇게 말한 커크는 갑자기 목졸린 것처럼 신음하더니 제 머리를 쥐어뜯었고 레너드는 당황했다. 아니, 화내야 할건 저인데 왜 되려 쟤가 저런 반응을 보여? 커크의 반쯤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에 레너드의 옆에서 다른 친구가 짐 왜 저러냐고 물어왔다. 내가 알겠냐.
"아 존나. 아." 커크는 탄식했다.
"하이포 놓고 병원으로 옮기기 전에 말해."
"씨발 나 안 미쳤어."
"Oh yeah. Totally."
커크는 카데시안 맥주를 한 번에 반을 비워내곤 착잡한 얼굴의 레너드를 보았다. 레너드는 커크의 충혈된 눈을 보며 진짜 뭔 일이 있나 싶었다. 그가 제임스 커크를 알아온지 어연 몇 년이나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그런 그닥 즐겁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할 때 뿐이었다. 그래서 레너드는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커크의 입에서 나온 말은 팔자로 휘어지려던 레너드의 미간에 순식간에 내천자를 그리기에 충분했다.
"나 남자 좋아하나봐."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꽤나 뚜렷했다. 커크의 양 옆에 앉은 친구놈들이 고개를 돌리자 되려 레너드가 당황해서 둘러댔다. 아, 얘가 며칠전에 어.. 라이브를 갔다네. 너네 가봤냐? 그 이번에 나온 가수? 친구놈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이돌에 관심 없는데. 지미 너 그런거 좋아했냐. 야, 얜 예쁜 여자면 다 좋아하잖아.
다행인지 뭔지 다른 이야기로 빠지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레너드는 속으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웬수덩이같은 커크를 노려보았다. 커크는 레너드가 어떤 시선을 보내건 말건 트랜스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술잔만 힘없이 잡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넋부자가 된 제임스 커크를 본 적은 굉장히,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기 때문에 레너드는 커크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마음먹은 것 보다는 조금은 진지해지기로 했다.
"그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너처럼 여자 엉덩이 좋아하는 놈이 또 어딨다고?"
"본즈. 여자건 남자건 엉덩이는 똑같더라."
레너드는 부르르 떨었다.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Fuck, Jim. 너 남자랑 했어?" 레너드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내가 딱히 호모포비아인건 아닌데, 너가, 짐 커크가, 남자랑?"
커크는 술을 마저 들이키더니 짜증스럽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취기 때문인지 뭔지 벌게진 얼굴로 커크가 씨발 하고 욕부터 했다.
"그래 했다. 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냐 지금. 나 그 새끼 존나 별로였거든? 와 진짜, 첫 인상부터 재수없어서 한 대 칠뻔 했는데. 근데 씨발 침대에서 존나 끝내주는거야. 완전 요부라니까. 걔랑 잘 생각은 없었지만, 정신차려 보니까, fuck. 성질은 더러워서 속은 있는대로 긁고. 하여간 생긴 것도 완전 게이처럼 생겼는데. 아, 내가 말했냐? 걔랑 하는데 내가 오르가즘을 네 번이나..."
갑자기 말문이 막힌 커크는 레너드가 시퍼래진 얼굴로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은 것을 보았다. 레너드는 꼭 비행선이 이륙하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발. Have mercy on me. 거기까지만 해."
"Sorry, dude."
"그래서, 요새 여자는 거들떠도 안보고 동정 떼인 틴에이지 보이처럼 삽질해대던게 그 침대에서 끝내주는 게이 때문이란거야?"
"정확해."
아...나 이러다가 걔네 집 찾아가면 어떡하지. 그러기 싫은데. 커크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레너드는 커크가 더 취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곤 그에게 술을 따라줫다. 적어도 술에 취한 채로 잠이라도 들면 커크가 술김에 허튼짓을 하는 걸 지켜봐야 할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커크는 술 먹고 쌈박질 해대는 버릇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나 남녀(이젠 남남도 포함시켜야겠지만)관계로 진상 부린 적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예방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레너드는 그가 따라주는 족족 술잔을 비워대는 커크를 불안한 눈으로 보았다. 커크가 조금이라도 장난기가 보이면 뒷통수라도 한 대 때려주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못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커크는 꽤나 취한 상태였다. 레너드는 나중에 커크가 온전한 상태일 때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맘껏 마시고 들어가라. 씻고 자."
"야 너도 마셔."
커크는 레너드의 손에 술병을 떠안겼다. 레너드는 한숨쉬며 어깨를 으쓱 하곤 커크와 나란히 술을 마셨다.
맘껏 마시고 들어가서 씻고 자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커크는 귀에 핸드폰을 댄 채 비틀거렸다. 본인은 저가 비틀거리는지도 몰랐지만 금방이라도 어딘가 고꾸라져서 머리라도 처박을 것처럼 기우뚱댔다. 몇 번 이미 가로등이나 땅바닥에 장렬한 키스를 할 뻔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상태긴 했다. 커크는 술에 떡이 되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도 본인의 매무새가 신경쓰였다. 그는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특히 관심있는 상대를 만날 거였으면 더욱.
그랬다. 그는 지금 스팍의 집 앞에 있었다. 레너드는 그보다 먼저 술에 취해 나가 떨어져버렸고 술을 진탕 마시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 안이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고 물었을 때 기사는 그를 치매걸린 노인네 보듯 봤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스팍의 집 앞이었다. 적어도 스팍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존나 뭔 말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름패가 으리으리한 정문 앞에 붙어 있었다. 취해서 못 알아본 건 절대 아니었다. 이거 대체 어떻게 읽는거야? 스...크프...트... 커크는 포기했다.
밤이라 길목은 어둑했다. 껌껌한 어둠에 휩싸여 가로등 불빛과 집들의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으면 커크는 진작 맨땅에 수십 번 걸려 넘어졌을 것이다. 커크는 여전히 핸드폰을 귀에 댄 채 갈 지자를 그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신호가 울리다 음성함으로 넘어가는 것이 반복되었지만 커크는 재다이얼 버튼만 눌러댔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서른 일곱 번 째로 재다이얼 버튼을 누를 떄 커크는 돌벽에 등을 기댄 채 반쯤 주저앉다시피 하고 있었다.
"씨발. 씨발. 씨발. 좀 받아라. 응?"
"여기서 뭐하십니까?"
갑작스런 목소리에 커크의 고개가 홱 들렸다. 어느 새 다가온 스팍이 그에게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채 미묘한 표정으로 커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팍의 얼굴은 그의 옆에 가로등 빛을 받아서 그런지 어딘가 창백하게 보일 정도였고 검은 머리칼은 젖어 있었다. 다리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적당한 스키니진에 허리춤에서 조인 반코트가 미칠듯이 예뻤다.
입을 헤 자로 벌리고 그를 올려다보는 커크를 보다가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 스팍에 커크가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다 기우뚱거렸다. 스팍은 한 손을 뻗어 그런 커크의 몸을 가볍게 지탱했다. 빌어먹을 벌칸 체력. 그렇게 궁시렁거리면서도 커크는 물씬 풍기는 스팍의 체향을 킁킁거렸다.
"당신 많이 취했는데요."
"나도 알아 임마."
"지금 제 냄새를 맡고 있는 겁니까?"
"너 왜 전화 안 받냐? 엉? 내가 어? 백 번 걸었어, 백 번. 알어?"
"핸드폰을 두고 나왔습니다."
"근데 어디서 샤워하고 오는거야?"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커크의 얼굴이 흉포하게 일그러지려고 할 때 스팍이 물었다.
"제 집에는 무슨 볼 일입니까?"
커크가 으르렁거렸다. "네 집이 아니라 네게 볼 일이 있던거야."
"당신하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만."
스팍은 커크가 우악스럽게 자신의 팔뚝과 어깨를 그러쥐는 것을 느꼈다.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벌칸의 예민한 후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알콜 냄새가 커크가 숨을 쉴 때마다 훅훅 끼쳐와서 스팍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ck코트에 주름이 지는 것도 못마땅했다. 그는 커크가 왜 이런 행동양식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배맞은 상대를, 그것도 약한 인간을, 그것도 저 역시 꽤 즐겼던 상대를 땅바닥에 매다 꽂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참았다. 확실히 커크는 남자와는 처음이었다고 한 것 치곤 침대 위에서 꽤 좋았다. 물건도 크고 마초적 기질이 강해서인지 상대를 도미넌트하게 다루는 걸 좋아했다. 스팍은 그에게 다리를 벌렸던 걸 후회하진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조금 약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커크는 스팍의 머리통에서 뭔 생각이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취기 오른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너 내가 우습게 보이냐?"
"예?"
"씨발, 한 번 먹고 버리면 끝인 줄 알았냐고."
스팍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 당신을 '먹고 버린' 적이 없습니다만."
"그럼! 왜 연락 씹는데? 어? 나 존나 피했잖아 새꺄."
"의도적으로 연락을 무시한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 번호를 수신거부로 설정 해놨으니 연락이 온 것도 몰랐을 뿐이죠."
커크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술에 취한 상태로도 알수 있었다. 그게 의도적이 아니면 뭔데? 스팍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애초에 한 번으로 끝날 것 아니었습니까? 그 때 당신은 분명 '게이 섹스가 이렇게 존나 끝내주는 거라면 한 번쯤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라고..."
"워, 워워워. 잠깐만. 잠깐. 내가 뭐라고?"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군요. 하긴 당신은 많이 취해있었죠."
지금보다 더. 스팍은 그렇게 웅얼거리듯 덧붙였다. 커크는 벌칸의 헤즐넛 색 눈동자가 젖은 머리칼 밑에서 그를 빤히 쳐다보는 것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커크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취해서 말한거니까 무효로 해."
"어떤 부분을요? '끝내줬다'는 거?"
"아니 임마. 한 번으로 끝내자는거."
스팍은 커크의 얼굴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보듯이 찬찬히 살폈다. 커크는 조금 헐떡였다. 다 집어치우고 이 망할 벌칸의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서 죽을 맛이었다.